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

by 시원시원

아침 전쟁


눈 너머 아침의 밝음에 잠을 깼다. 나는 어스름하게 눈을 뜨고 시계를 보았다. 시계의 시침은 8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내를 깨우고 아들과 딸아이방을 차례로 가면서 문을 두드렸다.

"벌써 8시야"

"어서들 일어나"


나는 욕실로 향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어제 생각했던 시간보다 지체된 것에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고양이 세수보다 빠르게 씻었다. 그리고 내가 욕실에서 씻고 나올 동안 아들은 자기 방에서 엄마방으로 가서 누웠고, 딸아이는 일어나는 척하면서 다시 잠들었다. 아내는 여행에 가져갈 음식들을 챙기러 부엌에 있었다.

"아들, 빨리 일어나"

"늦었어, 9시에는 출발해야 돼"

"딸, 빨리 일어나"


나는 아이들이 일어날 동안 창고에 있는 캐리어를 꺼냈다. 그리고 현관 앞에 캐리어를 펼쳤다. 그렇다 오늘은 여행 가는 날이다. 나는 1박 여행이라 간단히 속옷 그리고 운동복을 캐리어에 넣었다. 아이들은 그제야 방에서 나왔다.

"다들 각자 물건은 알아서 캐리어에 넣어"

나는 소파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검색했다.

"1시간 20분 걸리는군"

"아직까지는 괜찮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아이스 박스를 가져와"

"그리고 이것들 캐리어에 넣어"

아내가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식탁 위에 가득 찬 음식들이 보였다.

"1박인데 너무 많은 거 아냐?"

"가서 굶을 거야?"


나는 아내의 한마디에 속으로 '분명히 반은 안 먹고 가져올 텐데'라고 투덜거리며 캐리어에 넣었다.

해외여행 갈 때 가져가는 큰 캐리어가 음식에 의해 빼곡히 들어찼다. 아직 아이들 옷과 아내 옷이 들어가지고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최대한 음식들을 한쪽에 정리를 했다. 그리고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라면 몇 봉지를 빼서 아들방으로 숨겼다.


벌써 30분이 지났다. 이제 정말 9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안 그러면 차가 밀릴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마음에 조급함을 더해주었다.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9시에는 출발해야 돼"

"어서 씻고 준비해"

"아들 그만 좀 서성이고 옷부터 입어"

"그만 좀 해!, 아이들은 어련히 잘할까"

나의 잔소리에 부엌에 있는 아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9시에는 정말 출발해야 된단 말이야"

"안 그러면 차 밀려"


나는 내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재촉한다고 되지 않는다며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식탁 위에는 내가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동안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이 순간에 아침밥이라니... 어차피 1시간 후에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것들을 먹을 텐데' 라며 속으로 생각한 말이 조금 튀어나왔다. 나는 놀라 밥을 서둘러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 곁눈으로 아내를 보았다. 다행히 아내는 아이스 박스에 담을 음식들을 넣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침밥은 휴게소에서 먹을 양은 남겨두고 먹었다.

캐리어를 보니 아이들이 가져온 물건으로 산을 이루었다.

"겨우 1박이야"

"그러니 간단히 챙겨"


솔직히 아내도 내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서 일부러 크게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물건을 하나하나 보면서 뺄 물건들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다 필요한 것들이야"

나는 딸아이의 물건 하나를 집어 들고 말했다.

"정말?"

그 물건은 수학 문제집이었다. 올해 고1이 된 딸아이는 여행을 가서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목별로 문제집을 다 넣었다는 데 있었다. 겨우 1박인데 말이다.

그때 부엌 넘어 아내의 말이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그냥 넣어!"

"아니... 그게.."

나는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결과는 뻔해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캐리어가 안보일정도로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때 시계는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캐리어는 물건들이 위치에 맞게 들어가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캐리어 닫는다"

다시 휴대폰을 보고 목적지까지 검색했다. 도착시간이 1시간 30분 아직까지 괜찮았다.

우리 가족이 자동차에 탄 시간은 9시 50분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 이외의 사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것, 그리고 마음대로 할수록 조급함만 더할 뿐이라는것, 설령 가족이라도..."


이제는 출발하자


나는 차 안에 아내, 딸, 아들을 번갈아 보았다.

