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인형을 세우는 것처럼

by 명하

사람의 본능에는 어떤 행동까지 새겨져 있을까?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기도 하다. 발달장애 때문이다. 보통 아이가 숟가락을 익숙하게 쥐기까지 열 번쯤 연습이 필요하다면, 우리 아이는 1만 번쯤 반복해야 비슷한 흉내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격차가 있다. 엎드리는 일도 그렇고, 아직도 혼자 하지 못하고 흉내만 내는 앉기가 그렇다.


그런 동작 하나하나를 보다 보면 내가 알던 상식이 산산이 부서지고 새로 쌓이는 느낌이다. 그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거대한 선물이었는지 알게 된다.


예를 들어서 물을 마시는 일이 그렇다.

액체를 마신다는 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본능적인 행동 같은데, 우리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입을 다물고 입 안에 압력을 만드는 등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을 벌린 채로 액체가 입 안을 돌아다니고 멋대로 흘러나오기도 한다. 가장 고약한 부분은,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삼키려 하면 꼭 사레에 들린다는 점이다.

알아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늘 말한다. 입술을 꼭 다물고 꿀꺽, 해야지.




어느 날, 아이가 재활치료를 받는 아이를 보다가 문득 어릴 적 내 토끼인형이 떠올랐다. 삼촌이 선물해 준 갈색의 부드러운 털을 가진 토끼인형이었다. 그 토끼인형은 오랫동안 내 방을 지켜줬다.

그 토끼 인형과 우리 아이가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부분이 닮은지 한번 보시라.


첫째, 몹시 귀엽다. 그렇다. 나는 팔불출이다.


둘째는 무게를 이용해 앉는다는 점이다.

토끼인형 안에는 뼈대랄 것이 없다. 다만 솜의 무게로 균형을 잡아 앉혀놓을 뿐이다. 모양마저 없다면 눕거나 선 것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저 솜과 털의 힘으로 굴러가지 않게 뒀는데 마침 얼굴이 앞에 있는 셈이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가 앉는 방식도 그렇다.

첫돌 전후로 많이 들었던 얘기가 ‘아이가 발을 먹나요?’였다. 우리 아이가 가장 많이 먹는 건 자기 콧물과 침인데, 도대체 어떤 아기가 발을 먹는다는 건가? 그때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훗날 둘째가 태어나 번쩍번뻑 발을 들고 하늘을 향해 발차기를 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 동작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발을 올릴 줄 안다는 것은 복근이 발달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에게는 복근이 그만큼 늦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복근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장기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쏠리기 때문에 배가 볼록해진다. 우리 아이는 귀여운 ET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재활센터에서는 복직근과 갈비뼈 마사지를 해 주는데, 아이에게는 꽤 고통스러운 재활 운동이다.) 그리고 오뚝이가 둥글고 무거운 아래쪽을 힘으로 삼아 설 수 있는 것처럼, 아이는 통통한 뱃살을 버팀목 삼아 상체를 얹는 식으로 앉을 수 있다.




셋째로는 균형을 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게는 이게 가장 충격이었다.

넘어질 것 같을 때 몸을 지탱하거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세를 취하는 등, 그런 반응이 자연스럽지 않고 요원한 일인 줄을 몰랐던 것이다.


아이는 통통한 뱃살을 이용해 앉아 있다가도 조금씩 기울어졌다. 그렇게 시나브로 기울어지다보면 옆이나 뒤로 발라당 넘어간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팔을 허우적거리거나 허리를 세우는 등의 동작을 취할 줄 몰랐다. 심지어 앞으로 넘어질 때조차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팔이 앞으로 향하는 식의 보호 동작이 나타나질 않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이의 머리는 무거운 편이다. 그 무게 그대로 앞으로 기울어지면 코를 찧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넘어지기 직전, 아이의 눈빛이 흔들린다. ‘무언가 잘못됐어!’ 라고 느끼기는 하는 것 같다.


앞으로 넘어질 때 다치지 않도록 팔을 들어 올리는 법을 배우기까지 2년 정도가 걸렸다. 지금도 열 번 하면 한 번 정도는 팔을 올리지 않아서 코를 찧거나 얼굴을 긁고는 하지만, 그래도 점차 능숙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평생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모든 동작을 1만 번씩 연습하려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다. 아무렴 평생 직업으로서 손색이 없다.




참, 아이가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본능에 새겨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 바로 함박웃음이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주 사소한 일에도 까르르 함박웃음을 짓는다.


정말이지 웃음만큼은 본능에 새겨져 있어서 다행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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