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임신의 결과 값은 노력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탓해보고 내가 속한 환경을 탓해봤다.
이번 퀘스트도 무난하게 넘어갈 것이라고 자만했다.
특히 엄마의 자리는 일상 속 공기처럼 자연스레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겨 그 자리의 존귀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원하면 나 또한 자연스레 엄마가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생명의 문제는 대입이나 회사 입사, 사랑보다 훨씬 미묘하여 나의 자만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 맘 같지 않은 임신 과정의 터널을 지나며 우주 만물의 이치, 종교를 넘어 삼신할머니까지 소환하게 되는 간절함을 맛보았다.
임신의 결과 값은 노력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나도 엄마가 있고, 세상에 애 엄마가 저렇게 많은데 그 흔한 일이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결혼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아이가 없으니 친적들에게 듣는 안부 인사는 '좋은 소식 없냐', '애는 언제 낳을 거냐'는게 일상이었다. (그때가 너무 괴로워서 난 그 이후로 남들에게 쉽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저마다의 아픈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난임의 고통은 엄마가 될 수 없는 괴로움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친한 친구의 임신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옹졸한 나 자신을 마주쳐야 했다. 아이 손을 잡고 오손도손 걸어가는 어느 가족의 모습이 너무 부러울 땐, 아이에게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내게 풍족하게 쓸 수 있다며 내 시간의 장점을 합리화시켜 보았다. 자꾸만 솟구쳐 오르는 시기심을 합리화로 겹겹이 덮어두고, 내게 상처가 없는 것처럼 나를 속여가며 나만의 콤플렉스를 만들어 갔다.
이런 괴로운 마음도 힘들었지만 마음을 비워야 아이가 생긴다는 공식 같은 말을 실천하기가 가장 난해했다.
간절히 염원하는 상태로 마음을 비워 내는 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 걸까?
그것을 알아내고 체득하려고 온 마음을 더 가득 채워갔다.
고된 업무로 밤새 일하다가 아침이 될 무렵 사무실에서 쓰러지고 주말 근무는 일상이 된 생활..
어느 직장에나 있는 진상 동료와 설명 없이 무작정 해내야 하는 벅찬 업무..
밥 먹는 게 귀찮아 대충 먹은 인스턴트 음식..
회식 자리에서 거절하기 어려워 마신 술.. 때론 스트레스받아서 마셨던 술..
이것들이 나의 임신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탓해보고 내가 속한 환경을 탓해봤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기와 정반대로 내 마음은 난임 원인 찾기와 개선점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선명함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결국 찾을 수 없는 원인 찾기를 덮어두고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강구했다. 나의 MBTI가 N(직관형)에서 S(현실형)로 바뀐 된 게 이때쯤이라고 여긴다. 언젠가 되겠지.. 간절하면 이뤄지겠지.. 하늘에서 선물 같은 시간을 주시겠지 하던 온갖 믿음을 뒤로하고, 난임 병원을 찾아 나섰다. 우리 부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받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을 때는 내 통제 범위에 있지 않은 모호하고 어려운 일이었는데, 실천 가능한 솔루션을 받고 나니 한결 가벼워졌다.
마음 비우기와 의술의 힘을 빌린 의식적인 노력이 적절하게 섞인 어느 시점 난 드디어 '예비 엄마' 명함을 받았다. 그날이 생생하다. 난임 병원이었기에 그곳에 온 사람들의 간절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지 못하는 기괴한 눈웃음으로 남편과 나는 격렬하게 서로를 축하하고 있었다. 차에 타자마자 소리쳐 펑펑 울며 지난 시간을 서로 위로했다.
비로소 난 그 귀하디 귀한 엄마라는 이름을 선물 받았다.
그날의 하늘은 더 맑디 맑았고
웃는 표정의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고, 불어오는 바람도 더할 나위 없이 포근했다.
가을바람이 살랑 거리며 떨어트려 둔 낙엽을 사각사각 밟으면서도 봄의 새싹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기분이었고
모든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