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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Oct 26. 2019

흑사병의 전염성 vs 행복의 전염성

늘 기분 좋은 네 덕에 우울할 틈이 없다

병도 감정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건너가는 데, 그 속도가 엄청 놀랐을 때의 심장처럼  ‘프레스토’로 매우 빠른 것도 있고, 요즘 유행하는  ‘라르고’  여행처럼 그 속도가 매우 느리고 폭넓은 것도 있다. 그러나 속도의 차이가 있다 해도 전염병은 무섭다. 내게 전염병은 5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역사에서 나오는 ‘흑사병’ 같은 느낌이 전부였다.  매우 무섭지만 나에게는 크게 해당이 되지 않는 역사 속 이야기랄까. 역사 속 흑사병이 가장 위세를 떨쳤던 5년 동안 사망자는 2000만 명이 넘고,  파리의 인구는 반으로 줄었으며, 유럽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말 소름 끼치도록 무시무시한 병임에도 불구하고 한참 과거의 일이기에 실질적으로 무서운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 우리나라에 메르스가 돌면서 혹시나 아이들이 메르스에 감염될까, 내가 메르스에 감염되면 어쩌나 무서워서 매일 매 순간 벌벌 떨었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끙끙 집에서 앓으며 참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약국에서 일하는 나의 한 지인은 자신의 약국에 하루 전에 다녀간 고객이 메르스 확진환자라면서 ‘메르스 환자가 거쳐간 모든 사람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규율에 따라 약사인 그도 며칠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와 부인과 격리되어 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렇게 메르스는 나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전염이라는 것은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는 논란의 여지없이 아주 무서운 존재이다.
 
육 년 전 지성이가 뱃속에 있을 때 스트레스 강사과정을 들었는데, 그녀의 강의는 프로페셔널했지만 나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다던가 행복으로 안내해주지는 않았다. 궁금했다 그녀의 이런 강의로 정말 청중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는 알면 알수록 더 스트레스가 쌓이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의 타고난 삐딱함 때문일까. 의식적으로 웃는 것도 뇌는 진짜 웃음이라 착각한다는 논리에 맞추어 “여러분 이렇게 큰소리로 웃어보세요. 하하하하하하”라고 말하는 그녀의 웃음은 가끔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도무지 그녀의 강의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강의로 나에게 몇십만 원을 받아가다니 괘씸하단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환불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나나 강사나 괜한 스트레스 지수만 높아질 것 같아서 강사님의 말씀 따라 다스릴 수 있는 스트레스는 다스리자는 마음에 환불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 환불을 언급하면 나만 스트레스받을 거야.’
 
이렇게 감정이라는 것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짜 행복해야 진짜 웃음이 나오고. 진짜 즐거워야 하하하하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진짜 감정은 우리에게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옆에 사람이 진짜 좋은 일이 있어서 미소를 보이면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누군가 상을 당하여 슬픔에 빠지면 나도 내 일처럼 생각되며 슬픔의 눈물을 함께 흘린다. 그렇게 감정은 전염성이 무섭도록 강하다. 그리고 그런 감정 전염성 덕에 우리는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데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기쁨을 얻기도 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느낀다.
 
오늘 출근길에 친구가 자기 딸이 아프다고 하소연을 했다. 제발 자기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아기가 아파서 밤에 스무 번도 넘게 잠에서 깨는 바람에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구분도 안 간다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 짜증만 내서 너무 지친다는 친구의 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수화기 너머의 친구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런데 채윤이는 이런 병과는 반대의 바이러스다. 해피 바이러스라고 할까. 기쁨의 전염성이 무지무지 강하다.
 


세상에서 제일 유쾌한 발걸음,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노랫소리,
들으면 바로 기분 좋아지는 말투,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손동작
나는 사랑이 가득해요라고 말해주는 입술
 
너의 모든 신체부위와 얼굴은 너의 행복을 말해준다. 너는 걸음걸이도 색종이를 접는 손동작도, 이야기할 때 움직이는 입술도 늘 기분이 좋다. 그래서 네가 걷는 것만 보아도, 네가 노는 모습만 보아도, 네 이야기만 들어도 기분이 매우 격양된다.


 게다가 채윤이가 그리는 그림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고흐처럼 집에 걸어놓고 싶은 명작은 아니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미소 짓게 하는 기분 좋음이 너의 그림에 가득하다. 항상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딸. 한 번은 내가 장난으로 채윤이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린 뒤에 눈만 다르게 그렸다. 웃는 눈이 아니라 눈꼬리를 위로 찌익 올려서 화가 난 것처럼 그렸다. 그랬더니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네가 나의 그림 속 눈을 지우고 다시 웃는 눈으로 바꾸어 그려놓았다.
 
너는 글씨마저 행복을 담고 있다.
사람의 흔적에는 모두 감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네 글씨를 보면서 깨닫는다. 내가 은행 서류에 쓴 글씨는 기분이 좋지 않음이 가득 담겨있다. 누가 보아도 기분 좋지 않은 사람이, 서류 작성하는 게 너무 싫은 사람이, 은행에서 1분이라도 빨리 업무를 끝내고 싶은 지루한 사람이 작성한 서류이다. 그런데 너의 글씨에는 즐거움, 기쁨이 느껴진다. 글씨가 춤을 추는 듯, 노래를 하는 듯
 


채윤이의 손이 거치면 모든 것은 기분 좋은 것으로 바뀐다. 우리 집에 있는 잉꼬부부를 상징하는 새 두 마리가 있는데 내가 청소를 한다고 무심코 둘을 떨어뜨려 놓았나 보다. 채윤이가 유치원에 다녀와서 가방을 벗자마자 두 마리 새한테 가더니 씩 웃으면서 둘을 딱 붙여놓는다. 하하하 내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날 새 두 마리의 머리를 일부러 보란 듯이 반대 방향을 향하게 하였더니, 역시나 집에 오자마자 너는 총총총 걸어가 두 마리가 뽀뽀하는 모습으로 머리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너의 마음에는 사랑이 넘쳐서 사물도 모두 사랑이 가득한 것이 예뻐 보이나 보다.
  
할머니 집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코끼리 두 마리가 있는데, 할머니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어서 코끼리 두 마리의 코를 양쪽 밖으로 나오게 놓는다. 그 정도의 간격이 있는 것이 집에 가장 어울린다면서 아주 세심하게 코끼리 두 마리 위치를 잡았다. 그런데 주말에 할머니 집에 놀러 간 사랑쟁이 채윤이가 그걸 보더니 두 코끼리의 코가 떨어져 있으면 큰일이라도 난다고 생각했는지 그 둘을 딱 붙여놓는다. 그러면 나에게 개구쟁이 피를 물려준 개구쟁이 할머니가 채윤이 몰래 다시 코끼리 코 사이를 1cm 정도 벌여놓으면 채윤이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금세 와서 특유의 함박 미소를 지으며 코를 붙여 놓는다. 하하하
 
어쩜 네 손에 닿는 사물은 그렇게 다 사랑 가득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상하다. 너의 그 마술과 같은 손으로 매일 나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왜 내 얼굴은 그대로인 것이냐.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왜 도리어 매일매일 쭈글쭈글해지고, 기미가 끼고, 못생겨지는 중인 게냐. 너는 매일 나의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고 의자를 밟고 올라와 머리를 빗겨주는 데 왜 내 얼굴과 머리는 푸석푸석 못생겨지기만 하는 것이냐. 너한테 항의할 생각은 없지만 정말 억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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