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뒤면 새해를 맞이한다. 벌써 새해라니... 세 달이나 남았는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분의 2가 지난 올해에 나는 무엇을 했을까? 2023년 나는 작년과 똑같은 새해의 목표를 정했었다. '이번에 꼭 해야지' 나의 굳은 결심은 기억나지 않은 어떤 날에 허물어졌다. 여전히 어떤 목표는 올해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나는 왜? 목표를 이룰 수 없는가?. 나 자신을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채찍질해보았다. 나의 굳은 결심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의 올해 목표는 대단한 것도 아니었을 테다. 그러나 그것조차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나의 욕망 탓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거창할 것 없는 욕망이었다. 하지만 목표를 세우는 순간 욕망은 나의 행동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나의 목표의 첫 시작은 광대하고 신비로웠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나의 굳건한 자신감은 빠르게 달려가는 목표를 향해 창을 날렸다. 빗나갈지라도 끊임없이 창을 목표를 향해 던졌다. 그때의 나는 이루지 못할 것은 없었다. 나의 욕망은 충만해지고 그 충만함으로 자신감이 얻었다.
하루 이틀 한 달이 되었다. 여전히 욕망은 충만했다. 하지만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자신감은 점점 의심으로 변해갔다. 목표에 도달하려는 욕망이 나에게 의심을 부여한 것이었다. '나는 목표에 이룰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이루지 못할 이유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나의 강한 욕망은 목표를 설정하게 하지만 이룰 수 없게 한다. 올해 세운 나의 결심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나는 꼭 목표를 이루겠어, 목숨까지 걸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겠어, 두고 봐" 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었다.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때 그 마음이 지금의 나라면 어땠을까? 목표의 욕망을 가진 나라면 그때의 결심이 가진 나였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강한 욕망이 만들어낼 의심을 나는 이겨 낼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나의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 나의 습관으로 가져가야 한다. 때가 되면 밥을 먹듯이 그렇게 나의 결심은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좋아! 한번 해보는 거지, 내가 하기로 정했으니 그걸로 된 거야, 실패할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잖아, 그러니 뭐가 문제야! , 그걸로 충분해" 이런 결심이면 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목표는 항상 내가 그것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에 내 옆에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는 목표를 어렵거나, 힘들게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일까?
목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이유는 외부의 어떠한 것에 의한 것인데 이것을 운과 행운을 불러온다. 나의 의심 없는 행동이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목표에 도달하게 만든 것이었다.
올해 초 나의 목표들 중에서 의심 없는 행동을 한 것만 이룰 수 있었다. 독서, 운동, 산행, 북 카페, 독서모임, 글쓰기, 출판사, 작가 등등 의심 없는 행동만이 목표에 도달하였다. 의심을 가진 출간만이 여전히 제자리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새로 시작한 맨발 걷기와 다도가 출간의 의심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이제 올해는 세 달이면 새해로 넘어간다. 다가올 새해에도 우리는 수많은 목표들로 돛을 달고 바다에 배를 띄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목표는 바다에 침몰할 것이다. 바다를 건너겠다는 우리의 욕망은 노를 젓는 우리에게 강요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열심히....
우리의 목표가 침몰하지 않고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심 없는 행동이 필요하다.
침몰하지 않을 정도로만 노를 젓자. 그저 우리는 자유롭게 바다 위를 떠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다 외부의 바람이 불면 목표를 향해 키를 돌리면 된다. 그러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목표를 이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