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따라 뉴욕에 이민을 오기로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표적으로 두 부류로 나뉘었다.
1) 우와, 뉴욕이라니. 부럽다!
2) 어떡해. 부모님이랑 친구들이 슬퍼하겠다.
2번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1번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는 내가 외동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인싸의 부류에 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주변은 항상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성격이 좋아서라고 스스로 말하긴 부끄러우니 나는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해두겠다. 인간 골든 리트리버라는 엠비티아이 유형에 속하는 나는 처음 본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나는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영주권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주변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해 영어 수업을 듣기로 했다. 뉴욕에 도착해 한 주는 놀고, 한 주는 거하게 아프고 나니 학교를 가야 할 시간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가는 학교이기도 했지만 같은 반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학교를 가는 첫날, 나는 동이 미처 트기도 전에 눈을 떴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 때는 그놈의 미라클 모닝을 하느라 새벽같이 일어나곤 했는데, 오랫동안 놀아서 일지 예전만큼 아침에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진 않았다. 4월 초의 뉴욕은 아직 너무 추운 데다 비까지 내려 등교 첫날 나의 몸은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축축 처졌다. 자박자박 내리는 빗길을 뚫고 몇 개월 동안 끊었던 커피를 다시 사서 익숙지 않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중국계 여자애가 나를 반겼다.
'저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나의 머릿속을 스쳤다. 웃으며 안녕이라고 답한 채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9시 정각에 모두 도착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대다수의 학생들은 9시가 지나서야 수업에 들어왔다.
첫 시간은 글쓰기 수업이었다. 수업 전 날 학교 측에서 보내준 안내문에 적힌 선생님 이름을 보고 남미 사람일 것이라 추측했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마가리타 선생님은 흰색 니트에 연보라색 머플러를 한 소녀 감성의 백인 선생님이었다. 좋은 에세이가 어떤 에세이인지에 대해 삼십 분가량 토론을 한 후 우리는 한 주제를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제는 바로 '미술 교육이 수학과 과학 교육만큼 중요한지'에 대해서였다.
글을 쓰는 내도록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나는 미술 과목을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유인즉슨 단순히 미술 선생이 싫어서였다. 잘난 척하는 그녀의 모습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던 미술 과목이지만 그녀의 수업을 조금만 열심히 들었더라면 지난해 루브르에서 좀 더 심도 있게 작품을 뜯어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은 한 시간 동안 글을 쓰는 내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글을 쓰며 십여 년도 더 된 나의 과거를 곱씹었다.
두 시간의 글쓰기 수업이 끝나자 삼십 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사람들은 이미 지난 학기를 함께 해 서로 친한 듯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나갔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그렇게 쉬는 시간, 나는 분주했던 아침에 급하게 싸 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시 과거를 곱씹었다. 이번엔 미술 시간이 아닌 혼자 김치볶음밥을 먹던 캐나다 유학 시절을. 이십 년도 더 지난 그 시절 나는 미처 입을 떼지 못해 친구가 없었다. 숫기가 없어서가 아닌 아는 영어가 하나도 없어서. 웃긴 건 이젠 영어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혼자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언어 이상의 무언가를 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해질 수 있다. 그때는 바로 내가 나의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었을 때 이루어진다.
어릴 적 친구를 만들 때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에게 내가 아끼는 간식을 나눠주곤 했다. 그것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었고, 나의 마음이었다. 그 사실을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캐나다에서 나와 같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한 친구에게 다가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자 청했다. 그 친구는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였는데 신라면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여 다 먹지도 못할 라면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식은 땀을 뻘뻘 흘려댔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결국 친구는 언어가 아닌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번 주는 좀 더 마음을 열고 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다가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동안 쉬이 열지 않아 곰팡이가 슬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더더욱 열어야지. 나의 마음이 곰팡이로 인해 썩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