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중3 때, 아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아주 당연한 듯이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확정되었단다. 솔직히 아빠는 당시 집안 형편도 그렇고 비행기에 대한 동경도 있어서 공군기술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어. 고등학생 신분이지만 학교에서 의식주를 제공하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품위유지비도 준다는 말에 많이 흔들렸던 때였지.
하지만 집안에서는 처음으로 가방끈이 긴 자식을 내놓고 싶었나 보더라고. 아빠는 그때부터 대학교 진학은 기본값이 되었던 거야. 굳이 왜 대학교에 가야 되는가에 대한 의문조차 가지지 못하고 집에서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에 그냥 그렇게 순응했었지.
비록 원하는 대학교 입시는 떨어졌지만 재수할 형편도 안 됐고 사립대 갈 형편도 안 돼서 지원한 곳 중에 합격한 곳에 가게 됐어.
아빠는 대학생이 된 순간부터 고삐가 풀린 망아지가 됐지. 1학년 때 공부? 출석만 해도 다행이었지. 1년 있으면 군대를 가야 된다는 생각에 그냥 놀기 바빴어. 술 마시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밴드활동도 하면서 말이야.
당시 추억들을 곱씹어보면 아빠는 그때를 행복이라는 기억의 공간 속에 저장해두고 있어. 행복한 추억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런 건 굳이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어.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했을 때 이제 공부 좀 해볼까 하는데 기본 지식이 깔려있지 않고 머리도 돌아가지 않으니 학과 생활 적응이 너무나 힘들었어. 25개월의 군생활은 내 인생에서 편식을 끊게 되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정신을 차리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너무나 굳어버린 머리로 학과 진도를 따라가기엔 힘들었지.
사춘기 때와는 다른 방황이 찾아왔어. 취업 때문에 아등바등 거리며 학점과 토익 점수에 목숨 거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감이 밀려왔지. 저렇게 열심히 살아도 대기업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고 중소기업에 취업을 한 선배들은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모습도 많이 봤어.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했고 노는 것도 제대로 놀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로 남은 대학 생활을 보냈어. 아빠 인생에서 복학 후 졸업하기까지의 3년은 솔직히 말해 암흑기였지. 스무 살, 스물한 살... 이 짧은 2년의 추억이 그나마 남은 20대 청춘을 버틸 수 있는 힘이었어. 그때 친구들과는 아직도 고향 친구 못지않게 찐한 우정을 나누고 있으니까.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빠는 대학 진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는단다. 학벌이라면 몰라도 학력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지. 요즘은 유튜브만 봐도 대학교 전공 지식 못지않은 전문성 있는 강의들이 널려있는 시대가 된 거야.
만약 너희가 원하고 너희가 꿈꾸는 목표의 어떤 단계에 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면 아빠는 주저 없이 응원해 줄 수 있어. 대신 학비를 뽑아먹을 만큼 도서관을 이용하라고 말하고 싶어. 아빠가 대학생 때 했던 실수가 뭐였냐면 도서관을 잘 안 갔다는 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교 도서관은 그 어떤 동네 도서관보다 도서 수가 방대했어. 원하는 어떤 지식도 흡수할 수 있는 곳이었지. 아빠는 그곳에서 무협지만 통달했던 사람이었어.
후회돼.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후회돼. 학생증이 갖고 있는 커다란 권리가 바로 도서관 책을 빌릴 수 있는 거였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후회되는구나.
그런데 말야. 회사에 취업하려고 대학교에 가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학력 자랑 하려고 대학교에 가려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차라리 아빠는 너희들이 커서 그런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거나 자신의 꿈을 위해 20대를 다 바칠 수 있는 열정 있는 청년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대학 진학은 너희들의 선택에 맡길게. 더 높은 지식을 탐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더 높은 곳도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줄게. 굳이 대학에 안 가고 스무 살에 너희들의 인생을 걸어보고 싶은 멋진 일을 계획한다면 아빤 그것 역시 응원해 줄게.
뭘 하든 너희들의 가슴이 뛰는 일이라면 응원해 줄게. 그러니 너희들이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진학에 대한 스트레스로 고생을 한다면 아빠는 이 글을 꺼내서 너희들에게 보여줄게. 그런 걸로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성적으로 아빠가 너희들을 뭐라 그러진 않을 거고 너희들은 단지 '너희들이 진짜로 원하는 그것'을 꼭 하라고 말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