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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Mar 03. 2019

혼자만의 시간을 충만하게 채우는 방법

여행의 기억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 공간에 대한 글

6개월만에 호캉스!

저번에는 엄마랑 함께였지만 이번에는 나 혼자다.

여행은 거의 혼자다닌다.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나혼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풍경들 새로운 일들을 겪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순천을 거쳐 여수에서 2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일가친척들이 모두 경상도에 살고 있는 탓에 경상도는 구석구석 곳곳으로 많이 다녀봤지만, 전라도는 갈 일이 거의 없었다. 대학을 와서 전라도 출신 친구들을 만나고, 우연한 계기로 3개월에 한번 정도는 전북 지역을 방문할 일이 생기자 전라도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일로 3번도 모두 전라도 지역을 거쳤다. 순천은 5년만에, 여수는 엑스포 이후 7년만에 방문하게 되었다.


숙소는 여수에서 제일 좋다는 엠블호텔이었다. 명성만큼 비싼 가격이었지만, 정말 돈값을 했다.

순천만과 순천만정원을 하루종일 걸어다녔기에 걸음수 3만보를 찍은 날이었다. 따뜻한 날씨 탓에 온몸과 속옷이 땀으로 젖었고 다리가 부서질 것 같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탄성부터 나왔다. 와, 이런 곳에서 이틀이나 묵을 수 있다니! 체크인 할 때 오션뷰를 준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한 반정도만 오션뷰였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갈때는 평일인데다 더 비싼 가격임에도 칙칙한 시티뷰였기 때문에 나름 만족스러웠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담궜다. 피곤에 쩔은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혼자였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겠지만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했다. 욕실 내 공명하며 울려퍼지는 음악에 취해 천국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괜찮았으면 와인이나 맥주 한잔이라도 걸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한달째 떨어지지 않는 기침 때문에 약을 먹고 있어 술은 입에 댈 수 없었다.


이 다음에 쓸 글이 음악에 대한 건데, 그때도 풀 거지만 술마시면서 음악들으면 기분이 20배는 더 좋아진다. 평소에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지만, 라이브클럽을 가거나 락페스티벌을 가면 맥주를 꼭 마신다. 생생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면 온 몸이 스피커처럼 공명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서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여기서 좀 더 좋으려고 약을 빠는구나'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난 준법시민이기 때문에 그런 짓은 하지 않고 나라에서 허용한 마약 선에서 마무리를 한다.


회사에서, 동네에서,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다가 온전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이렇게 여유와 호사를 부릴 수 있다니. 정말이지 너무나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따뜻한 공기와 온기가 피어오르는 욕조까지. 고생했던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스폰지에 바디워시를 짜서 몸 곳곳을 부드럽게 닦아주고, 머리도 평소보다 더 공들여 감았다. 호텔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어매니티를 주기 때문에 따로 워시 용품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거도 하나하나 다 돈이고 다 짐이기 때문이다. 아베다였는데 쑥향 내지는 티트리처럼 은은하면서도 건강에 좋을 거 같은 향이 나서 더 좋았다. 예전부터 플로럴 계열 향수도 거의 안 썼다. 엄마가 작년에 캄보디아를 가면서 딸들 준다고 면세점에서 핸드크림을 사왔는데 하필 로즈향이어서 쓰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서랍에 박혀있다 엄마 미안...

어쨌든 좋은 향, 좋아하는 음악, 따스한 욕조에서 올라오는 온기로 마무리한 저녁 목욕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뒹굴 하면서 음악도 듣고 다음날 뭐할지 대충 찾아보다가, 12시쯤 되어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불이 켜져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불이 꺼지니 다른 감각들이 좀 더 활성화된 탓인지, 어디선가 굉장히 좋은 향기가 솔솔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담백하면서도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게 해주는 은은한 향기, 감각을 엄청나게 활성화 시키지 않으면서도 잠이 솔솔 오게 해주는 기분좋은 향. 잠드는 순간까지도 너무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향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좀 시끄러웠다. 항구 바로 앞인 탓으로 아침에 행사가 있어서 호텔 앞이 잠깐 시끌벅적했다. 그것만 빼면 나쁠 게 없는 아침이었다. 호텔에 이틀간 묵은 게 좋은 게, 체크아웃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아침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루동안 여수를 둘러보고 온 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왔다. 이렇게 좋은 숙소를 왔는데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물론 순천과 여수에서 보았던 풍경도 무척이나 좋았지만, 이번 여행이 기분좋게 기억될 수 있었던 이유는 호텔의 역할이 굉장히 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깔끔하게 조성된 공간에서 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 값비싸지만 충분히 누릴만한 호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침대가 킹사이즈여서 옆에 아이패드를 두고서도 충분히 뒹굴거릴 공간이 남았다. 침구의 부드러운 촉감도 너무 좋았다. 부러 비싼 침대를 사기로 한것도 이 기분좋은 수면의 기억을 일상에까지 끌어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숙소가 여행에 주는 중요성을 몸소 체험한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숱한 여행을 다녀보며 저렴함의 끝판왕 찜질방부터 게스트하우스, 유스호스텔, 모텔, 비즈니스호텔, 펜션, 민박, 에어비앤비 등등 각종 시설을 거의 섭렵했다고 자부하지만(휴양지는 가본 역사가 없어서 풀빌라 이런 데는 가본적 없는데 언젠간 가겠지),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나홀로 호캉스만큼의 편안함과 감동을 주는 곳은 없었다.


