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건강검진 결과로 두경부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나왔다. 재검까지는 필요없지만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즈음 머리 여기저기에서 찌리릿 찌리릿 거리는 증세가 몇 달간 지속된 터라 MRI를 찍었다. MRI 결과를 보러갔다. 담당 신경과 의사선생님은 뇌혈관이 아주 깨끗하다고 했다. 다만 2년 후에 같은 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2년 후에 잊지 않고 MRI를 다시 찍었다. 결과는 역시 지난번처럼 뇌혈관이 깨끗하다고 했다. 그런데, 뇌 사이즈가 작아진 것이 좀 걸린다고 했다. 친정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던 가족력이 있는 데다가, 당시 1, 2년 사이에 건망증과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느끼고 있던 것을 이야기했다. 의사선생님은 치매 치료를 반드시 받을 것을 권유했다.
저녁에 식구들한테 의사선생님의 말을 전달했다. 다들 걱정이 한가득이다. 나보다 더 걱정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의 걱정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물론 나를 걱정하는 것이 크겠지만, 자기들이 나로 인해 불편해지는 것 때문에 더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불편을 끼치는 입장인 주제에 뭘 잘했다고 하는 생각 하나와 그걸 알아서 뭐하겠나 하는 생각이 참게 했다. 외롭고 씁쓸하고 서운한 감정이 올라온다. 사람이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가족’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결국 나 혼자구나 하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평생 가족을 돌봐왔는데, 정작 내가 힘들 때는 내 마음보다 자신들의 불편함을 먼저 걱정하는 것 같다는 배신감이 들었다.
여러 가지를 따져가며 결정한 의사선생님이 세브란스병원의 예병석 신경과 의사선생님이다. MRI를 검사한 의사선생님은 지금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를 위해 다니는 성모병원에서 다닐 것을 권유했다. 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병원을 통일하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좋은 의사선생님을 선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덕분에 오래 기다렸다가 다음해 가을에 처음 진료가 시작되었다. 아직은 검사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 단정하기는 이른 시기이지만 병원을 다녀오니 ‘치매’라는 병이 더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다. 의사선생님은 좋은 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더 걱정된다.
70세 즈음에 치매가 걸린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때 남편은 아버지를 많이 닮은 내가 나중에 치매에 걸릴까봐 걱정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알콜성 치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치매는 나와 아무 상관없다고 치부했다. 나는 술도 거의 안 마셨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치매 진단을 받으면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답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평상시에 깊은 대화가 없었던 남편과는 그 후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올라온다.
전에 봤던 영화 <스틸 앨리스>가 생각나서 다시 봤다.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다룬 영화이다.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치매 환자인 주인공 앨리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더 몰입하며 보았다. 주인공 앨리스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다 갖춘 여성이다. 본인은 교수인데다가, 다정한 남편과 잘 자란 세 남매가 있다. 교수로서 명성 있는 그녀가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에게 어렵게 고백하지만 가족들은 그녀의 고통을 진지하게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두 가지만 기억해. 아직 결론 내리긴 일러. 그리고 무슨 일이 있든 내가 옆에 있을 거야.”
다정한 남편이 앨리스에게 한 말이다. 앨리스는 자신을 더 잃기 전에 남편과 1년쯤 여행을 다녀 오자고 제안하지만 남편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는데 놓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한다. 무슨 일이 있든 옆에 있겠다고 다정하게 약속했던 남편이었는데 그 약속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밀렸다. 그동안 다정했던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결국 그녀를 케어해주는 가족은 가장 갈등이 많았던 막내딸이다. 영화라서 반전 포인트를 위해 그렇게 설정한 면도 있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이 올라온다.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자신에게 진심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하는 기준으로 보면 이 남편은 앨리스에게 어떤 사람인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게 아프다. 나의 남편도 도움이 안 되었는데, 이 집 남편 역시 도움이 안 된다. 남편들은 이럴 때 무엇이 중요한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죠.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알츠하이머 협회에서 강연할 때 그녀가 한 말이다. 많은 울림을 주는 대사이다. 아~ 그래서 제목이 ‘스틸’ 앨리스구나. 영화를 처음 볼 때 제목이 이해가 안 되었었다. 두 번째는 더 집중해서 보게 되었고 그래서 주인공 앨리스의 대사 하나하나가 더 내 마음에 다가왔다. 이 대사에서 나는 진정한 자기돌봄의 의미를 보았다. 병든 자신을 숨기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나다”라고 선언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자기돌봄이 아닐까.
나를 돌아보았다. 두 번째 MRI 검사를 한 다음해 초에 심학원 통합치유과정에 지원했다. 심학원에 지원할 때 잠깐 망설이긴 했다. 치매일지도 모르는데 이 공부가 무슨 소용일까. 그렇지만 이내 다시 생각을 바로 잡았다. 치매일지도 모르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치매이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것 안 하다가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했다고 후회하기 보다는 안 했다고 후회할 확률이 더 클 것 같았다. 하던 대로 하고 살아야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의 생각이 이런 게 아닐까.
Still me. Keep going!
이것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돌봄이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포기하지 않는 것. 병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꿈을 접지 않는 것.
그후 나의 인지는 다시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생소한 심리학 공부를 해서 그런지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좋아졌다. 심리공부를 함께 하는 학우들의 지지와 격려도 크게 한 몫 했다.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는데 조금도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전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성비보다 공동체의 지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여기서 나는 돌봄의 새로운 형태를 경험했다. 가족의 돌봄과는 다른, 공동체의 돌봄. 학우들과 함께 공부하고,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것도 돌봄이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가족의 돌봄이 때로는 의무감과 부담감을 동반한다면, 공동체의 돌봄은 자발적이고 상호적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도 나를 응원해주는 관계. 이런 돌봄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치매 가능성이라는 불안 앞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도전이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꿈을 키워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돌봄이었다. 몸이 불편해질지도 모른다고 해서 마음까지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기억력이 나빠질지도 모른다고 해서 배움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적극적으로 나를 돌봐야 한다.
거의 모든 것을 늘 혼자서 감당해왔던 나에게, 학우들의 지지와 격려는 새로운 형태의 돌봄을 주었다. 가족들은 나의 치매 가능성을 걱정하면서도 정작 내 마음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학우들은 달랐다. 내가 힘들어할 때 함께 걱정해주고, 내가 성장할 때 함께 기뻐해주었다. 돌봄은 꼭 가족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 더 진심 어린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들이 있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죠.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앨리스의 이 말은 이제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여전히 나다. 치매가 와도, 몸이 불편해져도, 나는 여전히 나다. 그리고 그 ‘나’를 지키는 것이 바로 자기돌봄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
Still me. Keep going!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치매 가능성이라는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더 적극적으로 살게 만들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했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 가족을 돌보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 내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내가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가족들에게 안심을 주고, 부담을 덜어주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나를 돌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가 결국 모든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