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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이 May 12. 2023

한 번도 웃지 않은 노벨상 과학자의 속사정




1906년 어느 날 남편은 아내와 다툰 후 집을 나섰다. 분노와 통증 속에 비틀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이윽고 그는 도핀느 거리의 번잡한 교차로에서 마차에 깔렸다. 마차 뒷바퀴에 두개골이 깨졌고 그는 즉사했다.


남편의 죽음은 아내에게 너무 큰 상실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무덤 근처로 이사했고, 그 후로 찍은 사진에서는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을 볼 수 없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 째 되는 해에 아내는 남편의 물리학 교수직을 넘겨받아 소르본대학교에서 강의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1911년에 아내는 생애 두 번째 노벨상을 받았다. 이번에는 라듐 제조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티를 열지 않았다.



_도서 <불확실성의 시대> 中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별을 맞게 된 아내.

그 이후로 사진에서 절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

아픔을 연구로 잊어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과학자


바로 마리 퀴리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마리 퀴리> 中



세계적인 과학자
마리 퀴리



노벨상 두 번이나 받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살았지만 마리 퀴리의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이른 죽음,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

유산 경험, 남녀 차별, 분리불안 증상을 보이는 아이….


이런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겪은 마리 퀴리. 그럼에도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만든 퀴리 부인은 어떤 어린 시절을 겪었을까요?



영화 <마리 퀴리> 中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Maria Skłodowska=마리 퀴리)는 1867년 11월 7일, 바르샤바에서 정복자에 대항하는 교사 부부의 다섯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딸들에게 독립적 사고를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니아(집에서는 마리아를 이렇게 불렀다)가 네 살 때, 그의 어머니는 결핵에 걸리고 만다. 당시 결핵은 불치병이었고, 어머니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병을 전염시키지 않으려고 자식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마니아의 어머니는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마니아가 삶의 기쁨을 다시 찾기까지는 10년이 넘게 걸렸다. 마니아는 우선 공부 뒤에 숨었다. 책에 파묻혀 살며 초인적 노력으로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다. 열다섯 살 소녀는 스스로 만들어낸 압박에 신경쇠약을 앓았다. 홀로 자식을 키우던 아버지는 아픈 딸을 시골로 보내 쉬게 했다. 마니아는 그곳에서 마침내 책에서 벗어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파티를 열고 연애를 하고 밤새 춤을 췄다.


마니아는 여자도 학생으로 받아주는 폴란드 지하대학에 입학하여 최고 성적으로 모든 동기생을 앞질렀다. 하지만 의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간 두 살 위 언니 브로니아를 지원하기 위해, 마니아는 바르샤바 사탕수수 공장주 가정에서 가정교사로 일했다. 그리고 주인집 아들이자 수학을 전공하는 스물세 살의 청년 카시미르와 사랑에 빠졌다. 카시미르의 아버지는 이 일에 충격을 받았다. 카시미르는 우선 머뭇대며 아버지에게 저항했지만, 수년 동안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고, 마니아는 그에게 버려졌다. 깊이 상처 입은 심장과 남자에 대한 불타는 증오만이 혼자가 된 그녀에게 남겨졌다.


“가난한 여자와 결혼할 마음이 없다면, 지옥에나 떨어져라!”


1891년, 마니아는 언니 브로니아를 따라 파리로 갔다. 마리는 열정적으로 공부에 몰두했다. 낮에는 강의실, 실험실, 도서관에서 살고, 밤에는 전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의 책에 빠져들었다. 실험 도구 사용에 서툰 마리를 위해, 한 지인이 자기력 전문가 한 명을 소개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피에르 퀴리였다. 서른다섯 살의 수줍음 많고 어려 보이며 신중한 남자는 마리에게 전위계 사용법을 가르쳐주었고, 나중에는 그런 기기를 직접 개발했다. 마리는 카시미르와의 불행 이후 다시는 사랑하지 않기로 했지만, 피에르와의 만남 이후 그 결심을 버렸다. 마리와 피에르는 연인이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강철의 자기력 연구를 하고 있었으나 마리의 소명은 강철의 자기력이 아니었다. 마리에게는 연구해보고 싶은 더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뷔르츠부르크에서 빌헬름 뢴트겐(Wilhelm Röntgen)은 우연히 전기관 앞에 손을 대고 빛을 쏘았다가 그의 손을 관통하는 신비한 X선을 발견했다. 1896년 새해에 그는 결혼반지까지 찍힌 아내의 손뼈 사진을 동료들에게 보냈다. 생전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뢴트겐의 사진은 당대 과학계와 사회를 한껏 들뜨게 했다. 마리는 이 광선을 ‘우라늄선’ 대신 ‘방사성 광선’이라 불렀다. 그 광선이 우라늄 원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마리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찾기 시작했고 두 가지를 찾아냈다. 폴로늄과 라듐이 그것이었다.


퀴리 부부는 이제 막 시작된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해냈다. 그들은 새로운 물리학 세계관의 초석을 다졌다.


_도서 <불확실성의 시대> 中







* 마리 퀴리의 더 자세한 사연을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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