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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었던 마음이 다시 일어서는 중입니다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적자 운영을 시작한 지도 벌써 6개월.
24년간 운영해 온 내 열쇠 가게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다.
요즘 나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마저 흐릿해진 기분이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탓해보기도 했다.
경제를, 정책을, 세상을…

하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지쳐버렸다.
매장 옆 사장님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어느새 깊은 한숨으로 끝나곤 한다.


며칠 전, 오랜만에 열쇠업을 하는 친구들과 만났다.
자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어때?”
“죽은 맛이지.”
“일은 좀 들어오나?”
“며칠째 공쳤어.”

‘공쳤다’는 건 하루 매출이 0원이라는 뜻이다.

“나도 그래.”
“나도.”


정작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야기들.
그럼에도 우린 왜 자꾸 근황을 묻는 걸까.

아마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는 마음 하나,
그 한 조각의 위안 때문일 것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요즘 출장비 얼마 받아?”


누군가 세 손가락을 펴며 답했다.

“3만 원이지.”

“나도.” 다른 친구가 덧붙였다.


그러자 또 한 명이 조용히 말했다.

“그때그때 달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일 없는데 그거 고집해서 뭐 하냐. 손해 보는 게 낫지.”


한 친구가 맞받았다.

“그래도 그걸 깎으면 자존심이 상하지.”


그러자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

“놀면 뭐 해.”


그 순간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자영업을 하며 늘 이렇게 생각해 왔다.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든다.’
그 믿음이 나를 지탱해 주는 자존감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엔 그 가치조차 의심스럽다.
혹시 내가 너무 고집스러웠던 건 아닐까?
고객의 시선과 시대의 흐름을 너무 늦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


지금 나는, 스스로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시기에 힘들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압구정에서도 상가 공실이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이 많고 돈이 도는 그곳도 그런데,
전화 한 통에 의존하는 우리 열쇠업은 오죽할까.

‘나는 내 가격을 지킨다’는 그 자존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가치일까.


이제는 고객의 기대에 맞추고,
현실에 맞춰가는 유연함이 필요해졌다.
그것은 어쩌면 자존감을 잃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지켜내는 다른 방식일지도 모른다.


“놀면 뭐 해.”

그 친구의 말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돌이켜보면,
때로는 조금만 가격을 조정했더라면
놓치지 않았을 일도 있었다.
그 아쉬움이 깊은 후회로 남는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은 조금씩 집을 나갔다.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는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자존감’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허상 속 체면을 지키려는 고집인가?


가격을 깎는다고 해서
내 모든 가치가 흔들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움켜쥐고 있던 기준 하나가
세상과 엇갈리기 시작하면
마음은 금세 기울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집 나간 자존감을 찾는 중이다.
번아웃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기 전에
내 마음부터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늘릴 순 없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두 가지를 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신뢰는 단순함 속에서 자란다.


자영업이란 원래 위기의 연속이다.
수십 년 잘된 가게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게 현실이다.
24년을 버틴 나의 매장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수많은 위기를 이겨내며 여기까지 왔다.
금융위기도, 코로나도, 부동산 침체기도 버텼다.


지금 이 위기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또 하나의 고비였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또 잘 견뎌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요즘 나는, 기울었던 마음이
조금씩 다시 일어서고 있는 걸 느낀다.
이 글을 쓰며 그 마음을 붙잡는다.


이토록 위태롭고 흔들리는 시기에도
나를 다잡는 가장 다정한 방법은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을 거는 것이다.

“괜찮아, 지금 다시 일어서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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