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뇌의 연결을 가진 존재들이다. 나와 똑같은 연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같은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일지라도 똑같은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고유의 존재이고, 다른 존재임을 존중해야 한다. 타인의 연결을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고유한 뇌의 연결을 가지고 있다
물론 큰 틀에서 비슷한 연결은 존재한다. 이 연결은 같은 상황에서 비슷하게 반응한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각각의 사람들의 무리는 비슷하게 반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큰 무리부터 작은 무리까지 각각의 패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각 지역별, 각 세대별 감수성을 공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친해지면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나, 마지막 음식을 서로 양보하는 것은 예의나 배려에 기반한 우리의 문화 패턴이다. 반면 다른 문화에서는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거나 음식을 같이 먹지 않는다. 문화에 따라 행동 패턴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같은 문화권이라도 각자 다른 뇌의 연결을 가지고 있다. 즉,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뇌의 연결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기간 동안 형성된 강력한 패턴이다. 뇌는 그것이 현재의 최적화 상태로서 세팅을 했다. 물론 연결은 계속 바뀌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 그렇기에 그것은 절대로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의 연결을 바꾸려고 강요를 하면 다툼이 일어난다. 특히 연인이나 가족들은 이러한 이해가 중요한데, 다른 연결을 가진 존재로서 인정하기보다는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나의 연결상태와 상대의 연결상태 간의 충돌이다. 같은 상황에서 나의 생각은 A로 이동하도록 길이 연결되어 있는데, 상대는 B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각자에게는 모두 맞는 생각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나는 A라는 결론을 토대로 감정 좌뇌를 작동시키고, 상대는 B라는 결론을 토대로 감정 좌뇌를 작동시킨다. 감정 좌뇌끼리의 충돌은 싸움을 의미한다. 옳다는 믿음과 옳다는 믿음의 충돌인 것이다.
감정 좌뇌의 충돌 상태가 강력하면 감정싸움이 된다. 이때 A와 B를 만드는 논리는 싸움을 위한 수단이 되며, 이 상태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이 상태를 해소하려면 둘 중 하나는 감정 우뇌로 이동해야만 한다.
물론 감정 좌뇌가 작동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싸우는 것은 아니다. 감정 좌뇌에도 인내심이 존재한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이 있는 것이다.
감정 반응의 한계선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감정 좌뇌는 반응하지 않는다. 이 상태는 무반응 상태다. 하지만 일정 강도의 반응선을 넘어가면 감정 좌뇌는 약한 반응을 한다. 이 지점이 약한 반응선이다. 기분이 나쁜 반응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약한 반응 상태이기 때문에 참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계속 반응이 심해지면 반응의 한계선에 도달한다. 이곳은 강한 반응이 일어나고 화를 내는 영역이다. 화를 참지 못하고 좌뇌 강아지가 달려 나가 싸우는 상태가 된다. 이때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며, 동공이 확장된다.
중요한 건 이 반응의 한계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상황도 누구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반면, 누구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보통 우리가 다혈질이나 성격이 이상하다고 부르는 사람들은 반응의 한계선이 매우 낮은 사람들이다. 특히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데, 트라우마의 발현은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상태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트라우마 반응선은 참기가 불가능하며 매우 낮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명상은 반응의 한계선을 높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래서 명상 반응의 한계선은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고, 위치를 계속해서 높여 나갈 수 있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화가 나는 상황에 직면해도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상대가 감정 좌뇌를 활성화시켜 공격을 해도 나의 감정 좌뇌는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나의 생활에서 충돌과 불화의 상황을 현저히 낮춤으로써 생활 자체를 바꿀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의 도발에도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행동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명상을 통해 반응의 한계선을 높여나가는 것은 삶 자체를 바꾸는 긍정적인 행위이며, 궁극적으로 내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마음 기술인 것이다.
명상이 만드는 다른 패턴
이를 다른 각도에서 더 살펴보자. 우리는 감각에 반응을 한다. 그리고 반응은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만들어 낸다. 물론 행동은 복합적으로 일어나고 매우 복잡하지만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단순화시켜 보자.
외부의 자극이 왔을 때 일반적으로는 약한 반응선 아래에 위치하므로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약한 반응선을 넘게 되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반응이 일어나고, 강한 반응선을 넘게 되면 못 참고 행동을 한다. 이때 상대에게 화를 내는 강한 부정의 상태가 되거나 상대의 말을 반박하는 일반 부정의 상태가 된다. 이때의 반박은 겉으로는 논리적인 것처럼 보여도 기저에는 화가 난 감정이 자리 잡고 있어,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는 나의 주장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반박에는 반응하는 반박과 반응하지 않는 반박 두 가지가 존재한다. 반응하는 반박은 위에 설명한 부정의 상태이고, 반응하지 않는 반박은 평정 상태이다. 반응한 상태에서는 호르몬의 화학반응과 부교감신경의 신경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적대적 감정의 좌뇌 강아지가 나선다. 반면, 반응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반박은 평온한 상태에서의 반박이다. 이때는 비적대적인 소통의 우뇌 강아지가 나선다. 전자가 흥분한 상태에서 내 주장만 펼치거나 상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싸움의 상태라면, 후자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입장을 수정할 수 있는 열린 상태의 논쟁이다. 보통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만 대부분은 부정의 상태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대부분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전자는 감정적인 대응이지만 후자는 비감정적인 대응이다. 명상의 상태는 똑같이 반박을 하거나 목소리를 높여도, 흥분 상태가 아니다. 마음의 상태는 언제나 평온의 상태다.
내부 자극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인 반응을 하면 우리는 행동하지 못한다. 두려움에 못하겠다는 강한 부정을 보이거나 하기 싫어하는 부정의 상태를 만든다. 귀찮아하는 약한 부정도 감정의 상태를 만들지 못해 나타나는 결과다.
반면 긍정적인 상태를 만들어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상황을 만든다. 하나는 차분한 긍정과 또 하나는 강한 긍정이다. 행동을 하는 긍정의 감정 반응은 말 그대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강한 긍정은 부작용도 동반한다. 지나친 낙관이나 환상에 빠질 수 있고, 쉽게 흥분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결과가 다르면 실망감으로 반응하고, 반작용으로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실생활의 대부분의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부정적 결과로 도출되기 쉬운 감정 상태인 것이다.
반면 차분한 긍정은 행동하되 흥분하지 않는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일을 추진할 수 있다. 강한 긍정이 불타오르다가 금방 식는다면 차분한 긍정은 평정 상태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더 오래 행동할 수 있다.
이러한 반응들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며 우리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행동에 따라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 습관을 만들어 간다. 이에 대한 결과가 자신의 인생이 된다.
그래서 명상은 바로 우리 인생의 결과에 관여한다. 명상은 외부 자극에 평정 상태를 유지하고, 내부 자극에 평정심을 통한 차분한 긍정을 만들어 낸다. 우리 일상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다양한 반응을 만들어 낸다면 명상은 통제 가능한 평정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신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명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명상은 시간 날 때 하는 고상한 취미가 아니라, 가장 먼저 해야 하는 마음의 기술 연마이다. 기본기가 있어야 원하는 응용이 가능하듯, 명상은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기본기이다.
이것이 진정 명상의 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