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밤새 물수건 효과를 보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평창을 지나면서 산 병풍에 둘린 청정구역의 하늘은 파랑, 하늘, 그보다 더 흐린 하늘색으로 수채화 빛 이어서 '아유 예뻐' 감탄사가 나왔으나 잠시 후 비가 쭉쭉이 흐르고 있다. 그래도 억수비의 훼방으로 5월 여수 여행만큼 실망하진 않았다.
중딩 때 오던 길과 풍광이 완전 딴판이어서 도로와 터널은 도시화되고 아파트도 들어서니 시골 냄새는 아예 티도 안 났다.
김혜자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급체로 아프셨다며 동해가 멋있으니 여행을 잘하라고 하셨다. 어디가 딱히 좋은지는 아직 모르고 일단 식당부터 찾았다.
이른 저녁으로 보리밥 정식에 제육볶음을 주문했다. 주인장은 고구마순을 탁자에 잔뜩 쏟아부어 질긴 껍질을 벗기고 있고 우린 식탁에 놓인 보리차를 마셨다.
놋그릇에 담겨온 꽁보리밥을 나물 넣고 비비니 건강식이다. 이 중 취나물은 내 취향이어서 향에 반하고 맛에 반하니 딸내미한테도 권했다. 후식으로 1인당 2천원을 추가하면 보리 아이스크림을 듬뿍 한 컵씩 받게 되어 강릉의 특색일는지 보리밥 식당만의 일품인가 모르겠다. 아무튼 호식을 했다.
허기를 채웠으니 기후를 미리 검색해서 예약해 놓은 영상관에 갔다. 세상은 4차원이고 낼은 또 어떤 인공지능이 도를 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할는지 눈뜨면 핫 뉴스가 된다.
우천 관계로 아르떼뮤지엄에서(전시관) 미디어아트 체험을 했는데 클래식 음악과 자연풍광이 어우러져서 황홀감에 빠지게 되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환호를 지른다.
강릉 제주 여수 부산 이렇게 4곳의 미디어아트 중 강릉은 가장 규모가 크다. 배치되어 있는 동물 그림에 색칠해서 스캐너에 대주면 만화처럼 움직이는 동물이 되어 콘텐츠가 미디어로 화사하니 아이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쫓아서 유혹에 몰입한다.
눈이 휘황찬란 동공이 넓어지며 퇴고를 대신하는 정열이다. 만세를 외치고 펜을 내려놓을 때의 그 기분과 상통하는 환호다. 예술의 극치는 사람을 설레게 한다. 감동이 일면 만끽이 되니 오늘은 나만의 기념일이다.
비가 그치는 내일은 동해의 그림을 신선으로 맞을 것이니 강릉을 제대로 느낌해야겠다. 그러면 시라도 한 편 나오겠지.
이런 날도 있다니 꽃 속에 파묻힌 꽃소녀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