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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Jan 18. 2019

친구의 이별

일상의 기록#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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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친구가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친구의 슬픔을 내가 감히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힘들어하고 슬퍼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겪어보지 못한 고통은 공감하기 힘들듯이 그저 헤아리고, 이해하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에 가슴아픈 이별을 하나씩 품고 있고, 이별의 아픔 또한 절대적인 영역이라 아픔의 크기를 감히 짐작할 수 없겠지만 최근 주변에서 보았던 슬픔과 깊이와 결이 사뭇 달랐다.


친구의 이별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독 공감이 되고 나한테까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 있는데, 갑자기 이별하게 되어서 마지막으로 보면서 했던 말과 표정들이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을 본인의 모습이라는 말이 참 슬프고도 아팠다. 사랑이 갑자기 불쑥 찾아오듯, 이별 역시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있을 때 잘해'라는 그 말이 유독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생각해보니 연인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동료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갑자기 이사를 가거나, 이직을 할 수도 있고, 정말 있어서는 안 되지만 불의의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오늘을 반복되어 살아가다 보니 무뎌짐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표현하고 말하는 건 어떨까. 소중하거나 꺼내기 어려워서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생각과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기를 잃는다. 감사했던 순간에 말하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은 것이 되고, 미안하다고 느낄 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미안하지 않은 것 밖에는 안된다. 자꾸 꽁꽁 숨길수록 남는 것은 후회뿐이고, 아쉬움뿐이다. 조금만 용기 내어 표현한다면 표현하지 않았을 때 느끼는 후회와 상실감보다 훨씬 값어치 있고, 소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일상에 가까워진다는 건 행복이란 감정도 커지지만, 반대편에서 아픔도 동시에 커지기도 한다 시소를 타듯이 행복에 가까울 때도 있고, 아픔에 가까울 때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나만의 행복을 위해 시소를 위에서만 타려고 한다면 반대편에서 상대방은 아픔을 감내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줄도 모르고 끝까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상대는 관계의 끈을 확 놓게되어 더 크게 아픔으로 추락한다. 갑자기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어쩌면 갑자기 일어난 일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에도 정답이 없듯이, 이별에도 정답은 없다. 나의 노력과 최선이 상대방에게는 최선과 노력이 아니듯이,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될 뿐이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이별을 논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다는 건 남아있는 경우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상대방은 몰라주더라도 남아있는 경우의 수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해봤으면 싶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그래야 나중에라도 덜 후회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있을 때 잘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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