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ynthia Aug 17. 2019

부산 근대 여성교육의 산실, 그곳을 가다

<부산진일신여학교> 방문 후기

자주 찾는 부산이지만 늘 가던 곳만 가고, 부산에 대해서 지루함마저 느껴질 때 즈음, 부산의 특별한 곳을 찾고 싶다는 맘이 들었다. 그런 곳이 어디 있을까 하다가 아주 특별한 곳을 알게 되었다. 바로 좌천동 언덕에 위치한 <부산진일신여학교> 사적이다.


이 곳은 근대 여성교육기관 사적이면서 근대 한국 기독교 교육 사적, 독립운동 사적지이기도 하다. 세가지 요소가 묘하게 섞여들어간 이 곳은, 여성교육의 산실이었던 동시에 기독교 교육과 독립운동이 이루어졌던 역사가 숨쉬는 현장이다. 이는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의 기본정신 그리고 학교와 그 구성원들이 근현대사 일제 침략으로 인한 역사의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에 학교의 역사를 다룬 전시관과 교실복원 공간을 조성해 두었다. 총 2개 층을 통해 학교가 설립된 시기부터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강제폐교되던 시기까지, 근현대사의 흐름과 맥을 함께 해 온 학교의 역사가 매우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 전시된 물품들도 깊은 의미를 갖는 것들이었다.


1905년 호주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일신여학교에서 이땅의 여성들을 위한 교육의 씨앗이 심어졌음을 알게 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한국 근현대 교육은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사학에 의해 시작되었다. 연희학당과 이화학당 등 아직까지도 명문사립으로 남아있는 학교들이 이 시작이었고, 이후 전통 사학의 설립을 통해 근현대 한국교육을 이끌어온 여러 학당들이 뒤를 이어 현재까지 한국의 명문 사학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역사의 지점에서 일신여학교가 설립되었고, 이는 경남지역의 근대 여성교육의 시초라 할 수 있겠다.


3.1 만세운동으로 기억하는 대표적인 여성 열사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이화학당의 유관순 열사가 있다. 이화학당 학생들을 비롯하여 3.1 운동에 전국 각지의 많은 여학교 학생들 및 교사들이 참여하여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역사를 알게 되어 가슴 뭉클하고, 한편으로는 맘이 아팠다.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것이 어린 학생들의 탓이 아니었음에도, 앞서서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자리에 바로 이 여성들이 있었다니. 역사현장의 주역으로 참여했던 이러한 여성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현대에서는 많이 가려져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유관순 열사를 비롯, 여학교 학생들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한번 제대로 다루어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현존하는 일제강점기 건물은 일본식 가옥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 많은데(근처에 있는 정란각은 일제 군국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지어진만큼, 전형적인 일본 가옥의 형태를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일본 영화같은데서 보던 그대로였음), 이 건물은 서양식 기법을 따라 지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빨간 벽돌로 된 발코니가 있는 2층짜리 벽돌 건물, 사극에서 보던 옛날 서양가옥의 구조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오르면, 좌천동과 부산 부두의 모습이 훤히....잘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라 나무가 무성하고, 이제는 건물들이 많이 지어져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두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는 이 발코니에 오르면 부산 앞바다의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고 한다. 넓고 푸르른 바다를 바라보며 학생들이 어떠한 뜻을 맘에 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2층에서는 학생들이 항거로 인해 옥중고를 겪으며 느낀 소회를 쓴 편지가 남아있다. 편지를 읽는데 정말 눈물이 차오르고 마음이 찢어졌다. 여성으로서 그리고 식민지배를 받던 조선인으로서 옥중에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수치심과 차별도 그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근대 여성교육이 한국의 여성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강한 의지를 품고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교육의 힘이었으리라.


결국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1940년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결국 강제로 폐교되고, 선교사들 또한 강제로 추방되었다. 그들은 한국을 잊지 못하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으로 돌아와 모자보건에 뜻을 두고 병원을 세우고, 그 이름을 '일신부인병원'이라 지었다. 이 병원은 '일신기독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남아있고 나를 비롯 우리가족 삼남매가 바로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났던 병원이 이런 역사 속에서 지어졌다는 걸 알고 나니 뭔가 또 뭉클해졌다. 이 병원에서 30여년전에 태어났던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이런 역사를 알게 되었고 이걸 또 글로 남기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네...


이 학교의 역사를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졌다. 이 곳은 월~금 9시부터 17시까지 개방한다. 아쉽게도 주말에는 문을 개방하지 않는다. 부산의 사적지답게 꽤 가파른 언덕 위에 있지만, 시간을 내서라도 충분히 방문해 볼 가치가 있다. 부산의 여성교육 그리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다.


부산노회 주차장에서 찍은 학교 전경
옛 교실을 복원한 공간. 고풍스런 풍금과 최첨단 콤퓨-타의 묘한 공존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전 02화 기억의 도시, 기록의 도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