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전화 통화보단 인터넷 메신저로 소통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인터넷 메신저는 여러 명과 동시에 멀티로 소통이 가능하다 보니 간혹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채팅 창 여러 개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고 대화하다 보면 실수로 이쪽 대화 창에 할 이야기를 다른 대화 창에 잘못 적는 일이 종종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그 대화가 누군가의 뒷담화였을 때의 난감함이란! 회사에서도 간혹 그런 민망한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회사만큼 뒷담화가 많은 곳도 드물기 때문이다.
뒷담화, 뒤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니 사실 좋은 이야기보다는 험담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뒷담화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뒷담화를 하지 않기란 정말 어렵지 않을까. 상사의 납득할 수 없는 지시에 일일이 ’No’라고 맞설 수도, 누군가의 어이없는 업무 처리에 매번 조목조목 따지면서 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그 스트레스를 마음 터놓을 수 있는 동료와 뒷담화라도 하며 풀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뒷담화라도 하고 나면 부글부글 끓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이 잠시 시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뒷담화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 내 감정을 공감해 줌으로써 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위로받을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스트레스를 주는 이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도 뒷담화는 한번 시작되면 끊을 수 없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뒷담화를 하면서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지만, 모일 때마다 누군가의 뒷담화가 대화의 주가 된다는 건 뒷담화도 습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뒷담화가 일상화가 되면 누군가를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주저함이 사라지고 그런 행동에 점점 무감각해진다고나 할까.
동료가 열 받는 일을 토로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맞장구를 쳐 주며 공감해 줄 순 있지만, 그런 뒷담화가 매번 반복되거나 모일 때마다 늘 어느 누군가를 화제 삼아 뒷담화로 이어지는 자리는 영 기분이 개운치 않고 피곤하다.
물론 나도 사회생활을 해 오며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뒷말을 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도 점점 더 무뎌졌을 것이다. 예전엔 내가 힘들어도 뒤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사회 초년기 시절 팀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후배가 있었다. 또 다른 후배 한 명과 셋이 함께 일을 진행했는데, 한 후배의 일 처리가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그 후배가 한 일을 수정하는 데 품이 너무 많이 들다 보니 업무에 과부하가 오고 혼자 야근하는 일도 잦아졌다. 조심스럽게 그 후배에게 말한들 업무 처리가 갑자기 능숙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점점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른 이에게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힘들었다. 싹싹하고 밝은 성격의 그 후배는 직접 일을 함께하지 않는 이들에게 평판이 좋았고, 나 역시 업무를 떠나서는 너무나 친하게 지내는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 후배의 업무 능력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친한 후배의 뒷말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던 거다.
혼자 야근하는 일이 많고 표정도 별로 안 좋았는지, 하루는 팀장님이 나를 따로 불러 힘든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같이 일하다 보니 수정해야 할 게 많아서….“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뒤에서 하는 것이 불편해 흐지부지 말을 흐렸다. 사실 그렇게만 이야기해도 팀장님은 대충 그 속뜻을 이해하시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팀장님은 아예 번지수를 잘못 짚어 이야기하시는 게 아닌가. 그 후배가 아닌, 같이 일했던 또 다른 후배 이야기를 하며 힘들더라도 잘 도와주며 해 보자고. 사실 팀장님이 말한 그 후배는 조금 까칠하긴 해도 자기 몫의 일을 잘 해내고 있던 친구였다.
”아…, 그게 아니라……. 아…. 저….“
”이야기 안 해도 다 이해해. 괜찮아.“
결국 난 팀장님이 말한 후배 때문이 아니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다 그 자리를 나오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정확히 이야기하는 것이 후배의 뒷담화라고도 할 수 없고, 또 설령 뒷말이라고 해도 그 정도면 아주 우아한 뒷담화였던 것을.
직장 생활에서 모든 사람이 나와 잘 맞을 수도 없고, 또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기에 그 스트레스를 뒷담화라도 하며 풀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는 그저 술자리의 심심풀이 안주마냥 습관처럼 다른 이들의 뒷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뒷담화는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보다는 공허함과 피로감만 남기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늦었지만, 그때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해 팀장님에게 엄한 오해를 받은 그 후배에게도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그 오해의 진실은 일하면서 훗날 자연스럽게 밝혀지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