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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Mar 02. 2019

할아버지와 기차

"네살 때 무슨 인형이 제일 갖고 싶었어요?"

"인형이라면 그닥...어릴 때 인형을 안 좋아했거든요."

"그럼 그 때 뭐를 제일 갖고 싶어했는데요?"

"장난감 기차 세트요."

- 영화 <캐롤> 중에서


영화 <캐롤>을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한동안 그 영화의 영상미와 서사에 푹 빠져있었다(사실 남성 감독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영화의 서사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원작을 더 낫다고 생각한다). <캐롤>을 처음 보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테레즈의 대사 때문이었다. 네살 때 가장 갖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떠올려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장난감 기차'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네살 때는 우리 집에 나와 여동생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우리에게 이른바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 한 미미인형이나 소꿉장난 세트같은 것 위주로 사주셨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그런게 아니라 블록쌓기 장난감이나 레고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내가 일곱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 후로 부모님은 좀 다른 걸 남동생에게 사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그런 장난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로보트라든지, 장난감 칼이나 활이라든지, 자동차 모형같은 것들. 조금 늦게나마 그런 장난감들을 만져봤기에 내 흥미가 그 쪽에 더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내 취미가 사회에서 규정하는 여성성과 조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난 기차타는 걸 정말 좋아했다. 아주아주 어릴 때 엄마와 동생들과 함께 시골집을 갈 때 비둘기호를 타고 갔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아직도 면허가 없기 때문에, 시골에 갈 때는 기차 혹은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지만 무척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미성년자 때는 부모님을 동반하지 않고는 타 지역에 갈 수 없었기에 기차를 탈일이 많진 않았지만, 대신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걸로 한을 좀 풀었다. 대학을 서울로 오게 되자, 그 후로는 기차를 탈 기회가 굉장히 많았다. 고향집을 왔다갔다 할때는 항상 KTX를 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차에 맛을 들이게 된 것 같다. 용돈 혹은 알바로 번 돈으로 혼자서 훌쩍 기차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새마을을 타고 간다든지. 동아리 엠티를 위해 대학엠티의 성지 강촌에 무궁화를 타고 다녀온다든지, 지방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가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어둑어둑한 모르는 도시에 내린다든지, 춘천행 무궁화가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당일치기로 무궁화를 타고 갔다오든지. 당시 만 25세였나 만 23세까지였나 아무튼 (지금은 없어진 제도인) 청소년권이라고 1년에 80회 정도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쿠폰같은 걸 돈 주고 살 수 있었는데 80회 한도를 거의 다 채울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타고 다녔다. 여름방학 때 알바나 인턴을 해서 모은 돈으로 학기가 시작하기 전 며칠을 이용하여 내일로를 이용한 여행도 3번 가량을 다녀왔다. 왜 매번 방학마다 안갔냐 하면 복수전공 하느라 계절학기 안듣는 방학이 거의 없었고 금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정말 있는돈 없는돈 다 끌어모아서 유럽여행도 한번 갔었는데 그때의 이야기와 나의 가난했던 대학시절 스토리도 언젠간 풀 것이므로 일단 스킵,,,)


이번 2월 말 여행을 다녀오면서 오랜만에 기차를 탈 기회가 있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게 아니라 기차를 타기 위해 여행을 가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기차를 좋아한다. 기차든 버스든 비행기든 어떠한 대중교통수단도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기차다. 이번에도 여러 역을 거치면서 이런저런 표지판이나 행선지 알람표를 봤는데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쟤는 왜 저기서 저런 걸 찍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진도 엄청나게 찍어댔다. 이런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 한국지리라는 과목은 거의 거저 먹는거나 다름 없었다. 한국지리 학습을 위한 전국 시군구명, 고속도로, 전국철도명 외우기는 나에게 공부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였다. 너무 재밌어서 다 외운 나머지 백지도에 술술 풀 수 있을 정도였다.


하여튼 이 정도로 철도에 매니악했지만 내가 남들보다 유난히 철도와 기차를 좋아하는 명확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인생의 1/3을 여성집단에서 보내왔지만 나 정도로 철도를 좋아하는 친구는 찾기 드물었다. 아빠가 철도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 영향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할아버지에까지 이른다.