"자 이제 출발한다."

"휴게소까지는 1시간 걸려"

드디어 힘들었던 긴 아침의 전쟁이 끝났다. 이제는 정말 출발만 하면 되었다. 출발은 순탄했다. 내차는 아파트를 빠져나가고, 어느새 시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가 안심할 때 순탄한 출발이 의심이 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무언가 놓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누군가 두고 온 거 아닌가 싶어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보았다. 아내, 딸, 아들 모두 다 있었다. 다행히 사람은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뒤에 앉은 아내에게 말했다.

"두고 온 물건 없어?"

"없는데"

나는 덧붙여 물어보았다.

"혹시, 집 위에 문은 잠갔어?"

"나는 안 잠갔어"

"딸, 네가 잠갔어?"

"아니, 나도 안 잠갔어"


우리 집에는 잠금장치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디지털 도어록이고 다른 하나는 옛날 보조키였다. 평상시에는 디지털 도어록만 잠그는데 여행을 갈 때는 불안해 두 개를 잠근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도 그 보조키를 잠근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의심이 이거일 거라고 생각했다.

"갔다 오면은 최소 15분, 어제 계획했던 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출발도 했는데...'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는 다시 돌아가긴 싫었다.

"그냥 출발하자"

"뭐 별일 있겠어"

그리고 몇 분을 더 갔다. 그런데

"이 찜찜한 의심은 뭐지?"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았다. 그 순간 나의 찜찜한 의심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건 바로 하이패스 카드였다. 저번 여행 때 아내 차로 가서 거기에 꽂아둔 것이었다. 아침 전쟁으로 가족들 물건을 신경 쓰느라 정작 내가 챙겨야 것을 잊어버렸다. 나는 집이 더 멀어지기 전에 무엇이 최선일지 빠르게 생각해야 했다.


우리의 여행 목적지까지 고속도로 톨게이트는 총 4개였다. 나는 일일이 현금을 내고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시간과 집에 돌아가 아내의 차에 가서 하이패스 카드를 가져오는 시간의 차이를 계산해야 했다. 게다가 아침에 빨리하라고 잔소리를 해댔으니 그들의 반응도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내심 하이패스 카드를 가져오는 대답을 바라며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하이패스 카드를 안 가져왔어"

"어떡하지?"

내 물음에 아내가 말했다.

"그냥 가"

옆에 있던 아들도 끼어들었다.

"아빠, 늦었어, 그냥 가면 안 될까?"

나는 아들을 보며 '너 때문이잖아'라고 말하려고 하는 순간, 딸아이가 껴들었다.

"현금 내는 시간보다 하이패스 통과 하는 시간이 더 빠르지 않을까?"

"그러고 올 때도 생각해야지, 집에 돌아가서 하이패스를 가져오는 게 맞아"

명쾌한 딸아이의 의견이었다.

나는 아침에 딸아이에게 화냈던 것들이 괜히 미안해졌다.

"역시 돌아가는 게 맞지"

나는 한마디를 거들고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 덕분에 1차 목적지인 휴게소까지는 20분이 길어졌다. 괜찮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니 별 문제는 없었다. 대신 아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이 되지 않자 집에 돌아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달렸다. 집문을 열고 아내의 차키를 찾았다. 그리고 위의 보조키 잠금장치 키도 가져 나왔다. 서둘러 문을 잠고 아내의 차에서 하이패스 카드를 꺼냈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내차에 올랐다. 아내가 보이지 않아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는?"

"마트에 갔어"


아내는 계속 투덜거리는 아들을 잠재우기 위해 좋아하는 간식을 사러 갔다. 역시 나보다 한수 위다. 차 유리밖 검은 봉지를 든 아내가 보였다. 검은 봉지 안에는 투덜 쟁이 아들을 위한 묘약이 들어있을 것이다. 아내가 차문을 열자 나는 최고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 이제는 정말, 정말, 정말, 출발이다.

여보, 혹시 검은 봉지에 내 간식은.... 없겠지?


따라가면 보이게 될 것들


아직까지 고속도로는 순탄했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 시간도 변함이 없었다. 게다가 찜찜한 기분도 사라졌다. 이제는 편하게 가는 일 만 남았다.

