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일상 속 익숙하지 않았던 순간들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육수 끓이고 재료 준비하고 쌀을 씻어서 불렸다. 그러고 나서 끓고 있는 육수의 불 조절을 위해 잠깐 등을 돌렸는데 갑자기 '쿵'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촤르르'하는 느낌 쎄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불린 쌀을 밥솥에 넣어놓고 물 높이를 맞추려고 선반 위에 올려놓은 것이 주방 바닥에 아주 야무지게 떨어진 것이다.
어차피 가게에서 오픈 준비는 혼자 하기 때문에 아무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한 만큼 나 스스로한테도 관대하기 때문에 우선은 떨어뜨린 쌀들을 모아서 버렸다. 일순간 드는 생각 하나는 '아깝다'였다. 쌀, 비싼데... 바로 두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오늘 장사 모 아니면 도'였다.
징크스일까? 아니면 단순히 기분 탓일까? 익숙한 일상의 흐름을 깨는 이런 일들은 익숙하지 않은 하루를 선사하곤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잘 떨어질 것 같은 곳에 밥솥을 놓아둔 잘못이 더 큰데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아무튼 이 날은 장사가 매우 안된 날이었다. 게다가 귀한 쌀을 쏟았으니 저승 가서 천벌 받을 것 같다.
며칠 전에 그런 사고를 쳤으면 당분간은 조용해야 하는데 오늘은 쌀이 아닌 밀가루를 쏟아버렸다. 돈가스 만들려고 용기에 담아둔 밀가루였는데 마치 낚시하다 잡힌 활어마냥 푸다닥거리더니 주방 곳곳을 하얗게 뒤덮여놔 버렸다. 안 그래도 오늘은 할게 많은 날이었는데 밀가루가 지나간 곳을 없애느라 귀한 20분을 허비했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고, 나는 지체된 시간만큼 가게 오픈 시간에 모든 준비를 끝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핸드폰 카메라 켜는 시간에 재료 하나라도 손질을 더 했겠는데 움직이는 나의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될 것 같아서 결국 바쁜 와중에도 사진은 찍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며 관종이라 그러는데 지나가는 누구라도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실수는 했지만 그래도 글감 하나 건져서 웃고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장사도 모 아니면 도일 것 같았는데 결과는 완판이었다.
하루하루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순간순간은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때 그런 일들을 맞이하는 나의 기분에 따라 그날 전체의 컨디션도 좌우됐다. 분명히 내가 컨트롤할 수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느슨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마음도, 내 가게에도 다시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되는 시기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