다 좋은데 소음이 너무 거슬린다든지, 어디선가 기분나쁜 냄새가 올라온다든지, 침구가 불편하다든지. 사실 그런건 예삿일이다. 여성 1인 여행자의 경우 뜻하지 않은 방해요소나 안전문제로 인해 여행기분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당연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요즘 주변 사람들과 사업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좋은 기회로 가치관이 비슷한 분들, 속물소리 들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맘놓고 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도 나중에는 이런저런 사업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키우고 있다. 물론 아직 명확한 건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최근 관심이 생기는 주제 중 하나는, 은퇴 후 고향에 돌아가 숙박업을 하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더 이상 할일이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 그 전에 위치 좋은 곳에 집을 하나 장만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여행객에게 기분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조금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난 내 고향을 무척 싫어했고 지금도 그닥 좋은 감정으로 남아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곳을 떠나고서야 객관적으로 그 곳이 어떤 공간인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내가 자라왔고 가장 오랜시간을 보냈고 그러기에 가장 잘 아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중에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까지 하고 있으니 참으로 모순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겐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편안하고 깔끔하고 귀찮게 구는 사람 없고 안전하고 밥만 맛있으면 됐지.


이 호캉스가 단순히 혼자만의 편안한 시간, 너무 좋았어! 로만 끝나질 않길 바라면서. 애증의 공간이긴 하지만 내 고향의 아름다움과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남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한 비즈니스적 부분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역사나 문화 유적, 이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성장했고 어떠한 일들을 겪었고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이 여행을 할 때마다 나에게 궁금함을 던져주었던 화두들이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각으로 미지의 땅을 밟는 여행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런 정보들을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반적인 여행컨설팅분야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시작을 이번 봄 친구들과 함께 할 경주와 익산-군산여행을 통해 한번 도모해보고자 한다. 경주도 참 사랑하는 도시 중 한 곳이다. 로마를 방문했을 때 같은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체 저런 돌무데기 보고 뭘 느껴야 해?'라고 말했지만, 나는 너무 좋았다. 아니 이 도시는 몇발자국 걸어가기만 해도 이렇게 오래된 돌무데기가 많아? 저 돌무데기들이 천년 이천년을 버티며 저 자리에 있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것 자체가 도시의 역사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증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가장 비슷한 도시가 경주이고, 그다음쯤 꼽을 만한 곳이 익산이라 생각한다. 비용과 시간과 동선을 고려하여 가장 효율적이지만 여행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얼마나 그 역할을 잘해내는지 시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따로 돈받고 하는 것도 아니니 아마추어 도시 해설사로서 내가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일을 정말로 사랑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런던에 갔을 때도 나는 꽤 이 쪽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5일간의 일정에 3일을 우연히 만난 어떤 친구와 동행했는데 따로 공부를 하고 가지는 않았음에도(애초에 여행을 출발할 때 영국을 갈 계획조차 없었어서 가이드북을 집에 두고 왔고 그게 내 첫 영국여행이었다) 도시 곳곳 그리고 미술관 박물관에서 이 도시의 역사와 각종 인문학 지식들을 아는 한도 내에서 풀어줬는데, 친구가 나 덕분에 몰랐던 것들 많이 알고 간다고 고맙다고 했을 정도였으니. 나에게도 즐거웠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남아있기에, 그 때 처음으로 여행에 대한 비즈니스를 어렴풋이나마 떠올려 볼 정도였다.


늦게나마 운전면허를 딴 것도 언젠가 떠날 여행을 위함이었다. 회사 근처에 살기 때문에 출퇴근을 위한 운전이 전혀 필요없고 대부분의 회사가 그러하듯 주차난에 시달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차여행을 떠나면서 지나쳐간 곳들, 기차로는 미처 다다를 수 없는 곳들에 차를 가지고 갈 결심을 하고 있고, 자가용이 생기면 꼭 실천할 예정이다. 문제는 돈이다 돈 돈...돈을 많이 벌어야해!!


아무튼 이번 호캉스는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고,  여행에서 느낀 이 행복감을 어떻게 비즈니스적으로 풀어낼 것인지에 대한 탐구까지 이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또 떠나고 새로운 땅을 밟고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껴야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행하는 이유이다.


세미 오션뷰였지만 그랬어도 야경은 참 아름다웠다. 엑스포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따스하고 다정했던 공간.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호텔과 앞마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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