그렇게 30분 남짓 달리고 있는데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가는 길은 내가 잘 아는 길이다. 그곳에 여행도 자주 가는 길이라서 내비게이션은 도착 시간만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경로 이탈' 어쩌고 하는 소리에 내비게이션을 쳐다보았다. 화면에 도착시간이 30분이 늘어나 있었다. 시간이 늘어났으니 내가 아는 길은 막히는 것이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좀 멀지 않은 곳에 회차할 수 있어 돌아서 가면 되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휴게소에는 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휴게소이다. 휴게소가 주는 여행의 시작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휴게소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군대에 있을 때였다. 막 입소한 군대에서 나는 보직을 보급병을 받았다. 군대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병 때는 초 긴장상태이다. 그런 긴장상태에서 일주일마다 보급을 받으러 밖에 나가는 길은 나에게 행복이고 자유였다. 특히 가는 중간에 간이 휴게소에서 인솔 중사가 점심을 사주었다. 그때 그 음식맛은 지금도 생생히 어제일처럼기억이 난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면 나는 반드시 휴게소에 들른다. 한 번은 여행 목적지에 가는 시간보다 휴게소를 들린 시간이 더 길었던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휴게소를 포기하고 막히지 않는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랬던 추억 때문에 30분이 더 걸린다고 휴게소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족 모두 잠들어있었다. 이 상황을 아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우선 완벽범죄를 위해 내비게이션을 껐다. 그리고 막히더라도 이대로 30분이면 휴게소에 도착할 것이다. 그때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휴게소에 다 왔다고 그들을 깨우면 된다.


이제 목적지인 휴게소까지는 8km 남았다. 약 10분 뒤면 도착할 거리다. 내 정신은 휴게소에 미리 가있었다. "가락국수를 먹고, 후식으로는 호두과자와 커피를 마셔야지"

"통감자도 먹을까?"

"핫바와 소떡소떡도?"

"오징어는?"

이런 생각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내가 그러는 동안 차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휴게소에 있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저 멀리 전광판에 빨간 글씨가 보였다.

"전방 6km 정체"

"서행하시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들어오는 이미 도로는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차도 얼마 못 가서 그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6km 앞에서 사고가 났을 것이다. 나는 확신했다. 경험상 그랬다. 우리 여행은 일요일 가서 월요일에 온다. 그런 이유 중 하나는 숙박 가격이 이고 다른 하나는 차가 밀리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지금 차가 밀린다.

하필 휴게소 앞에서 말이다.


내차는 이미 달팽이가 되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럴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건데, 왜 내 옆차선은 빠르게 가는 것 같다. 나는 아닐 거라 굳건히 몇 번을 참고 참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옆차선의 차들은 나보다 훨씬 빠른 달팽이 같았다. 나는 이내 차선을 변경했다. 효과는 바로 나왔다. 좀 전까지 내 앞에 달리고 있던 차를 차선으로 바꿔 순식간에 앞질렀다. 나는 역시 바꾸길 잘했다며 내심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내가 바꾼 차선이 밀렸다. 1분도 채 안 돼서 저 뒤에 있던 내 앞에 달리고 있던 차가 나를 휙 지나갔다. 내 뒤에 있던 차도 나를 지나갔다. 다시 나는 원래 있던 차선으로 바꿨다.


좀 전까지 내 앞에 있던 차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작용도 있으면 반작용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나는 반작용만 작동할까? 주식도 마찬가지다. 남이 추천해 주는 종목은 죄다 손실이 크다. 그런데도 미련이 버리지 못하고 하는 이유는 남이 떡이 크게 보여서일 거다.


몇 번의 차선 변경 덕에 휴게소에 도착할 시간은 늘어날 때로 늘어났다. 마냥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마 안 남은 휴게소 도착시간이 궁금해서 내비게이션을 켰다. 근데 이게 뭔 일인가?

겨우 5km 남았다. 이미 도착 예상 시간은 훨씬 지났고 내비게이션은 40분이 더 걸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길은 아직도 뚫릴 기미조차 없었다. 다행인 것은 가족들은 아직 자고 있다. 나의 여행의 목적인 휴게소에 도로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내차 앞 차 옆에 흰머리가 나왔다. 다름 아닌 강아지였다. 그 녀석도 차가 막혀 답답한 모양이었다. 강아지 덕분에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잠에서 깼다.

