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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프롤로그

by crystal

매일 같은 질문을 내게 묻고 답을 찾지 못한 채 덮는다.

어쩌면 답이 없는 문제여서 찾지 못하는 것일지도..



퇴근 후 축 늘어진 몸을 마음으로 겨우 붙잡고 사랑보단 의무감을 넣어 밥을 차린다. 아이와 마주 보며 겨우 한 끼 밥 먹으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ToDo List 가득이다. 아이를 씻기면서 그제야 기나긴 하루를 10분 순삭으로 압축해 듣고 결국 "어서 자자"라는 초조한 말로 아이와 나의 시간을 급히 마무리한다.


엄마와 나누고픈 이야기 그득한 아이 마음을 모른 척 달래 재우고선 잠들어서는 안 되는 나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다. 밀린 집안일을 하나씩 해치우고, 회사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는 건 예삿일이다.


그렇게 고작 5시간 안팎의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빠진 준비물이 없는지 확인하고, 아이 스케줄을 한번 더 점검한 뒤 오늘의 날씨와 체육 수업 유무에 맞춰 아이 옷을 준비한다. 그와 상반되게 내 옷은 되는대로 대충 입고 로션하나 겨우 바른 채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전력 질주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 공복에 먹여야 하는 내 약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회사에 약통도 가져다 둘 정도로 난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내게 미라클 모닝은 없고, 나의 하루는 그저 미라클 버팀이다.




전력 질주를 시작으로 종일 마라톤을 뛴다.

근무 시간 동안 집중 근무해야 빠른 퇴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수험생 모드이고 여유로운 티타임과 웹서핑은 생각도 못할 만큼 치열하게 일한다. 커리어우먼 분위기의 불편한 옷 대신 나를 편하게 해 줄 캐주얼 복장과 운동화를 신을 수 있어 감사하곤 한다. 빨리 일 해서 칼퇴해야 한다는 강박이 늘 함께 하기 때문에 동료와의 수다는 사치다. 회식은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의 고작 1/5 밖에 함께 하지 못하는 그 소중한 시간마저 앗아가는 장애물일 뿐이고 평가를 위해 매년 치러야 하는 시험의 고득점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 하나가 생겼을 뿐인데

워킹맘 신책임의 회사는 내게 전과 다른 공간이 되었다.

업무적인 성취감도, 동료와의 친분도, 커리어우먼의 외향적인 면모도 내려놓은 이 상태로

‘나는 무엇을 위해 출근하고 무엇을 위해 아이와의 시간을 바꿔 회사에 있는 걸까?’

‘내가 원했던 행복이 이 모습일까?’

‘아이가 크고 나면 이 시간의 내 노력을 후회로 남기려나?’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잊고 최선을 다하며 지내고 있는데
왜 나는 이곳과 저곳에... 이 사람과 저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생각을 수없이 내뱉고 있을까?


그럴 때마다

조금 더 나를 채찍질해 휴식 시간을 줄이고, 잠을 줄이고, 나를 줄어갔다.

이제는 더 줄일 것도 없어서 공허함만 남겨졌다.


때론 숨쉬기가 어려웠고, 분당 심박수는 종종 200회를 넘기도록 빨리 뛰었다.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르곤 했고,

나의 삶은 자기반성과 자책의 연속이다.


나만 견디면 가정도 회사도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워킹맘 8년 차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왜 이 시기를 워킹맘의 마지막 절벽이라고 말하는지 감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의 시간을 견뎠고

그렇게 단단해졌고

이제 조금만 더 버텨보면 될 것 같은데

버틸 힘도 줄었고

가장 중요한 건 뭘 위해 버텨야 하는지

왜 버텨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길을 잃은 거! 까짓것! 잠깐 쉬어 가자.

배포가 크지 않은 나는 내 그릇의 크기 대로 퇴사 대신 휴직을 선택했다.


팀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극소수의 인원으로 해가는지 알기에

나처럼 버티는 선배 워킹맘의 노고를 누구보다 알기에 나의 쉼은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난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이기적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에게 생각의 시간이 허락된 지금부터

내가 매일 해왔던 질문을 다시 해보고자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하려고 하는 일하는데, 행복할 그 여유가 없는 하루..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힌 이 상황이 내게 합당한가?"


퇴사한 선배들은 그래도 돈 벌 때가 좋았다고 조언하고

회사를 다니는 동료들은 이렇게 돈 벌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한탄한다.

이 말을 들으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게 맞는 것 같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과 팔랑귀의 문제가 아니라 워킹맘이냐 전업맘이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내게 답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미련이 남을 것이므로 어느 곳에 있든 미련하게 하지 않을 선택 이제 그 답을 내가 직접 찾아보려 한다.




상상만으로 그려봤던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하는 그 시간!!

1년 동안 그 길을 걸으며 나의 여한을 하나씩 풀어가고 그 깨우침의 기록을 남긴다.


"이 놈의 회사만 아니면...... "

늘 제약 사항이 붙던 이 문구를 제거하고 실체를 체험해 본다.


과연 난 워킹맘이라서 불행하고 부족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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