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젊은 연인이 매장에 찾아왔다. 무언지 모를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내 예측으로 보아 그들은 자신들의 첫 매장을 오픈할 예정인가 보다.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여달라 했고 내가 물품을 가지러 가는 동안에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젊은 연인 둘이 꽁냥대는 모습 때문인지 나도 덩달이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물품을 종류별로 보여주었고 그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가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둘은 한참을 고르는 척했다. 서로 얼굴을 보며 눈짓과 표정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들의 표정 사인을 보고 있었다. 남자의 눈썹이 올라가고 여자의 입이 움찔거렸다. 내가 물품의 가격을 말하는 순간 그들에게 나의 매장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 되었다. 나의 메마른 가슴에 기분 좋은 소나기를 내렸던 그들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장맛비가 되어 나도 같이 늪에 빠져 버렸다. 우리 셋은 한동안 눈동자와 표정으로 대화를 하였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장사꾼이 해서는 안될 말을 그들에게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이 안 맞으시면 다른 매장에 알아보셔도 됩니다" 이런 내 말에 그들은 놀람과 안도감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었다.
젊은 연인은 '죄송하다'며 서둘러 매장에 빠져나갔다. 드디어 내가 만든 가격의 늪에서 우리 모두는 해방이 되었다. 그들은 다시 꽁냥 꽁냥 한 연인의 모습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매장 오픈에 한껏 설렘이 가득할 텐데 별것 아닌 것에 난감해하는 그들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착한 심성이 때로는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 매장을 오픈한 그들의 결심에 언제나 행복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집에 오는 길에 갓길에서 과일 트럭이 보였다. 마침 집에 복숭아가 다 떨어져서 마트에 들를 참이었다. 마트보다는 과일 트럭이 덜 귀찮아 보였고 30개에 만원이라는 글귀도 제법 내 차를 멈추게 하는데 일조를 했다. 차에 내려 진열된 복숭아를 보는데 개수도 글귀와는 달랐다. 게다가 만원 복숭아는 너무 작아 선택을 할 수 없었고 결국 2만원 복숭아 중에서 선택해야 했다. 사실 그냥 가고 싶었다. 하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망설이는 나의 모습을 유심히 보던 과일 아저씨는 '마트에서 파는 복숭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라고 말하고는 서비스로 몇 개 더 주겠다고 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라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서비스에 눈이 갔다. 사실 내 앞전에 사간 남자는 서비스가 없었다. 과일 아저씨의 서비스가 나의 망설이게 했던 복숭아의 개수를 무마시켰다. 결국 나는 서비스가 든 2만 원짜리 복숭아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서 복숭아를 내밀려 서비스를 잔뜩 받아왔다 자랑했다. 아내는 비닐봉지 안에 복숭아를 보더니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말했다. 아내가 꺼낸 복숭아는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다. 사실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 잘 만지지 못해 대충 눈으로 보고 사야 한다. 그래서 멍이 든 복숭아를 보지 못했다. 결국 그날 사온 복숭아의 절반 이상은 버려야 했다. 과일 아저씨에 속은 것도 화가 나지만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한 나에게 더 화가 났다. 갑자기 낮에 매장에 다녀간 젊은 연인이 생각났다. 그 젊은 연인을 걱정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누가 누굴 걱정해?, 너나 잘해'라는 마음속의 말이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