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내 이야기가 세상에 도움이 될까
‘차선의’라는 이름은 프로필 소개에서 느껴지듯 가명이다. 브런치에 쓸 이름을 본명으로 할지 가명으로 할지만 족히 백일은 넘게 고민했다. 그렇다면 필명은 무엇으로 할지, 브런치 제목을 뭘로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한 달이 넘었던 것 같다. 이름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란 걸 알면서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이류의 삶>이란 이름으로 만든 이 브런치북에 열여섯 번의 글을 썼다. 늘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번번이 차선을 택해야 했고, 세상의 잣대로는 2류처럼 보이지만 시선을 달리해 보면 그저 다른 종류일 뿐인 내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동안 에세이 모임에서 써두었던 글을 퇴고한 것도 있었고,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기 위해 급하게 새로 쓴 글도 있다. 마감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월요일과 목요일이라는 연재 요일을 정해놓자 연재 전전날부터 머리가 지끈거렸고 글감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생각해둔 걸 모두 뒤엎고 새로 쓰는 한이 있어도, 그날 밤 10시에 올리더라도 어떻게든 마감은 하게 되었다. 기자 초년병 때 자주 듣던 ‘마감은 마감시간이 한다’는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내 글을 쓰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 마음의 일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고스란히 기록해보면 되는 거니까. 진짜 힘든 일은 남의 브런치북을 보는 것이었다.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해도 메인화면에 뜬 ‘요일별 연재 응원순·라이킷순’이나 브런치 추천작가, 에디터픽 글은 클릭을 참기 힘들었다. 읽다보면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이렇게 잘 쓰는 분이 아직 출간작가가 아니라니’라고 기함할 만한 글이 많았다. 남의 브런치북을 보면 볼수록 내 글 쓰는 걸 주저하게 됐다. 브런치 세상에는 재미있고 맛깔난 인생들이 가득했고, 작은 불행에서 깊은 깨달음을 주는 분들도 많았다. 나의 글 따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나 위로가 되지 않고 재미가 있지도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주기적으로 파도처럼 덮쳐왔다.
딱히 새로울 것도 별다를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내 이야기가 세상에 도움이 될까. 기자생활을 해서 그런지 나는 항상 자기검열의 늪에 빠져있었다. 새로워야 ‘뉴스’가 되니까, 특출나야 ‘얘기가 되니까’ 자극적인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포장해 쓰고 싶었다. 어릴 적 겪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불안했던 가정사도, 내가 아프고 아이가 아팠던 이야기들도 그래서 ‘짜잔!’하고 깜짝쇼를 하듯 보자기에서 풀어내었다. 그런 얘기를 몇 차례 쓰니 더 이상 쓸 글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내가 피부로 와 닿게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썼다. 마흔까지 뚱녀로 살다가 매일같이 운동을 하면서 살을 꽤나 뺀 것(물론 아직도 뚱녀다), 매일 밤 아이에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히는 일상, 청소연구소에서 가사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며 마음이 불편했던 에피소드, 워킹맘이 육아휴직 후에 느낀 점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악플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했고, 이렇게 사소한 글감으로 글을 써도 되나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에디터픽을 받아 메인화면에 몇 번 오른 글은 내가 아주 사소한 소재라고 생각한 글(13화 <가정주부가 청소를 돈 주고 맡겨도 되나>)이었다. 그때 알았다. 어깨 힘을 모두 빼고, 일상 속에서 마주한 공감 가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하트를 보내준다는 것을.
따져보면 뭐 내 얘기가 꼭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또 어떤가. 세상에는 생산성 없는 일도 필요한 것이다. 꼭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즐거움이나 위로나 응원을 건넬 수 없더라도 글쓰기가 즐거운 사람은 글쓰기를 하면 된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책상과 노트북과 커피만 있으면 가능한(‘한강느님’ 같은 대작가님에게는 커피도 필요가 없었지만), 작고 소박하고 안전한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작가가 되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꼭 작가가 되지 않아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기고백의 치유 효과는 분명했다. 어떤 문장은 노트북 키보드를 세차게 타다다 두드리면서도 내가 눈물이 나서 아침의 스터디카페에서 조용히 훌쩍이기도 했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말하면 안 된다고 배운 것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글로 쓴다.’ (브런치북 소개 중)
‘아무래도 훔쳐본 경험이 있기에 훔치는 어린이의 마음을 영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4화 중)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는 처음 가보는 병원이며 유치원에 신나게 발을 내딛다가도 구구절절 설명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멈칫하며 한 발자국 물러나진 않았을까.’ (5화 중)
‘아이를 낳고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된 걸까. 이게 진짜 내가 원하던 삶일까. 속에서 뜨거운 응어리들이 울컥 올라왔다.’ (7화 중)
‘2류에게도 진심은 있다. 비록 누군가에겐 2류로 평가절하 된다 할지라도 나를 비롯한 우리 회사 기자들에게는 일을 그저 일로써만 대하지 않는 뜨거운 마음이 분명 있다.’ (9화 중)
‘약점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고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12화 중)
‘나는 배제되고 싶지 않았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친구들에게서. 나의 특이성을 감춘 채 그냥 그들의 무리에 섞여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14화 중)
다시 읽어도 눈물이 차오르는 고백을 통해 내 마음도 조금은 어루만져졌다.
요즘 나는 김동식 작가의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라는 에세이집(2024, 요다 출판사)을 읽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절반을 단숨에 읽었다가, 가만가만 아껴 읽고 싶어서 잠시 책장을 덮었다. <회색인간>으로 유명한 젊은 소설가의 첫 에세이집인데, 작지만 크고 웃기지만 우습지 않고 차가운 것에서 길어올린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릴 적 먹은 컵떡볶이나 김가네 오불덮밥 같은 작가의 소울푸드에 관한 이야기, 초딩 시절 친구들과 비바람이 부는 해운대에서 생라면을 부숴먹은 에피소드, 시트콤을 보며 힐링했던 기억,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기꾼에게 배운 점 같은 이야기다.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그러모아 담백하게 들려주는 일이, 글이란 걸 쓰면 쓸수록 참 어려운 일이다 싶다. 김동식 작가의 관찰력과 상상력과 통찰력과 섬세함을 배우고 싶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처럼, 나도 작지만 크고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이야기를 랜선으로 연결돼 있는 독자들과 수다 떨 듯 나누며 살고 싶다. 인생은 쓰기에, 쓰디쓴 것은 토해내야만 단 것을 먹을 수 있기에,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