할아버지는 철도 관련 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빠가 5살 때 철도 관련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나는 할아버지를 단 한번도 만난 적 조차 없다. 어린 시절에는 남들에게 다 있는 할아버지가 없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부모님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그렇구나 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죽음'이라는 걸 이해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친가 쪽에는 불행한 가정사가 닥칠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기 가부장의 상실이란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정을 이루고 몇년간은 아빠는 남들에게 칭찬받을 정도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던 듯 하다. 여러 이유로 그 후에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꼭 그 이유뿐만은 아니겠지만 할아버지가 철도 일을 했기에 아빠도 철도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아빠가 나에게 뭔가를 특별히 전수(?)해준건 아니지만 그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나도 본능적으로 철도를 좋아하게 되었다.


언젠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미술관에 가려고 어느 건물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 미술관이 리모델링 중이라 이를 대체하여 작은 공간에 관객이 참여하는 전시 같은 걸 열고 있길래 궁금해져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서는 가족과 관련된 전시같은 걸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Do you want to say something to your grandfather?(할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라는 글 밑에, 포스트잇 같은 거로 관객이 직접 답을 써서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질문을 보자마자 뭔가 울컥하고 북받쳐오르는 걸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번도 그걸 어딘가에 털어놓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할머니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고 '할아버지'였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간신히 눈물이 나오는 걸 참고 거기에 처음으로 할아버지에게 쓰고 싶은 말을 썼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When my father was five years old, my grandfather have passed away. So I even don't know well about him. I heard that my grandfather had worked related with train. Maybe that's why I like train very much. Although I've never met him, I wanna say to him that I miss and love him very much. I hope we meet each other someday.(우리 할아버지는 우리 아빠가 5살일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난 우리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잘 몰라요. 우리 할아버지는 기차와 관련된 일을 했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나도 기차를 무척 좋아해요.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할아버지께 무척 그립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가 언젠간 꼭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을, 우연한 기회로 이국 땅에서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울먹이는 걸 참아가면서 써내려갔기에 내 영어문장은 엉망이었을거고 글씨체 또한 엄청난 흘림체였다. 그러나 그 전시회를 통해 할아버지와 내가 기차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가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일찍 떠나버린 탓에 아픔을 남긴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미래에 나도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님이 아직 살아계시기 때문에 부모님이 없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직 실감은 잘 나지 않지만, 이때까지 만나왔던 친구들 중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구들과 깊은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모를 먹먹함이 밀려왔다. 한 친구는 눈물만 계속 쏟으며 이후의 이야기를 전혀 이어나가지 못하기도 했고, 또 다른 친구는 담담하게 털어놓았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인 탓에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잘은 몰라도 아마 아빠도 그랬을 것이다. 할머니도 5남매를 키우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고, 내가 7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토록 기다리던 손자가 태어나기를 불과 네 달을 앞두고.


이번에 고속선 말고도 누리로와 새마을 등 일반기차를 타면서, 느릿느릿한 여행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나도 현대인이기에 빠르고 편한 고속선을 주로 타지만 완행선의 묘미 또한 절대 놓칠 수 없다. 지금은 없어진 춘천행 무궁화와 내일로를 하며 탔던 정선선에서 본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언젠간 다시 한 번 보고싶다. 이번에도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며 아름다운 경치에 눈을 한시도 떼지 못했다. 경부선 중에도 한군데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는데 구포경유 기차를 타고 물금~원동 방면을 지나는 코스를 강력 추천한다. 참고로 신경주를 관통하는 고속선을 타면 볼 수 없다. 어린 시절을 그 근처에서 보냈는데 낙동강변의 풍경 특히 노을이 질 때의 풍경은 참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그곳을 지날때면 어린 시절도 생각나고 해서 항상 눈물이 고이곤 했다. (참고로 이 스팟은 철도 및 지리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경치 좋은 철길에 항상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행선지표시판들로 마무리해야겠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자삭하겠습니다. 철도 사진 올리는 건 보안문제도 있을 수 있어서 좀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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