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한 책들 사이
먼지가 천천히 내려앉아
그가 멈췄던 자리 위에
얇은 안개처럼 머물러 있어
손끝으로 서가를 훑다 보면
갑자기 멈추는 곳들이 있어
살짝 접힌 귀퉁이 하나
진한 선이 남아 있는 문장들
먼지가 쌓인 페이지들 속에
그가 남겨 둔 생각이 살아 있어
나는 아직 그 곁에 설 순 없지만
이 길 위에 남은 글자를 따라
조용히
조용히 걸어가
연필 자국 조금 번진 곳
한참을 망설인 흔적일까
빼곡한 글 사이 여백에는
말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작게 삐걱이는 숨소리 같아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생각을 살며시 들여다보는 것 같아
먼지가 쌓인 페이지들 속에
그가 남겨 둔 생각이 살아 있어
나는 아직 그 곁에 설 순 없지만
이 길 위에 남은 글자를 따라
조용히
조용히 걸어가
언젠가 나도 이곳에
작은 밑줄 하나 남길 수 있을까
그가 지나간 자리 옆에
서툰 글씨라도 겹쳐 쓸 수 있을까
먼지가 쌓인 페이지들 속에
우리가 될 내일이 숨어 있어
나는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그가 남긴 작은 발자국 따라
조용히
끝까지 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