"아빠 얼마나 남았어?"

나는 아들이 볼까 봐 내비게이션을 껐다. 그리고

"한 20분 정도"

"지금 몇 시야?"

"10시 40분"

"정말?"

아들의 소리에 아내, 딸이 잠에서 깼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사고가 크게 났나 봐, 길이 막히네"


차가 밀리니 답답한 마음이 나의 여행의 이유가 퇴색되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서였을까? 휴게소에 다다랐을 때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내 앞에 펼쳐진 휴게소는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었다. 주차할 자리조차 찾기 힘든 만큼 차들로 가득 차있었다.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미 초입까지 들어온 상황이라 차를 돌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내차 뒤에도 휴게소를 들어 올려는 차들로 길게 행렬 이어졌다.


"휴게소에서 주차난을 겪다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불만 가득한 볼맨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그럼 그냥 가자"

"가자고?"

아내의 말은 나에게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아내의 말은 나에게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그때 구원자들이 나타났다.

"아빠 나 소떡 소떡 먹고 싶어"

"아빠 나는 와플"

그렇게 나는 애써 휴게소에 들러야 하는 의미를 붙들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기까지 5분은 지금껏 달려온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차를 주차하고 아내는 화장실에 가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사러 갔다. 이미 휴게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음식을 파는 매장마다 길게 줄이 나있었다. 딸과 아들은 원하는 매장에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원하는 음식을 얻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휴게소 안과 차들로 가득 찬 휴게소 밖의 모습에 나는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리는 서둘러 차 안으로 향했다. 때마침 아내도 화장실에 나왔다.


차 안에 들어온 우리는 각자의 음식을 먹었다. 차는 계속 휴게소에 들어오고 사람들은 차들 사이로 다니며 휴게 속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을까? 내가 원하는 휴게소의 모습이 이런 걸까? 나는 휴게소에 온 것에 만족하나? 등등 휴게소에 온 나에게 미친 듯이 물음이 밀려왔다.

공들여 온 휴게소에 있는 내가 싫었다. 수도 없이 말한 여행의 이유라 말한 휴게소로 인해 지금 나의 여행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여기에 있다. 무언가 이끌려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가 내가 원하는 장소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곳은 내가 원하는 장소였지만 내가 생각한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의 음식을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의 가치보다 높을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꽉 막힌 차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서둘러 휴게소를 빠져나왔다.

얼마뒤 길은 뚫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큰 사고는 없었다.

단지 작년에 많은 비로 무너져 내린 길이 쇠벽이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차선 하나가 줄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으로 고속도로에 나온 수많은 차들로 인해 생긴 일이었다.


사진 속 공간이 현실로 순간이동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자 길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밀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은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후 1시 , 체크인을 하러 웰컴하우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3시 체크인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방을 얻기 위해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었다. 내 뒤에도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번호표를 뽑았다. 대기 순번은 37번이었다. 나보다 빠른 사람들이 37명이나 있다니... 그래도 평소와는 달리 휴게소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20분이 지나 체크인 전광판에 36번이 보였다. 순번은 어떠한 샛길도 없이 오는 순서 그대로다. 드디어 나의 차례를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치 나를 반기듯 전광판의 37번이 유난히 커 보였다. 부디 좋은 방을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37번 담당인 직원 앞에 나와 아내는 서있었다.


직원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예약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여기요"

나는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휴대폰에 있는 예약번호를 검색하더니 물었다.

"E건물 3층과 1층이 있고요, F방은 1,2,3층 다 있습니다."

"그리고 F방 3층은 지금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직원이 말한 방들은 솔직히 우리가 원하는 방은 아니었다. 3일 전에 예약을 한터라 남아있는 객실을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리가 원하는 방이 남아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신관에 남아있는 방이 있을까요?"

"찾아볼게요?"

