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STRONG)은 타의로 지어진 별명이다.'
평안한 일상에 던져진 돌은 잔잔한 파문 대신 사나운 파도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이따금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과 만나, 혼란과 갈등에서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층 더 성숙해진다. 2013년 미국 보스턴, 폭탄테러로 인해 두 다리를 잃었지만 끝내 우뚝 서면서 미국 전역에 희망을 전한 영웅이 있었다.
대형 마트에서 근무하는 청년 ‘제프’는 연인 ‘에린’이 자선모금을 위해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 응원 갔다가 폭탄 테러의 피해를 입는다.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두 다리를 잃게 된 그는 대수술 후 며칠 만에 의식을 차리고, 범인을 목격했다고 진술하면서 테러범의 체포를 돕는다. 이 활약상이 알려지며 그는 비극을 이겨낸 영웅, ‘보스턴 스트롱(Boston Strong)’으로 불린다. 그리고 현실에 적응하기도 전, 영웅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제프는 상처 회복에 힘쓰기보다, 주변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꿋꿋하게 버틴다. 연인 에린만이 제프의 두려움을 목격하고,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을 위로하며 극복하도록 돕는다.
제프를 향한 관심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개인이 아닌, 범인을 체포한 영웅에게로 향한 것이다. 모두의 위로와 환호는 그를 굳건하게 만들기보다, 자신의 슬픔을 외면하도록 만들어버린다. 비극을 경험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임에도, 수많은 이들이 위로하기 때문에 견뎌야 된다고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이 닥친 뒤 좌절의 감정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며, 하루라도 빨리 일상을 되찾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에 지쳐버리고, 평범한 삶을 향한 의지마저 놓게 된다. 실망한 에린이 등을 돌린 순간, 그는 테러가 일어난 직후의 아비규환을 떠올리며 외면해왔던 내면의 깊은 공포와 마주한다.
이후 그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비슷한 종류의 슬픔을 나누면서,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 배운다. 타의로 지어진 별명 ‘스트롱(Strong)’이 아니라, 가장 나약한 자기 자신과 만나고 나서야 ‘더 강하게(stronger)’ 일어선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진심 어린 공감에서 위로 받고 두려움과 마주보는 제프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위로의 방법을 알려준다. 힘내라고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손길이라고 말이다.
긴장감 없이 담백하고 잔잔하게 제프의 시련과 극복을 그려낸 영화는, 영웅이 아닌 생존자로서 실존 인물 ‘제프 바우만’의 집중한다. 테러범을 체포하는 극적인 장면 대신 드레싱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나. 침대에서 떨어지며 코피 흘리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나타난다. 방황하고 괴로워하며 오열하는 주인공들의 대사에선 우리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제프가 의족 위에 우뚝 설 때, 실화가 주는 감동은 더 묵직하게 울린다.
절망에 머무르고 있다면 애써 괜찮은 척하기보다 솔직한 마음과 마주해보자.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다. 희망이 있다는 믿음만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다시 올라설 수 있다.
사진 제공 Bold Films, Lionsgate, Mandeville Films, Nine Stories Productions, Roadside Attractions, 올스타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