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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 해주고 싶은 욕

(12) 볕 드는 쪽에 머무른 향기

by 블라썸도윤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속내의를 젖혀준다. 밥을 먹다 말고라도 가슴에 깊이 파인 우물 하나 마중물을 붓는다. 서현 씨가 도가니탕 한 수저에 시뻘건 김치를 얹더니 오빠 얘길 꺼냈다. 입에 노상 무얼 넣고 오물오물 씹어대던 그녀가 식당에 가기 전 씹던 껌을 내 사무실 옆 바닥에 버렸다가 나를 의식했는지 그걸 도로 주워서 옆 화단에 던진 손으로 수저를 집어줬던 손. 그 손에 벌겋게 맛있는 김치가 있었고 떨리는 손에 오빠 둘이 그림자처럼 앉아 있었다.


밥 먹다 말고 꺼낸 말이 큰오빠랑 작은오빠가 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는 용서 시간이 지나서 두 오빠 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으나 강 건너 불 보듯 뾰족한 방도가 없단다.


- 우리 엄마 덜 아파서 걷기도 하셨는데 오빠 둘이랑 올케들 같이해서 나랑 상의도 없이 요양원에 보내셨어요. 이 도가니탕 국물을 엄마도 오빠도 맛 보이고 싶네요.


- 작은언니가 일러줘서 부리나케 광천으로 내려갔는데 그땐 내가 운전을 못해서 버스 타고 갈아타고 해서 오빠 집에 당도하니 엄마가 없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손에 있던 전단 종이로 올케언니 얼굴 쪽을 후려쳤어요. 우리 엄마 내놔. 나도 있는데 왜 보냈냐고 몸부림을 쳤어요.


- 오빠고 올케고 보이는 게 있나. 부랴부랴 일러준 요양원에 가서 엄마를 인천으로 모셔 와 불고기를 해드리고 반찬을 매일 바꿔서 해드렸어요. 괜찮은 우리 엄마가 내 손에 밥도 못 드시고 거기서 죽을 뻔했잖아요.


- 남편도 엄마 바람 쐐드리고 결국 나중엔 변을 지리셨는데 이것도 우리 신랑이 쳤어요.

일 년 만에 다시 요양원에 가셨고 거기서 2년 후 눈을 감으셨지요.


나는 말할 새도 없었다.

맛있고 뜨끈한 음식 앞에서 가족이 그리웠던 그녀. 국물을 들이켤 때마다 땀이 나는 게 영양 음식이었으니 엄마가 무지 그립다고 했다. 근데 오빠도 그립다고 했다. 못 본 지 십년은 더 됐다며 울컥한다.


- 장례 치른 후 두 오빠는 엄마가 애지중지 아들 아들 키운 보람 없이 유산만 챙기고는 떠났어요.


나도 친구 얘기를 해줬다.

인천의 값비싼 땅에 인프라 좋은 경지에 한 아파트 차지하고 청라에도 또 한 채 집이 있는 친구도 할머니 때부터 불려놓은 재산들을 탁탁 털고는 오빠가 꽁지를 감췄다고 말해줬다.

욕심이 많은 막내 오빠는 집을 몽땅 정리하고 땅값도 몫만큼 가져갔으며 큰언니는 부산 살다 올라와서 엄마 집에서 반찬이랑 요깃거리 다 갖다 먹고서는 부모 모셨다는 핑계를 대고, 재산 분배 과정에서 젤 많이 차지하는 바람에 나머지 두 오빠는 언니를 외면하고 왕래를 끊었다고 전해줬다.


이 친구는 딸도 똑같이 N 분의 1을 상속 재산 분배하는 것이라고 자주 말했었다.


어디든 부모의 유산이 나눌 것이 있다 싶으면 그중에서도 나대는 형제가 꼭 있고 욕심부린 놀부 같은 형제는 그래도 분에 차지 않는다며 형제 곁을 스스로 파괴하고 떠난다.


부모의 재산에 욕심을 갖고 살아계실 땐 쓴 물 한 모금 해 드려보지 못한 자식들이 형제 곁도 알아서 정리하고 발길을 끊는다.


그럼에도 서현 씨랑 친구가 멀리 도망쳐버린 두 오빠를 용서한다며 기다린다.


명절이나 맛있는 음식 앞에 있을 때 내 곁을 피해 간 형제를 찾는 건 핏줄이기 때문인가. 욕심을 다 챙겨 갔으면서도 멀리 달아난 형제를 그리워하며 서현 씨가 하는 말.


- 언니 내 얘기 좀 써줘요. 우리 오빠들한테 엠창이란 험한 말을 쏴주고 용서를 해주는데 이 뜨거운 국물을 먹이고 싶어요.


엠창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이것이 엄마를 욕되게 하는 단어인데 오빠한테 써먹으려고 했네. 내가 말한 게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 엄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코와 턱 쪽에 갖다 대고서 네 엄마 창녀라는 험한 말이었다.


같은 엄마인데 오빠는 이런 심한 말을 들어도 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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