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던 날, 나는 꿍꿍이가 있었다

by 명하

아이가 태어나던 날, 유리창 너머로 요람에 앉아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걸었다.


태어난 걸 축하해. 세상에 재미있는 게 정말 많아. 네가 다 해볼 수 있게 해 줄게.


갓 아이를 본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는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자. 출산 전에 열심히 대비해 두었으니까. 하지만 준비가 충분했을까? 나도 아직 애인데, 어떻게 애를 키우지? 이런, 그새 또 걱정이라는 녀석이 튀어나왔다. 어서 들어갓.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눈앞의 아기 덕분이다. 허공을 바라보면서 입을 오물거리는, 아주아주 얕게 가슴이 오르내리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꾀죄죄한 갓난아기.


고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꽤 음흉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 슈퍼마리오다. 최대 4명이 함께 놀 수 있는 게임이다. 어릴 적에는 그렇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이 내게 처음 게임기를 사줬을 때, 나는 방구석에서 혼자 마리오를 하며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오는 부모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첫 취향이 참 오래가기도 한다. 그렇게 30년이 넘도록 나는 이 시리즈를 챙겨 왔고, 이제 어마무시한 꿈을 꾸고 있었다. 바로 우리 아이가 크거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마리오를 하겠다는 꿈이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절대 안 져 줘야지. 그것이 승부의 예의니까.

사실 이기고 지는 게 있는 게임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가 크면서 일생을 걸고 뽀로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역시 듣던 대로다. 아이는 꼭 부모의 뜻대로 크진 않는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데, 발달 속도가 좀 느린 것쯤 대수랴?


우리 아이 인생 이제 3년 차, 정말 말 그대로 일생을 걸고 뽀로로 덕질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잘 나가는 장난감을 사주다 보니 그게 뽀로로였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뽀로로 노래방은 키즈카페고 재활센터고 어딜 가나 있는 장난감 중 하나다. 노래가 나오는 동안 원판에서 뽀로로 친구들이 빙글빙글 돈다. 한창때는 그걸 하루 종일 쳐다볼 수 있었다.


지금은 치워놓은 상태인데, 사실은 우리 뽀로로 친구들 얼굴이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맨날 뽀로로 친구를 하나씩 집어다가 입에 넣고 물고 빨았던 결과다. 얼굴을 도색한 페인트들은 모두 아이의 피와 살이 됐겠지. 미세 플라스틱이며 환경호르몬 같은 걱정거리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직도 지나가지 못한 구강기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한번은 뽀로로 파크에 가보기로 했다. 그냥 뽀로로 장난감이 잔뜩 있는 테마의 키즈카페 정도로 여긴 나는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런 내 마음이 활짝 열린 것은 퍼레이드 때였다.


퍼레이드는 뽀로로와 루피 인형 탈을 쓴 배우가 나와서 한 바퀴 돌고, 아이들과 인사하고 프리허그까지 해 주는 행사였다. 아이는 처음으로 자기보다 훨씬 큰 뽀로로를 보고 놀랐다. 참고로 우리 아이의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과 소리에 잘 놀란다. 증후군 아이는 이런 식의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인가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뽀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눈의 집중력이 어찌나 강한지, 주위에서 소리 지르고 있는 애들은 신경도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천천히 손을 뻗는데, 나중에 또 얘기할 일이 있겠지만 손을 뻗는 것도 상당히 고무적인 사건인 가운데, 비로소 아이의 손끝이 뽀로로의 부리에 닿았다! 아이는 뽀로로의 부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어른으로서 뽀로로 속 배우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그날 우리는 아이를 세 번인가 더 데리고 가서 뽀로로를 만지고 인사해 보고 포옹시켰다. 아직 끌어안을 줄 모르는 아이이기에 포옹이라기보다는 쓰다듬당하기 정도로 표현해야겠지만 어쨌든, 아이는 그날 하루 종일 뽀로로를 보고 만지고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아내에게도 너무나 뜻깊고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알아버리고 말았다. 내가 바라는 일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훨씬 행복한 걸 말이다. 나도 생각보다 아주 애는 아닌 듯. 이게 본능인 걸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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