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
이 질문에 당신은 분명 무언가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마음이 울리는 진실된 소리로부터 당신은 변화될 준비를 할 것이다. 다만 오늘도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가 된다면 당신의 '나는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는 '비는 하늘에서 내린다'와 같은 사실이 된다. 매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만 반복적으로 오게 된다. 당신의 삶은 언제나 물음표로 마치게 되는 질문의 늪에 빠진다.
당신은 극적으로 변하길 바라지만 그런 기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해도 아무런 효과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당신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타인의 삶으로 들어간다.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누군가를 위해 선택하고, 때론 생각마저 누군가를 위해 하게 된다. 간혹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는 부정적 생각이 올 때뿐이다.
당신은 내게 '당신은 삶은 어떤가요?, 당신은 돈이 많나요?, 당신은 여유로운가요?'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당신에게 나는 더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당신보다 경제적 능력이 없을 수 도 있다. 그런 나에게 당신을 말할 것이다. '어줍지 않는 조언은 집어치워요'
나는 당신에게 돼 묻는다. '나의 삶이 당신의 삶인가요?'
당신은 나의 삶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굳이 왜? 나의 삶으로 들어오려고 하는가? 당신은 당신 삶을 살아라.
나도 당신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아서 그들의 삶에 편입을 바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고 싶은 마음에 그릇된 선택을 했다. 그릇된 선택을 자책을 낳고 실패의 경험에 두려움을 만들었다. 그런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물을 마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는 3년 전부터 삶의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나면 지체 없이 그것을 해왔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지금 나는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나는 매일 나를 세뇌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것들을 구분하는 건 오직 사회에 묶여 있는 나의 자아이다. 그런 자아는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 준다.
실패한 경험이 하고 싶은 일에 방해가 된다면 성공의 어머니는 될 수없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왜 있는가? 로부터 당신의 삶을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