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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살고 안 울고 살아요

(10)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by 블라썸도윤

오전 출행 92세 아줌니를 뵙게 된다. 거슬림이 없이 평안함을 바로 느끼게 해주는 분!



예의가 아예 바르시고 곧은 생활만 하신 게 이분의 미소와 말씀에서 바로 우러나온다. 참하시며 길가는 차를 비켜 주실 땐 “축복합니다!” 두 손을 합장하시고 기원해 주신다.


가만가만 말씀 하시고 “예 예”로 핸드폰이 고장 났나 봐달라시는데 차분하시니 “성품이 고우세요.” 하면 또 “예 예”로 대답하신다.


내 엄니가 요양병원에 계실 때 8인이 쓰던 병실에서 느낀 점, 그리고 이곳 동네 연장자들이 체육공원에서의 대언(大言, 고분고분 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는 말)을 보면 정내미 떨어지게 쌀쌀 궂던데 이분한테서 온후함을 느낀다.


내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시길래 그리고 웃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 고와서 조금 길게 얘길 나누게 된 동기다. 귀가 잘 안 들릴 뿐 바늘귀도 직접 꿰신다고 했다.


심성이 맑으신 이분은 단박에 그러셨다. 지는 예 바보로 살았습니대. 말 못 하는 바보 예. 또 난 절대 안 울었어예. 억울하다고 울지 않았어요. 다 배기는 거라예. 그래서인가 어째서인가 제 증손주들까지 지금은 마 다 좋은 직책에 있슴돠.”


그래서인가 보다. 바보처럼 잘 참고 살아내셔서 온순한 성품이 나오시는가 보네. 말을 굶고 사셨다. 귀를 막고 안 본 척했으며 입을 아예 틀어막고 살았더니 끝내는 웃음이 많아지더라고 덧붙여 말씀해 주셨다.


나이가 들면 더 아기 같고 어린아이 같은 성격이 되어서 억지 부리고 심술궂이 되니 요양보호사들이 힘들다고 했다. 이분 내 엄니보다 5살 연상이신데 내가 할머니라고 칭해드린다.


부드러운 모습의 웃는 얼굴, 이 모습 자체로 인사만 하고 지나쳐도 내가 맑아진다. 좋은 기운을 내주셔서 뇌까지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나도 이렇게 곱게 마음의 주름을 가져야겠다. 이 분처럼 지나가는 존재한테 축복을 빌어 주는 고운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또 다짐한다.


예전 전단 알바할 때 이 골목 윗집에서 내게 요구르트를 권해주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 간직된 채 웃는 모습에서 ‘참 예쁘시다’를 곤히 옮아왔다.


참 참 잊어버릴 뻔했네.


“나 우리 할아버지 갔을 때 절대로 안 울었어요. 양복바지 입은 채로 화장실서 나오시다 갔는데 난 하나님이 부르셨네. 하면서 눈물을 짜지 않고 기도를 드렸어요. 좋은 데로 가십사 하고 기도만 올렸지요.”


좋은 사람과 가까이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될 터. 맑은 향에 같이 빠지면 내게서도 푹 담갔던 디퓨저 향이 은은하게 퍼질 것이리라.


곱게 맑게 청량하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주고 세상 갈 때 예쁜 미소를 짓고 가야지 마음에 새기고 있다.


뭘 어떻게 새기냐고 - 말(言)을 아사하고 묵언하는 게 일상에다 퍼즐조각 맞추듯이 내 마음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거.


이 할머니의 웃는 모습은 비 온 뒤의 밝은 태양 같고 솜털구름 뭉게구름이 곱게 발산하는 하늘빛이다. 아침 출근길에 청량한 바람을 맞아 괜스레 마음 설레어서 남은 잠 깨어버리니 정신이 확 맑아진다.


좋은 아침!


되려 아침에 뵌 할머니한테서 좋은 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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