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을 안다는 건
살다 보면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 반대로 '나랑은 정말 안 맞는구나.' 싶은 사람도 만난다. 일상생활에서야 그러려니 넘어가기도 하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며 안 만나면 그만인 경우도 있지만,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잘 안 맞으면 가뜩이나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장 생활이 더 힘들고 답답해진다.
한번은 기존의 팀원들 외에 다른 팀에서 팀원들이 합류하며 새로운 팀이 꾸려진 적이 있었다. 함께 일해 왔던 팀원들이야 일하는 스타일을 서로 알지만 새로 일하게 된 팀원들은 안면만 있지 처음 합을 맞추는 터였다.
신규로 진행하는 일이라 함께 모여 회의할 일이 많았는데 회의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회의를 하고 나면 살짝 찜찜한 기분이 들곤 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기에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라 의견이 맞지 않아 신경전을 벌인 것도 아닌데 새로 합류한 한 팀원이 왠지 불편했다.
그러던 중 팀원들과 함께 팀 빌딩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팀 빌딩이란 팀원들의 작업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문제해결력 등을 향상시켜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조직 개발 기법으로, 조직 개편이 이루어진 이후 회사에서 팀별로 진행한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우리 팀에서는 ‘MBTI’라는 성격유형검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바빠 죽겠는데, 무슨 성격 검사를 한다고. 아직도 자기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잦은 조직 변경으로 인해 낮아진 직원들의 사기나 조직의 효율성이 이런 일회성 이벤트(?)를 통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바쁜 와중에 시간만 뺏는 보여 주기식 처사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다들 이런 걸 지금 꼭 해야 하냐는 얼굴로 마지못해 참여했지만, 검사를 마치고 각자의 성격 유형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아니 나중엔 꽤나 유익한 시간이었단 생각까지 들었다.
'몰랐는데, 저 친구 저런 성향이었네. 그래서 그때 그랬던 건가.‘
한동안 일하며 찜찜했던 마음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여러 변수가 생기니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가며 유연하게 일해 왔던 전형적인 ’P‘(인식형) 성향의 내가 처음부터 계획을 짜고 체계적으로 일하는 ‘J’(판단형) 성향의 그녀와 잘 맞지 않았던 것. 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결정하고 진행하려는 그 팀원의 방식이 좀 답답하게 느껴져 마음이 불편했던 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 팀원은 정해진 것 없이 일을 진행해 가며 결정을 하는 방식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유유자적한 성향의 나보다는 그 팀원이 오히려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래 전 그냥 넘겨들었던 예전 팀장님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재미로 다 같이 한번 해 보자던 ‘MBTI’ 검사를 한 직후였다.
”내가 ‘P’들 덕분에 피본다, 피봐~“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 역시 전형적인 ‘P’ 성향으로 우리 둘은 죽이 잘 맞았지만, ‘J’ 성향의 팀장님은 일을 시켜놓고도 계획적으로 일 처리가 되지 않는 것 같아 늘 신경이 쓰이셨던 거다. 그때는 팀장님의 우스갯소리인 줄만 알았는데, 실은 싫은 소리 잘 못 하던 맘 좋은 팀장님의 하소연이었던 것. 생각해 보면 우리 역시 ‘팀장님이 재촉하지 않아도 잘할 텐데, 왜 자꾸 물어보시지?’ 하며 툴툴댔던 것 같다.
손발이 척척 잘 맞는 사람과 일하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직장 생활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들하고만 일할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일하게 되었다고 해도 성향을 알면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상식선에서 어느 누구도 이해 불가한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은 예외로 치고.)
좋고 싫음을 떠나 ‘아, 그래서 저 사람과 잘 안 맞는 거구나.’ 하며 서로의 성향을 아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상대방을 아는 것이 갈등을 해소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정말 별의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직장에서 마음 편히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찾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