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언덕을 비비다
꽃잎바람과 데이트 신나게 즐겼는데
풀잎바람 꼬셔대서
열 일 제치고 나왔더니
통나무는 꿋꿋이 서고 머릿결이 산만하네
나무가 바람을 만들었을까
마음의 색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솔솔바람으로 비집고 들어
바람그네를 태운다
뻥 뚫리는 가슴엔 세상천지가
성냥갑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중
나 어질어질한 것이
가을바람에 미쳐버렸다
두 팔 벌린 새로 다 통과되는
강렬한 풀잎바람에 쏘였다
무슨 말이 필요해
날 훑어 주는 네게 반하다
생활전선에서 바쁘게 살아내냐고 바람 맞을 새가 없었다. 이제 쉴 틈이 난 걸 알아챈 계절이 바람을 실어 와서 나를 흔들었다. 봄엔 꽃바람으로 꾀더니 가을이라며 풀잎바람이 날 불러냈다. 나무 기둥은 가만있는데 바람을 데려다 놓고 시치미 뚝 뗀 나무가 머리 풀어 산발하고서 소슬바람 실컷 빗줄기처럼 뿌려 댔다. 한 아이가 치던 배드민턴공이 나뭇가지에 걸쳤는데 10분 정도 모른 척하다가 바닥으로 떨궈 주더라. 어린아이도 갈바람은 쐬줘야 제맛 난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선선한 바람이 나를 흥분시켜 주는 날이 다 있다. 그래서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