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by 네버엔딩

내가 10살 때 막내 작은아버지가 음악선생님과 결혼하면서 피아노를 딱 한 달 동안 배웠다. 당시 피아노는 아무나 배울 수 없는 호사이기도 했고, 적성에 맞았는지 아주 재미있었다. 그 호사는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나중에라도 언젠가는 피아노를 꼭 배우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영화 <미션>을 보면서 가브리엘의 오보에의 선율에 매료되어 나의 결심은 피아노에서 오보에로 바뀌었다. 언젠가 나중에 꼭 배우리라.


크리스천인 나는 찬양대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노래에 소질이 없는 나에게는 실현할 수 없는 꿈에 불과했다. 2년 전에 옮긴 지금의 교회는 새성전을 건축 중이었고 지금의 예배당은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2027년 완공을 대비하여 여러 가지를 준비하면서 찬양대 오케스트라 단원 훈련 프로그램인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연다고 주보에 광고가 올라왔다. 1년 6개월 전 처음으로 단원 모집 광고가 올라왔을 때 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오보에를 배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까운 기회를 날렸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다.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지금은 때가 아니야’, ‘여건이 안돼’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가족을 돌보고,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챙기느라 내 꿈은 늘 ‘나중에’로 미뤄졌다.


6개월 후에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2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자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아직 안 끝났다는 안도감과 이번엔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우선 숨고앱에서 레슨 받을 선생님을 선택해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 모집 신청서에 오보에와 찬양대에 대한 나의 로망과 스토리를 적었다. 이렇게 레슨을 시작했으니 다음 기수에는 꼭 나를 뽑아달라고.


지휘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주 생초보도 들어올 수 있으며 기악적인 기교나 숙련보다 찬양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다. 뛸 듯이 기뻤다. 살면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큰 기쁨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그저 작은 소망 하나 가슴에 품고 있었을 뿐인데 이런 기회가 나에게 생기다니 꿈만 같았다. 소망 하나 품는 일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다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라고 했던가. 우리 속담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고 하지 않던가. 에이 설마 하는 생각보다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 속에 저장해 두면 언젠가 그 소망이 현실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오보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기네스북에 가장 배우기 어려운 악기로 오보에와 호른이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겹리드를 사용하는 오보에는 악기 자체가 까다롭기 그지없다. 선생님은 늘 리드를 깎아야 했다. 오보에 연습만큼 리드를 깎고 만드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레슨 중에도 리드 상태를 체크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리드 때문에 선생님의 도움 없이는 연습을 할 수가 없다. 레슨비 외에도 리드 비용을 매달 지불해야 한다.


레슨선생님은 처음에 대여했던 악기의 상태가 좋지 않아 다른 악기사의 오보에를 대여할 것을 권했다. 오보에 시작 후 4개월 만의 일이다. 악기사에 악기를 반납하러 갔다. 악기사 사장님은 왜 반납하려 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그만 두시려고요?” 했다. 그 정도 하고 나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전공자도 아니고 취미로 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비용과 수고가 다른 악기에 비해 상당히 크다. 오보에를 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려움이나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그 비용이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다른 지출을 아껴서 기꺼이 오보에에 드는 비용을 충당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으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변형되어 오보에 악기를 드는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다. 그 장애물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럴 때 쓰면 딱 좋은 손목 보호대를 찾았다. 엄지손가락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다고 꿈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진짜 원하는 일을 할 때 만나는 장애물은 기꺼이 극복한다.


심리적으로 지치거나 낙담될 때 유튜브에서 ‘가브리엘의 오보에’ 연주를 들으면 도파민이 올라온다. 마음이 충분히 충전될 때까지 연주를 계속 듣는다. 오보에를 시작하기 전에는 누워서 유튜브로 시간을 죽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과거에 비하면 얼마나 큰 진보인지 모른다. ‘작은 소망’ 하나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온 나비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돌봄이다. 약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도 몸을 돌보는 일이지만, 꿈을 품고 그것을 실현해나가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돌보는 일이고, 그 돌봄이 몸의 아픔까지도 이겨낼 힘을 준다.


미국의 유명한 화가 모지스 할머니도 비슷한 경우일 것 같다. 할머니는 자수와 뜨개질을 즐겨 했지만 70대 중반 무렵 관절염이 악화되면서 정교한 손동작을 하는 것이 힘들게 되자 덜 정교한 손동작으로 가능한 활동을 찾았다. 그녀의 여동생은 유화를 추천했고 할머니는 이때부터 붓을 들고 농촌의 소박한 삶과 따뜻한 기억을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거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만의 감성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민속화가가 되었다.


100세를 너머까지 사셨던 할머니는 삶의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나이나 환경을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모지스 할머니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늦깎이 성공’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불편해져도 자신의 꿈과 창조적 에너지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것이다. 할머니는 특별히 그림에 재능이 있었기에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 유명해지는 것은 부차적인 선물이고, 이것은 없어도 그만이다. 할머니가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노년기를 풍성하고 행복하게 보냈다는 점이 할머니 본인에게도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노년기의 인생이 얼마든지 새롭고 풍요로울 수 있음을 삶을 통해 증명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더 이상 남의 일이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과거에 이런저런 이유로 묻어둔 실현시키지 못한 꿈들을 꺼내보자.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꿈은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도 시간은 충분하다. 이미 100세 시대를 넘어가고 있으니.


나의 꿈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나를 돌보는 것이라는 것을 ‘오보에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느라, 남을 돌보느라 정작 내 꿈은 방치했음을 자각하자. 너무 오래되어서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해보자. 몸이 아파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도, 나이가 들어도, 내 꿈만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돌봄의 비결이다.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돌볼 수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야 남에게도 그런 에너지를 줄 수 있다.


오보에를 배우면서 나는 다시 살아났다. 매주 레슨 받는 시간이 기다려지고, 연주회 준비를 하면서 가슴이 뛰고, 조금씩 늘어가는 실력에 보람을 느낀다. 이것이 나에게는 진정한 자기돌봄의 실천이다. 꿈을 돌보는 것도 나를 돌보는 것이다. 그렇게 돌봄받은 나 자신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keyword
이전 05화나의 답안지는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