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볕 드는 쪽에 머무른 향기
눈이 덜 아물었지만 찾는 이들도 있고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도 없고 볕 바람을 제대로 쐬기도 해야겠기에 오늘도 분주히 채비했다. 일주일은 더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도 되겠지만 작가님들의 염려에도 만류하고 생떼처럼 움직였다. 내 아이는 허리를 펴지 못하는 디스크에도 회사를 나갔고 태양이는 슬개골 수술하고 와서도 배변을 실수하지 않으려고 엉거주춤해 가면서 가리지 않았는가.
또한 아헤브 작가님의 보물 어린 아기 기쁨 이는 다리 수술을 감행하고 재활치료도 힘들여 받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침엔 태양이를 안고서 주택이 있는 쪽을 돌았다. 태양이랑 같이 한 바퀴 돌은 동네에서 눈으로 찜해 놓은 것을 사무실 나가는 길에 사진을 박는다.
예전 주택이 많이 소멸되어 가니 동네가 점점 차갑다고 느껴진다.
붉은 별 모양으로 피어난 장미를 비롯해서 단풍이 새끼 까려는 것도 찍으면서 화아 자연의 제대로 번짐을 만끽하는데 빗자루를 든 아줌마가 떡이랑 커피 한 잔 하자면서 잠깐만 들어오란다. 본인 집 꽃을 찍는 것을 보고 좋다시며 첨 보는 나를 불러 세우셨다.
* 난 꽃을 찍고 아줌마는 빗자루질을 하시다 마주쳤다.
아줌마 허리 위로 꼬챙이에 걸린 빨래집게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개 배설물과 쓰레기 그리고 담배꽁초를 지나치게 버려서 화단의 풀을 뽑아 깨끗이 정리해 주고 집게엔 같이 살아가는 법을 써서 걸어 놓으셨다고 했다. 내가 죽으라고 했냐 같이 살자고 한 거지.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약하게 써놓으면 무시당하니 강하게 써놓고는 이제 쓰레기 투척이 없다고 하셨다.
“여기에 음식물 이하 쓰레기 버리는 자는 우리 집 액운을 3대까지 반드시 다 가져갈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며 상추랑 깻잎도 다음번에 아무 때나 따다 먹으라고 하셨다.
낯선데도 아줌마 인상이 푸근하니 좋고 꽃들이 나를 반겨서 방망이 떡이 있는 거실 탁자에 앉았다. 욕실 의자는 거실 의자였으며 커피 취향을 여쭤보시더니 짬뽕으로 된 것을 편하게 마시자고 했는데 내 것만 받침대까지 바쳐서 타 주셨다.
좀 전에 남편분과 드셨다면서 아저씨의 물건과 아줌마의 취향을 보여주셨다.
어머나 놀랐다. 칠십 대 중반 분인데 피아노를 치신다고 했다. 콩나물 대가리를 몰라서 올라가는 음과 내려가는 음을 화살표로 표시하고 어느 음악이나 들으면 손이 저절로 간다고 하셨다.
아줌마의 유일한 취미인 피아노 반주는 일반주택이어서 새벽에 쳐대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며 이게 신나는 일이라고 하셨다.
아저씨의 취미는 사진 촬영과 무언가 열심히 적는 것이라고 하셨다.
인생은 박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며 가스 적으러 온 이 계량기 숫자 기재하러 온 이도 밥은 먹었는가 꼭 물어보고 밥 같이 먹자! 차라도 마셔라, 이 얼린 물 가져가라며 베푸신다고 했다.
내가 나오면서 인사드리는데 때마침 계량기 적는 이를 나를 대해 주신 것처럼 반갑게 불러들이신다
일반주택 쪽을 지나야 글감도 나오고 꽃도 화사하다. 그래서 이 길을 가다가 좋은 말씀도 득템 하게 됐다.
* 별 모양의 붉은 장미와 시엄니 때부터 생겨난 마라고 일러 주셨다.
시엄니 물건이라 못 버리고 계신다는데 나도 먼젓번 집에서 맷돌과 절구통 얘들한테 화초를 심어주고 키웠었다.
그러께는 횡단보도 앞에서 노랑 보도블록 밖으로 나가라는 녹음을 듣고 내게 이만치 나오라는 말이라고 하시며 같은 길을 걷게 됐는데 집으로 안내했던 분이 생각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집으로 나를 불러들이시다니 의아해하며 쫓아 들어가지 않았던가.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으셨던 게다.
시아주버니가 구청 다시실 때 써놓은 시어라며 코팅되어 걸려있는 벽면을 군데군데 보여주셨다. 역시 살림이 깔끔하셨으며 시를 좋아하신다고 했다.
난 늦게 복도 많다. 꽃도 많이 보고 이웃이지만 모르는 분들이 손짓하며 부르신다.
사무실 도착하니 어제 치웠어도 역시 쓰레기와 담배꽁초는 너저분하게 깔렸다. 앞 건물이 정형외과와 아웃소싱이 있어서 더 그런 데다 술집들이 먹자골목으로 깔려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줍는데 고개를 숙인 탓으로 이마가 쑤셔댔다.
잠시 숨을 돌리는데 핫 대표가 얼마 전 개업한 곳에서 도넛과 꽈배기 뜨끈한 것을 사주고 갔다.
저녁엔 서현 씨가 동암으로 도가니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친오빠들 얘기를 하고 싶다며 ᆢ
밤이 너무 깊어서 서현 씨와의 얘기는 낼 써야겠다.
사람들이 날 찾아와 줘서 고맙고 도가니를 다 먹은 서현 씨가 쫀드기를 예쁘게 씹어 먹는 모습이 소녀답게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