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허파에 서서 심장을 바라보면.
그럼 이제 4일차인가.
이 여행기는 시작도 끝도 없는 허무한 윤회와 같으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뉴욕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센트럴파크이다.
이 금싸라기 땅에 이 넓은 공원을 조성하고, 오랜 기간 지켜나간다는 것.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이 큰 공원을 관리하고 가꾸어나간다는 사실. 시에서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고 자금 정도만 제공하고 뜻이 있는 시민들이 모여서 비영리 단체를 꾸려서 자율적으로 관리한다고 한다. (남산공원도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들음..)
그리고 이 거대한 공원 중간쯤에 더 그레잇 론이라는 존이 있는데, 여기서 보는 뷰가 아주 환상적이라는 소문을 듣고 직접 가보았다.
론 가장자리 센터에 딱 서는 순간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옴. 반대쪽은 미래도시 같은데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 한가운데 서있다 보면 뉴욕의 허파에 위치해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 찬 공원에 서있으면 따스한 햇볕과 차갑지만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고, 바로 저 쪽은 어제 뉴욕의 심장이자 세계의 심장인 (어제 보았던)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쪽은 심장이고 여기는 허파. 나는 산소 분자..?
오솔길도 진짜 예쁨. 공원이 너무너무 커서 몇 날 며칠을 공원 탐색만 하고 돌아다녀도 될 거 같다. 실제로 자전거를 빌려서 하루 종일 공원을 산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오늘의 공식 첫 코스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시작.
박물관은 무조건 오전으로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줄 서고 사람 너무 많아서 시간이 계속 늘어지게 된다.
좀 사람 적은 오전 시간대도 이 정도로 붐빔. 오후에는 한 3배 정도 많아졌는데 오전에도 엄청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건물 내부도 무척 아름답고 하나의 유물이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여기는 웨스트 윙 쪽 그리스 로마 조각상을 배치해둔 곳인데 정말 그리스 로마 회랑을 재현해 둔 듯한 공간디자인과 동상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천장이 유리여서 햇볕이 쏟아지기 때문에 조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였다. 중간에는 분수도 있고, 여기 누워서 포도 따먹고 음악 연주 들으면 정말 로마인 분위기 날듯. 매일매일을 이런 곳에서 먹고 놀고 풍요를 누렸을 로마인들... 그들의 기분을 아주 잠깐이나마 느껴보았다.
이런 유명한 조각상들과
이런 유우명한 회화 작품들까지
엄청난 규모라서 일일이 사진을 찍으면서 다닐 수 없을 정도다.
동/서양, 고대~근대까지 아주 방대한 규모의 소장품을 다루고 있었다.
한국관도 있었음.
박물관이 너무 넓어서 다 보지는 못하고 나와서 이동을 하였다. 시내 중심가 쪽 유서 깊은 건축물인 그랑 드 센트럴. 기차역이데 정말 아름답고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어벤저스의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천장이 정말 높고 창살도 예쁘고 조명도 은은하고 인포데스크 위의 시계도 고풍적이고 예쁨. 파리 북역이 생각나는 색채였다. 미국은 철도교통이 그다지 발달한 나라가 아니어서 그런지 기차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지만 유동인구는 엄청나다. 거의 쇼핑몰 역할을 하는 듯했다. 땡스기빙과 홀리데이 시즌의 시작과 겹쳐 역 내부에도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날 열심히 걸어 다닌 탓인지 거리를 좀 돌아다니다가 일찍 숙소로 복귀해서 잠들었다. 이쯤 되면 뉴욕 여행기가 아니라 뉴욕 휴식기 수준이다.
다음날 오전 링컨 센터를 들러서 오후 8시 진주조개잡이 티켓을 끊었다. 좌석 제도를 잘 몰라서 토스카를 패밀리 서클에서 보았던 아픔을 딛고(스탠딩 석이라 다리 후 달림...) 좀 더 비싼 티겟으로 3층 꼭대기 자리를 끊었다 가격은 97달러. 100달러 넘는 것부터는 조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근데 출국하던 날 예술의 전당에서 링 시리즈 했더라..? 아마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링 시리즈를 전부 달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미국에 있기 때문에, 꿈만 같던 매트 오페라를 현장에서 즐기고 있지 않은가! 못 본 공연을 후회하기보다 내가 본 공연을 즐기고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관객의 자세라 할 수 있지.
