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슨한 빌리지 Feb 01. 2018

6. 유머가 주는 위안, <나라 없는 사람>

치-명적 올스타 6: 힘든 사람들에게 유머를 건넬 수 있는 사람

* <느슨한 빌리지>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neuvill.book/

* <느슨한 빌리지>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neu_vill/

* 브런치 구독, 라이킷, 피드백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

* <느빌>은 매일 업로드됩니다.


1. 지난 이야기


뻔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어느새 미친 자아존중감을 갖는 사람이 될지어다. 다찌마와 리처럼 궁극의 경지, 자기 자신을 속일 정도의 자기신뢰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학곰, 그는 언젠가 치명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 진짜 원하는 것?


지난주 다찌마와 리 뽕에 취해(써놓고 보니 나는 자주 취하는 것 같다. 오메가 쓰리 챙겨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자!)  빅-뻔뻔 킹이 되어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깊게 생각을 해보니 그걸 그대로 따라 하면 치-명맨이 아니라 서치 어-허언증 펄슨(such a 허언증 person)이 될 것 같았다.


나를 속이는 것까진 괜찮아도, 느빌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상에서 마주할 사람들에게 서치 어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치명적인 사람이 되려는가. 왜 치명적 올스타를 기획하고 매주 쓰고 있는가. 이걸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느빌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며, 독자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리저리 생각해도 결국은 재미다.


쓰는 사람이 재미있고, 읽는 사람도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었다.


3. 위안을 주는 유머


나라 없는 사람(2007)

오늘 가져온 빅-치명-펄슨은 "커트 보니것"이다. <나라 없는 사람>은 그가 82세에 쓴 에세이집이다.

<느빌>의 시작을 함께한 작가여서일까 커트 보니것의 글은 발제/뒷담화 이후로도 종종 찾아보게 된다.


* 발제/뒷담화 링크


한 글에서 그는 말한다. 자신의 유-우머는 타인을 비방하거나 폐를 끼치는 방법으로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그가 겨냥하는 풍자의 대상, 다시 말해 비꼬는 대상이 되는 것은 대개 크고 강한 힘을 향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닿을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끊임없이 잽을 던진다. 때론 시답잖게, 때론 매섭게.


거대한 힘에 대적해서 그런 것일까 보니것식 유머는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낙관적이다. 유머가 잘 풀리든 그렇지 않든 '뭐 그런 거지' 하고 만다. 그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왠지 시니컬한 표정으로 양 손바닥을 하늘로 보이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미국식 제스처를 취할 것만 같다.(기분 탓이겠지)


이런 제스처로 'It's ok' 할 것 같다

82세 노인이 쉬지 않고 던지는 '농'이 엄청 재밌지는 않다. 하지만 재미와는 다른 층위에서 찾아오는 '울림'이 있다. 특히 아래의 인용 부분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라.(하필이면 전철에서 읽어서... 어 카인드 오브-눈물을 흘릴까 봐. 책을 덮어버렸다. 인용을 위해 다시 쓰면서도 가슴이 떨린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유머는 아스피린처럼 아픔을 달래준다.
앞으로 백 년 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웃는 다면 아주 기쁠 것 같다.


노 작가가 진심을 담아 쓴 세 문장은 나의 유머관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전까지는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를 깎아서 웃음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나만' 즐겁기 위해서 '나와 나의 주변 이야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문득 나의 유머는 너무 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어쩌면 나는 큰 사람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나를 작은 사람으로 규정하고 작아지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는 무관심, 아니 포기를 하고 도망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펜 끝을 겨눠야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아니라 '부조리와 범접할 수 없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웃음을 줄 수는 없을지어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웃음을 선물하고 싶다. 


★치명 포인트 6
세상의 큰 것들에 펜 끝을 겨누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웃음을 선물하자.




치명적이기위해 노력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5. 참을 수 없는 뻔뻔함, <다찌마와 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