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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Nov 09. 2023

처음 식사한 사이

몇 번 왕래하는 사장님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와는 식사가 처음이어서 어색했다. 게다가 우리가 마주 앉자 있는 원형 테이블의 특성상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의 공간은 침묵 공기가 흘렀다. 다만 우리의 어색함에 이웃 테이블의 소리는 더 명확히 들렸다. 내가 원하지 않은 그들의 직장, 가족,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를 알았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원형 침묵이 무의식으로 향했다. 우리의 어색함이 극도로 치달았을 때 우리의 침묵을 깨버린 건 음식점 직원이 가져온 반찬들이었다.


나는 반찬을 먹으며 그에게 말했다. '맛있네요' 그러자 그는 나에게'그렇네요'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의 이런 대답을 예상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요리 연구가가 아니라서 반찬이 어떤 양념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입안에 들어온 반찬이 맛있는가? 아닌가? 의 평가의 문제 일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도 나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식사의 첫 대화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반찬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마 두 번째 대화는 아마도 메인 음식이 나와야 될 것 같았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의 밥문화는 식사를 하면서 관계를 형성한다. 그래서 우리가 입버릇 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오 갔을 때 밥을 정말 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우리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친밀감의 표시이다. 그리고 관계 형성에 있어 밥만큼 좋은 것도 없지 않은가? 


이번 우리의 식사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수년간 옆에 있으면서 한 번도 식사를 하지 않았던 우리의 관계를 이번 식사로 인하여 친밀감이 높이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금 첫 식사가 주는 어색함을 마주한 우리는 앞으로 메인 음식이 나오기까지 두 번째 대화는 수분이 걸릴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반찬의 모양과 색을 초집중했야만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메인음식인 꽁치김치찌개가 나왔다. 내 앞에 놓인 갓 나온 꽁치김치찌개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어색한 사이의 침묵의 공간에 멈추었다. 게다가 시큼하고 매콤한 향기는 나의 코를 자극했다. 나는 나오려던 재채기를 참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코를 쓱 한번 문질렀다. 그를 보니 그도 예상치 못한 매콤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갓 나온 꽁치김치찌개는 매콤함으로 어색함을 더욱 달구고 있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대화의 빈 공간이 생기면 어색하고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처음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색함을 견뎌야 한다. 자칫 말을 잘못 말하다가 관계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말은 상대방을 해할 수도 있고 나를 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말을 조심해야 한다. 지금의 나처럼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더욱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오늘 나는 말을 최대한 아낄 생각이다. 그리고 그의 말을 잘 들어주려 한다. 그가 말할 때까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극강의 I였다.


우리는 찌개의 뜨거움과 매콤함으로 어색함을 달래었다. 그리고 간혹 입에서는 나온 '후' '하'라는 감탄사가 대화의 전부였다.  두 번째 대화가 이러리라곤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의 대화는 이것이었다. 그런 탓에 우리는 밥을 빨리 먹을 수밖에 없었고, 6분 남짓의 우리의 첫 식사는 끝이 났다. 


때론 말보다 침묵이 관계를 더욱 좋아지게 하는데, 우리가 그런 경우에 속했다. 우리의 친밀성을 하는 데 있어 대화는 불필요했다. 첫 식사라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 첫 식사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상대를 헤아려주고 배려해 주는 것을 우리는 침묵으로 이행한 것이다. 무의미하게 끝이 난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관계는 전보다 더 친밀해졌다. 


그 후로 우리는 몇 번의 식사를 함께 했다. 물론 지금도 식사를 할 때 말이 많지 않다. 둘 다 성향이 그런 것도 있지만 처음 식사 때보다는 딱 그만큼 말을 한다. 누가 보면 비스니스관계처럼 보여도 식사는 우리에게 그런 관계인 것이다. 부담스럽지도, 그렇다고 절친스럽지도 않은 같이 식사할 정도의 사이 그런 관계 말이다. 달걀로 말하자면 반숙중에서도 노른자가 익었는데 촉촉한 느낌 같다고 할까? 난 그런 적당히 격식이 있는 관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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