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파랑 잉크 찍어서 뭐라도 써봐. 유치환의 시 그리움에서 파도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저절로 나도 이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곁으로 파랑이는 짙푸르다 못해 파도를 넘어 하얀 거품을 토해내고 있다. 이보다 더 푸르둥둥은 없다며 에메랄드빛으로 찐하게 수평선을 그었다. 내 속에 쩔어있던 털지 못한 잡다함을 파도 소리로 후려 파간다. 삶 속에 묻힌 찌꺼기를 파랑이 부서진 흰 거품으로 몽땅 그슬려서 간다.
다시 짙파랑이 되게. 옆의 다른 이들도 찐파랑에 부서지는 흰 포말을 한없이 담아 들면 바다는 하늘이 된다. 세상의 거스러미를 확 훑어서 밀려 나갈 때 주자들한테 바톤터치 해주면 파랑의 끝은 하늘이 되어 높이 높이 분산 가루 되어 물구름이 된다. 하늘과 바다는 그래서 파랑이다. 펜촉에 묻혀서 안녕, 사랑, end to end 하여 새로운 마후라를 두르라. 나풀나풀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머플러 수건을 적셔 저 먼 끝에 내가 볼 수 있다고 흔들어주라.
이쪽 땅끝의 소식을 반대편 파랑이 끝으로 딜리버리해 주면 먼발치의 끝에서 회신이 온다. 파랗다의 안속에 그리움까지 묻혀서 빨리빨리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하얗게 부서져 가며 큰 파도를 쎄게 밀어준다. 세상은 동그랗다. 보름달이 뜨면 바다가 울어서 먼 곳의 님에게도 내 소식이 끊이지 않게 된다. 소통되어 수평선 끝이 보이는 거다.
파랑 파랑은 뻥 뚫린 가슴을 확 비워져서 일듯 새 욕심이 생겨 수평선 넘어 무엇에 다다를까 궁금한 소식의 끝을 먼저 보고 있으니.
파랑 잉크는 바다와 하늘을 맞닿아서 온통 코발트블루 빛으로 쏟아부었다. 이어짐을 알려주기 위해서 저 멀리 끝자락이 보이는 게다.
저녁 파도에 금빛이 난다. 해가 기울면서 먼지 터는 걸 요것마저 채가려고 벼루고 온 것이기에 세상 것을 궁금한 나머지 몽땅 실어 가서 밤이 되면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바다 것들한테 선물로 내주려고 보이는 만큼 실어 가는 것이다. 솔향의 소나무숲 바로 앞 모래사장엔 흰 거품 파도가 저 멀리 능선 소식을 빠스러주고 모래 속으로 수그러들어 간다.
우리네 삶의 아파하는 것이 흰 포말 속에 숨겨져 들어간다. 낼 태양은 이 물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를 테니 파랑과 붉음은 매치가 잘된다며 손뼉 치며 흰 거품으로 모래사장 가장자리에 속치마의 시접을 미리 넣어서 팔랑대줌이다.
모인 이들 하나같이 외친다. 아 속이 뚫려!
*옥계 주문진 경포대 정동진 네 곳의 바다를 해거름 때까지 돌았다. 속이 뻥 뚫려서 다 비워가냐고 시원하다만 남게*
*이실직고한 사연들을 찐파랑 잉크로 옮아가서 하늘로 날려 보내는 바다는 흰색의 후라이로 펴주어 맥주의 거품으로 훑어간다. 잔소리 같지 않은 청량함만 갖고 돌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