그다음은 빅애플 패스를 받으러 타임스퀘어 쪽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러브 스태츄가 유명하다는 사실마저 잊고 길을 막 가고 있었는데 눈앞에 러브 스태츄가 뙇! 하고 나타나서 놀랐다. 마침 옆에서 사진 찍으려고 줄 서 있던 한국분을 발견해서 서로 훈훈하게 사진을 크로스로 촬영해 주었음. 뉴욕에서 귀인을 몇 분 뵀는데 러브 스태츄 앞에서도 귀인을 영접한 것이다. 하늘은 혼자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귀인을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모마 입장. 모마도 박물관같이 안 생겨놓고서는 박물관이어서 좀 쇼킹했다. 지나가다가 몇 번이나 뺑글뺑글했다. 밖에서 보면 그냥 오피스 건물 같은데 자세히 보면 MoMA라고 적혀 있는 걸 늦게서야 발견... 내부도 모마답게 모던하다.
모마 또한 건물이 굉장히 크고 소장품도 엄청나서 둘러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유고슬라비아 건축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입구에서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된 국가이니만큼 현대사의 아픈 면을 갖고 있고 연합체 국가였기에 동구권 붕괴와 맞물려 나라가 조각조각 나게 된다.
그 사이 공산주의 체제 내에서 몇십 년 동안 여러 건축물들이 만들어지는데, 공산주의 국가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성별 관계없이 동원되어 중노동을 통해 완성된 웅장한 건축물들의 사진, 그리고 모형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현실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개념을 정립하는데 굉장히 많은 자원을 쏟아붓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건축이다. 건축이 단순한 건물을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세상에서 꿈꾸었던 이상향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화려한 껍데기만을 지니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씁쓸한 사실도 함께...
건축물의 외향적인 화려함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앞섰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건축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학교/박물관/공장/천문관측대/타워/ 돔 구장 등...
모형이 엄청 고퀄이고 정교했다. 한국에선 접하기 쉽지 않은 분야의 전시라 흥미롭게 관람했다. 공산사회는 개인의 개성보다는 사회의 메시지가 더욱 중시되는 분위기였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모마에서 찍었던 인상적인 회화작품들. 미대에는 여성들이 넘쳐나는데 왜 미술관에는 남성 화가들의 작품들만 넘쳐나는 걸까?
조각 등 입체적인 작품들.
작가 냥반 생일이신지..? 근데 이거 한국 어디서 전시 봤던 생각이 남. 만약 진짜 내 생일이 박물관에 이렇게 걸려있으면 좀 반가울 거 같다. 카톡 프사각.
관람을 종료하고, 모마 앞마당으로 나와보았다. 앞마당에도 여러 작품들이 있고 하늘이 아주 푸르러서 한컷 남겨보았다. 날씨만 안 추웠으면 천천히 구경도 하고 좀 더 즐겼을 텐데.
그리고 모마 와서 뉴욕 내에서 한국말 제일 많이 들었음. 한국인 엄청 많다.
모마 내에 기념품샵이 있는데 사람 엄청 많아서 거기 말고 그냥 건너편에 똑같이 다 파는 기념품 가게 있는데 거기 가서 사는 게 훨씬 나을듯하다.
다시 링컨센터로 향하는 길. 골목 하나하나 교차로 하나하나가 그냥 화보 배경이었다. 미처 사진으로 찍지 못한 곳도 많다. 횡단보도가 엄청 긴 곳을 지나다 보면 정말 멋진 각이 많이 나왔는데, 사진 찍다가 차에 치이고 싶지 않으면 후딱 건너가야 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마음속에만 남아있음...
호프는 러브에 비해 인기가 덜 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호프가 러브보다 더 좋은 가치라고 생각하여 잠깐 멈추어 서서 찍어보았다. 희망을 그냥 지나쳐가기보다 한번 눈여겨보고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야지.
그리고 다시 링컨센터에 당도. 사실 낮에는 뭐지 싶었는데 밤에는 참 예쁘다. 사진으로는 웅장하고 멋지고 그래서 주변도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근처처럼 럭셔리하고 비싼 아파트 단지 있고 그럴 줄 알았는데 좀 뜬금없는 동네여서 당황스러웠던... 원래는 아예 오페라극장을 할렘으로 옮겨가려 하다가 그나마 중간쯤에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하길래 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내부 샹들리에는 스와로브스키 제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내부는 유럽의 오페라하우스들보다 더욱 고풍적이고 오래된 느낌이다. 오페라 연출이나 무대도 거의 설정상 시대 묘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연출도 유럽처럼 전위적이지 않다고 한다. 유럽 무대에선 토스카가 가죽재킷 입고 권총 쏘고 잔니 스키키에선 라우레타가 청바지 입고 공연했으니 말 다했다. 문화적으로 유럽이 더 보수적일 거 같은데 의외로 미국이 더 보수적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여기까지가 5일 치. 뉴욕의 뮤지엄들 규모가 커서 하루에 하나 이상 넣으면 안 될 거 같다. 솔직히 하루 종일 뮤지엄에서 살아도 될 정도이다. 그래서 카페테리아가 있나?
이번 편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3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