직원의 한마디에 없었던 희망이 생겼다. 부디 제발 있기를 바라며 직원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쉽지만 오늘 예약이 꽉 차있네요"

"그래도 기다리신다면 오후 5시 이후에나 입실하실 수 있어요"

"아 그래요"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직원이 말한 오후 5시는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도 공실이 난다는 가정하에 말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직원이 말한 E건물과 F건물에서 방을 선택해야 했다. E건물은 수영장 뷰였고, F건물은 골프장 뷰였다. 그리고 E건물의 입실은 오후 3시였고, F건물 3층은 바로 입실 가능하였다. 그나마 우리가 원하는 3층은 E나 F건물 모두 입실이 가능했다. 다만 우리는 뷰와 지금 입실을 할지에 대해서 선택해야 했다. 나는 아내를 보며 말했다.

"바로 입실이 좋지 않겠어?"

"내가 찾아오니 수영장 뷰도 좋다던데.."

"그래도 전체 뷰는 바로 옆동이라 같지 않을까?"

"그런가?"


삶은 매 순간 선택하는 것이라지만 무엇이 더 좋을지 재는 이 시간이 내 여행의 맛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몹시 지쳐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내게 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F건물 3층으로 주세요"

"바로 입실 가능하죠?"

"네 입실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직원으로부터 방 키를 받아 F건물 3층으로 갔다. 딸아이가 방키를 도어록에 대자 문이 열였다. 나는 문안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내가 3일 전 사진으로 보았던 곳이 지금 현실의 공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물음 -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


신발을 벗고 들어선 내부는 바로 앞 주방이 보였고 8명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긴 식탁과 의자가 있었다. 그 앞에는 회장님 별장에나 있을법한 회색 소파가 있었다. 그 옆에 긴 창안으로 자연조명이 들어와 고즈넉한 느낌을 주었다. 방은 3개였는데 각각 욕실이 있었다. 아이들은 큰 숙소가 맘에 들었는지 각자 방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들은 큰방을 좋아해 침대 하나 있는 안방을 선택했고, 딸아이는 산이 누워서 보이는 침대가 2개 있는 방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머지 방은 자연스레 내 방이 되었다. 그 방문은 슬라이딩으로 되어있는 미닫이 문이었고 침대가 없는 방이었다. 두 달 전 디스크 파열로 침대생활이 힘든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아내는 딸과 같은 취향이라 딸방에서 잘 것이다.


나는 짐을 풀고 회색 소파에 앉는다. 장시간 피로 때문인지 긴 창가에 들어온 포근한 햇빛 때문인지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아내가 휴대폰으로 틀은 피아노 음악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고 음악소리와 햇빛 그리고 시간이 주는 여유를 만끽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성공한 사업가이다. 그러자 오늘 겪은 아침 전쟁과 거북이 도로, 그리고 때 이른 성수기 휴게소의 피곤은 오래전 기억으로 사라졌다.


피아노 음악소리, 포근한 햇빛, 시간의 여유는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었다. 내 인생에서 이런 시간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꽤 오랜 시간 그 시간을 즐겼다. 그리고 문득 머릿속 들어온 질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여기에 왜 있는가?'


여행을 가는 이유


예전에 나에게 여행이란 무작정 많은 곳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뽕을 뽑아야 했다. 더욱이 그때 나는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이라 최대한 돈 쓴 만큼 많이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서 여행은 또 다른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로부터 쉬는 것은 사치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 아버지는 은퇴하기까지 휴가 때 말고는 쉬는 날이 없었다. 공휴일이나 일요일도 일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나는 자영업자는 쉬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 때문에 나는 결혼하고 10년이 지났을 때까지 여행은 10번도 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큰맘 먹고 해외여행을 갔었던 적이 있었다. 10주년 결혼 기념 괌 여행이었다. 해외여행이라곤 예전에 친구 따라 밴쿠버에 갔던 것 빼고는 처음이었다. 여기서 비행기로 5시간 안된 거리였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는 여행이라 신나 했었다. 나도 오랜만에 해외여행이라 설레었다. 아내도 그러했다.


나에게 장기간 매장을 쉬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만큼 괌여행은 큰 결단을 내리고 간 여행이었다. 첫날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나는 슬슬 매장이 걱정되기 시작하였다. 혹시 경쟁업체에게 거래처 사장님들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여기 오기 전 한 달부터 거래처 사장님들에게 말해 놓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울리지도 않는 휴대폰만 쳐다보았다. 어쩌다 걸려온 스팸전화는 나를 만사 제쳐두게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짜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괌여행은 설렘으로 시작해 나의 불안과 걱정으로 끝났다.


