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주인공은 나야 나!
난 조연 따위가 아니야!
결혼을 누군가의 날로 정의한다면 당연히 신부의 날로 정의할 수 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어린 시절부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꿈꿔 오지 않았을까? 옆의 신랑이 백마 타고 온 왕자 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신부는 그 자체만으로 빛을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인에 들어낼 수 있는 날.
세상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새 출발을 하는 날. 누가 뭐래도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이다.
신부가 주연인 것을 인정 못하는 사람들.
그것도 신부와 가장 가까운 가족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신부의 자리를 위협하는 걸 넘어,
본인들이 주인공인 줄 안다.
본인이 주인공인 줄 아는 조연들 얘기를 해보겠다.
촬영자가 봤을 때는 촬영에 방해가 되는 요주의 인물들인데 그들은 관심종자들 이기 때문에 비위를 맞춰가며
눈치껏 무시를 해야 한다.
그들의 요청에 따라 촬영을 하다가는 정작 중요한 신부를 등한시하는 경우마저 생긴다.
워낙 한정된 시간에 일명 Money Shot이라 불리는 중요한 사진들을 찍어야 하는데, 조연들에게
끌려 다니다가는 촬영에 차질이 생긴다.
집요하게 자신을 카메라에 담아 달라고 요구한다. 본인도 꾸밀 만큼 꾸민 날이란다.
예를 들어 보자면 의외로 많은 경우가 있는데, 신부보다 먼저 결혼 경험이 있는 자매가 그렇다. 자신의 결혼식 때 못해 본 것에 대한 원한이라도 쌓였는지 머리, 화장, 액세서리 , 드레스는 말할 것도 없이.. 신부보다 더 까다롭고 예민하게 군다. 거기다가 자신의 딸아이들이 플라워 걸이라도 되는 경우에는
그들을 프로필 사진처럼 담아 줘야 한다.
결국에는 신부 자매가 말다툼을 벌리고 신부가 화장을 다시 해야 될 정도로 울기까지 했다.
신랑 아버지의 코미디언 기질 때문에 리셉션 파티를 망친 경우도 있었다. 1시간 정도 진행되는 칵테일파티가
끝나고 본 파티는 3-4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파티의 스케줄은 시간에 따라 엄격히 통제된다. 음식 나오는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150여 명의 하객에게 전채요리부터 스테이크와 생선, 치킨 등의 메인 디쉬(Main dishes) 그리고 디저트 까지를, 뒤늦게 음식을 받는 사람 없이 비슷한 시간에, 하객들의 테이블로 내 보내려면 파티의 키친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결혼식에서 뷔페요리는 가장 싼 음식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파티룸의 매니저와 파티 진행자는 매 순간 음식 스케줄을 확인해 가며 긴밀히 움직이며. 음식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인다.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은 코미디언 말고도 많다.
리셉션 파티에서 아버지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감사 인사 정도로 연설을 마치는 게 국룰인데, 이날 아버지는 마이크를 잡고 40여분을 이야기했다. 연설 초반에 신랑의 어릴 적 얘기로 하객을 웃겼는데 거기에 고무가 된 건지, 원래 긴 연설을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40분이 넘는 연설 시간 때문에 파티의 순서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은, 연설에 방해가 될까 봐 스태프들이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음식 서브를 제때 할 수가 없다. 준비된 음식이 서브되지도 못하고 식어 갈 상황이니 파티의 매니저는 애간장이 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 애간장이 타는 건 신랑도 마찬가지였다. 신랑이 기저귀를 3살 넘어까지 찼다는 이야기는 애교 수준이었다. 신랑의 예전 여자 친구 이야기마저 나오고 말았다.
웃기지 않는 웃긴 연설 중, 아버지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아버지를 쳐다보는 간절한 신랑.
그 옆에서 덩달아 긴장하고 있는 신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날 줄 모르는 연설. 기다리던 연설이 끝나자 하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보냈다. 박수칠 때 떠나라! 가 여기서도 적용될 줄이야.
신랑, 신부의 어머니들이 주연으로 떠 오른 일도 있었다. 화장, 헤어, 이브닝드레스까지 마치 신부와 경쟁하듯 신경을 쓰는 거였다. 화장과 헤어를 할 때는 신부보다 더 까다롭게 반응을 하고 새로 장만한 이브닝드레스를 입기 위해 과격한 다이어트를 했다며 자신을 봐 달라는 어머니들. 본인들, 제 멋이 있으니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는 주인공인 신부에게 집중할 타이밍에도 자신들을 찍어 달라는 염치없는 행동이다.
어머니들이 공주이니.. 신부는 여왕이 될 수 없고 몸종 정도?
한국 결혼식에서는 조금 더 황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호텔 연회장에서 별 탈 없이 진행되던 결혼이었는데
예식의 마지막 순간,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됐다.
힘차게 새 출발을 알리고 행진이 시작돼, 모든 하객들이 일어나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통로 끝으로 커플이 퇴장을 끝마쳤을 때였다. 마이크를 잡은 좀 전의 주례자가 축하할 일이 하나 더 있다는
안내 방송을 했다.
어리둥절해하는 하객들과 신랑, 신부.
주례자는 축하를 한 번 더 하자며 신부의 오빠와 새언니를 단상으로 불러 세웠다. 얼마 전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온 커플이었는데 미국에 있는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인사를 못 시켰다며 부른 거였다.
인사를 못했다면 인사만 하면 될 것을.... 주례자가 또 한 번의 결혼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좀 전에 퇴장했던
신랑, 신부가 이번에는 앞자리에 앉게 되고 얼떨결에 두 번의 결혼을 보게 된 사돈 식구와 하객.
난생처음 겪는 일로 당황해하는 촬영팀 그리고 호텔의 관련자들.
주례자는 꿋꿋이 또 한 번의 주례를 마쳤다.
나중에 들은 자초지종은 미국의 가족들이 한국에 갈 수 없었던 사정이 있어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을 못해,
주례자가 생각해낸 묘수였다는 거다. 주례자가 신부의 가족 사정을 잘 알고 있어도 그렇지,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미리 상의라도 하는 게 순서 아닌가? 물론 제일 황당해 한 사람은 주인공 신부였다.
어떻게 결혼식을 애드리브로 진행할 생각을 하셨을까?
주례자가 씬 스틸러가 된 100% 리얼 스토리다.
설사 100명의 사람이 와서 나를 이해시키려 해도 이해가 안 될, 경험을 여러 번 했다.
자식들이 주인공인 자리에 본인들 앙코르 웨딩이라도 하듯, 막무가내였던 신랑의 아버지, 어머니.
신부가 무엇을 하든지 쫓아하려던 질투의 화신 신부의 쌍둥이 언니.
마시고 춤추는 것에 목숨 건 듯이 보였던 안하무인 신랑의 친구들. 그들은 결혼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마치 헌팅 포차나 클럽에라도 온 듯이 행동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조연들을 만나면 사진가나 비디오 맨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옷을 끌어당기면서 까지 본인들을 찍어 달라며 협박성 요구를 하는 하객들.
남의 결혼에 날 잡은 사람들....
왜들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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