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사귀는 방법

by 미쓰당근


여행을 앞두곤 곧 떠날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여행 중에도 다음엔 또 어디에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 내게 누군가는 여행 가서 짝을 만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고, 나 역시 여행 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참 낭만적이겠다는 소녀 같은 기대를 은근슬쩍 하기도 한다.(결혼한 친구들이 아직도 멀었다고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다들 그런 상상을 한 번쯤은 하지 않나? 또 그 꿈같은 기대를 품은 건 ‘Before Sunrise’라는 영화도 한몫했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서로에게 끌려서 비엔나에 함께 내려 하루 동안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영화인데, 지금은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의 잘생기고 매력 넘치던 에단 호크(제시 역)와 예쁘고 지적인 줄리 델피(셀린 역)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에 푹 빠져 그들의 풋풋한 사랑을 하염없이 부러워하며 보았더랬다. 영화 제목과 같이 해가 떠오르면 셀린은 파리로 제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둘은 1년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는데, 그들이 과연 다시 만났을지 궁금해 잠이 안 올 정도였다. 그들이 다시 만났는지는 이후 속편으로 나온 ‘Before Sunset’과 ‘Before Midnight’을 보고 확인해 보기를.


그래서 그렇게 희망을 품고 숱하게 여행을 다니면서 난 누군가를 만났냐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아픈 현실을 깨닫는 중이랄까.

그렇다고 나의 씁쓸한 자기 고백을 하기 위해 영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한 건 아니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여행들을 생각해 보면 어떤 여행이었든 간에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든 같이 간 사람들과 함께했던 추억이든 그것이 영화처럼 로맨틱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해도 그저 멋진 풍광뿐이었던 여행보다는 훨씬 충만한 기분이 남는 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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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여러 번 갔지만 사실 뉴요커를 친구로 사귀었다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낯가림이 아주 심한 것까진 아니지만 누군가를 만나자마자 친화력을 발휘하며 짧은 시간에 쉽게 친해지는 성격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러는데,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듣기와 말하기 실력으로 다니는 외국에서는 오죽할까.


그래서 뉴욕에서 경험한 만남과 그들과의 대화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단편적인 일들뿐이다. 길을 찾는 듯 보이면 “도와줄까?¨ 하며 말을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누군가, 도서관에 갔더니 안내도 친절하게 해 주고 여행은 즐겁냐며 이것저것 여행 이야기를 물어보던 직원 할아버지, 우연히 공원 벤치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한국어 책을 보고 있는 내게 한국인이냐면서 자기도 한국에서 잠깐 살았다고 반가워하던 어떤 뉴요커, 바쁜 아침 시간 베이글 가게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긴 줄의 압박에 소심해져 안 되는 영어로 버벅거리며 주문했더니 “혹시 한국인이세요?” 하며 빙긋 웃어 준 베이글 가게 청년(그 청년 덕에 아주 편하게 한국말로 주문했다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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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친구가 되고 싶지만, 대부분 시간을 쪼개서 가게 되는 짧은 여행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하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친구가 된다는 것이 잠시 스쳐가는 여행에서만 어려운 일일까만.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거나 다른 사람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건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지만, 실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하기 어려운 일이 된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며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이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지고, 새로운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처음의 어색함이 부담스럽고 불편해 마음에 맞는 오랜 친구들과의 편한 만남을 위주로 관계를 이어 간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의 깊이 있는 관계도 소중히 가꾸어 가야겠지만, 자꾸만 안으로 움츠러드는 관계의 바운더리를 조금은 넓히며 살아야겠다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다음에 뉴욕에 가면 어색한 마음이랑 잠시 넣어 두고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씩씩하게 이야기하며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여행을 기대한다.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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