괌여행 후 나의 걱정과 달리 매장은 평온했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한결같이 내 매장을 찾아 주었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여행은 한동안 가지 않았다. 내가 여행을 가지 못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일상의 틀어짐이었다. 여행으로 인해 내 일상이 어긋나는 것이 싫었다. 지금은 그것이 나의 기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여행으로 내 일상이 깨지지 않는다는 걸 안 뒤부터는 일 년이 두 번 해외여행을 갔다. 어쩌다 걱정이 들면 지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해외에 있어 그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나의 여행은 주로 해외여행이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시작될 때 싱가포르를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은 끝났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1년 후 나와 아내는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국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아내는 단기 여행으로 자주 가자고 했고 나는 동의했다. 그러나 해외여행처럼 걱정거리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국내여행이라 웬만하면 하루 안에 매장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걱정에 대해 내가 할 수 있어서 더 걱정이 된 것이었다. 여행을 얻었으면 일은 잠시 포기해도 된다는 것이 아직까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외여행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지금 나는 국내 여행을 일 년에 10번 남짓 다닌다. 백신 탓에 아직 해외여행은 갈 수 없다. 앞으로 내년이면 해외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바쁜 일상 탓에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 술을 먹어도 카페에 가도 같은 일상의 연속점에 있다. 복권에 당첨돼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처럼 일확천금이 하늘에서 떨어지길 바란다. 혹은 누군가의 도움에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키려 해 많은 전문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게 되고, 자신이 바라지 않던 일상의 틀어짐을 겪기도 한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는 된 나의 모습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예전 내가 걱정했던 바라지 않던 일상의 틀어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의 모습을 미리 만날 수 있는 것이 나는 여행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다.


또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다. 우리는 늘 새로움을 찾는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물건을 사고 새로운 음식을 찾는다. 우리는 물건으로 내가 일상의 보상을 얻으려 한다. 나 역시 2년마다 휴대폰을 바꾸고 새로운 치킨맛이 생기면 꼭 먹어야 했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긴 시간의 줄도 마다하지 않았다. 매일 TV속 과장된 광고는 새로움에 미친 나에게 소스였고 내가 가져야 할 목적이었다. 나는 새로움이 물질적 보상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물건값을 지불하기 위해 일을 하고 시간을 썼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그것에 희열을 느끼는 이유는 새로움을 원해서이다. 그런데 내가 아닌 물건에 새로움은 얼마 못 가 다른 새로움을 원한다. 그것이 또 다른 물건을 사야 할 이유 생기고 우리는 일상에 머물며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것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새로움을 찾는 것이 그런 물질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 내가 존재하는 목적을 생각한다면 새로움을 얻기 위해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여행은 새로움을 찾는 방법 중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환경이 바뀌면 내 일상도 바뀐다. 운동이나 독서 그리고 글쓰기와 같이 자기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을 택한다면 그것 또한 새로움이다. 다만 그것들은 자기 절제가 필요하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다. 내가 지금 머무는 곳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두 번째 물음 -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


오늘 온 여행에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48년 인생 중 처음으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죽음이 떠올랐다. 내일 당장 내가 죽는다면? 어떨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가족의 슬픔이었다. 그리고 내가 없는 가족의 삶도 걱정되었다. 지금 운영하는 매장도 걱정되었고, 친구들도 걱정되었다. 온통 죽음이 걱정투성이었다. 중요한 건 정작 죽는 건 나인데 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순간 지금 내 삶도 나의 삶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는 '나는 내일 죽는다면?'으로 바뀌었고, 그 질문은 '다시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는가?'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삶,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나는 성공한 사업가는 아니다. 그러나 3년간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내가 원하는 여행을 언제든 할 수 있고, 원하는 것들을 실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물질적인 새로움보다는 정신적 새로움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돈은 벌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제약이 따를지 모른다. 다만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새로움은 이제 그만하자. 그리고 돈의 중요성을 너무 부여하여 '돈' '돈' '돈' 하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은 나의 삶을 적정한 상태를 유지할 때 잘 쓸수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동경한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것들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결국 내 삶은 그들의 삶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나의 존재의 이유이다. 그러니 타인의 삶이 나의 존재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보는것에 대한 만족은 어제로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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