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연필꽂이가 아닌 ‘작품’이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자리에 우두커니 놓여있던 작품. 이 작품은 이사를 하거나 가구 배치가 달라질 적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녔다. 20여년 넘게 그랬다. 장식용이었으므로 때로는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난감하기도 했다. 서랍장 안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작년부터 연필꽂이로 쓰고 있다. 내 책상의 오른쪽에, 내가 자주 사용하는 필기구들의 집으로. 손만 뻗으면 바로 닿는 자리. 이 자리가 훨씬 좋구나. 가까이 볼 수 있는 자리. 내게 필수품인 것들과 한가지가 되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