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볕 드는 쪽에 머무른 향기
핫팩을 들고 일주일 만에 사무실에 나갔다. 눈 주위는 아무래도 불편하고 부어있지만 선글라스 없이도 고개를 들고 간 것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바빠서 내게 눈길을 주기 쉽지 않아서다. 주위에 담배꽁초가 산만한데 그중에 셔터 앞에 바로 꼽아버린 쓰레기류와 꽁초는 화를 치밀게 하고 루즈가 묻은 여자 것을 보면 인상이 찌그러지며 욕설이 나온다.
이런 미친, 이런 빌어먹을ᆢ 욕이 나쁜 게 아니다. 화를 품지 말라고 나온 것일 거다. 화병 생기지 말라고 생긴 우리나라 말이다. 그래도 외국인 앞에서 한국말을 못 알아듣겠지 하고서 거듭 욕을 했다간 낭패를 보기도 한다.
오물을 줍고 욕도 같이 집었던 집게에 세정제를 뿌리고 손을 씻는데 한때 노숙인이었던 경주 씨가 역시 떡을 들고 들어온다.
이이는 팝송을 친구처럼 여기고 바둑을 동무같이 들여다보는데 입담이 좋다. 나는 손님이었기에 선생님으로 호칭한다. 인정도 많으셔서 나는 먹을 것을 권해드리고 추어탕을 같이 먹기도 했다.
- 눈을 하시냐고 일주일 셔터가 내려져 있었어요.
지나치며 볼 때 안 보이시면 허전하죠.
오늘은 동인천 방면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노숙인으로 있을 때 한 끼의 식사를 제공받았던 그 옆을 지나쳤다며 가슴이 찡하다는 말씀하셨다.
- 화도진 공원 옆에서 서영남 수사님이 직접 자비로 밥을 해주세요. 나는 주안 시민회관 쪽에서 노숙하며 동인천역 근방까지 7년여를 걸어가서 줄 서서 밥을 얻어먹었어요. 성당에서 수사하다가 나오셔서 현재의 부인과 부인이 낳은 딸을 받아들이고서 두 분이 봉사를 하셨죠. 굉장히 감사한 분들이셔요. 티브이에도 나오셨더랬어요.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이 이밥을 거저 얻어먹으려고 줄을 서는 바람에 우리는 미리 일찍 한 시간은 줄 서야 해요. 인원이 많다 보니까요.
- 나라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고 곳곳에서 익명으로 지원해 준 식량과 의류를 살기 어려운 우리한테 무료 배급을 주셨어요.
봉사하시는 수사님은 긴 줄인데도 밥을 타가는 얼굴을 다 기억하시면서도 나무라는 말씀이 없으셨으며 하루 세 끼를 무료배식해 주셨단다.
- 또, 있어요. 사모님은 급식소에서 떨어진 곳에 도서관을 차리셔서 우리가 아무 때나 책을 읽게 하셨어요. 그러면 나눠준 종이에 우리는 독후감 식으로 글을 썼지요. 못 쓰는 이는 잘 읽었습니다로 한 마디라도 쓰고 길게 쓰는 사람도 있지요. 모두 모두 사모님이 삼천 원씩 주셔서 누구나 한 줄이라도 글을 썼답니다.
- 나중에 시민회관에서 노숙하고 있는 내게 구청 직원이 빵과 음료를 잔뜩 주면서 노숙하냐고 그러길래 네, 했더니 재활치료에서 돈을 벌게끔 일자리를 제공해 줬고 수급자 생활을 하게 됐어요. 이렇게 나는 따뜻한 방과 먹을 음식이 있는데 그곳 화도진공원을 또 찾아갈 순 없지요. 로또라도 운이 좋아서 붙으면 그곳 수사님께 달려갈 겁니다.
이렇게 밥의 소중함에 대해 진득하게 말씀하셨다.
아는 지인이 떠올랐다.
김치찌개를 시켜 먹을 때마다 느꼈던 건데 체면이 얼마나 구겨질까 염려됐는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체면으로 가면을 쓴ᆢ
“나는 소식해요. 밥을 많이 먹지 않는 걸 식당 주인이 알고서 내 밥은 적게 퍼줘요.”
쳇! 밥은 똑같이 나왔으며 내게 밥을 덜어냈다.
그리고서 매번 다시 더 갖다 먹는 체면은 무엇일까. 강쥐 태양이도 밥을 주면 양껏 먹고 남겨 놓는데 노숙인이었던 경주 씨의 밥과 지인이 매번 같이 먹었던 밥은 어떤 것이 더 거지 같은 체면이 있는 걸까.
나는 이곳에 밝히고 싶다. 밥상에서 체면 차린 이는 이중성격의 소유자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팝나무를 알고서 이 나무가 전부 쌀이라면 국민들 배불리 먹이겠다고 하셨다.
혼자 먹는 밥이든 차려준 밥상이든 고마워해야 한다. 체면이 밥 먹여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