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되는 '무차임 공매도'는 증권사 정도돼야 할 수 있어요.
지금 시장은 SG증권발 하한가 사태로 유례없는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습니다. 주가조작단이 벌인 명백한 범죄를 CFD(차익결제거래)나 공매도라는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몰아가며 본질을 희석하려는 시도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쏟아지는 보도들을 복기해 보면 묘한 위질감이 느껴집니다. 주가조작단이라는 '범죄자'의 악행을 지적하기보다, CFD 제도나 공매도 시스템 자체를 문제 삼으며 사건의 본질을 '시스템의 결함'으로 희석하려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CFD나 공매도 시스템이 아닙니다.그런데도 마치 공매도가 불법적인 거래인 것 처럼 오용까지 되는 듯합니다.
금융 시장의 독특한 거래 방식인 공매도를 가장 쉽게 이해하기 위해 '콘서트 티켓 중고 거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정상적인 공매도 (차입 공매도): 이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금융거래입니다.나는 지금 티켓이 없지만, 내일이면 티켓 가격이 폭락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티켓을 가진 친구에게 "나중에 이자 붙여서 돌려줄게"라며 티켓을 빌려옵니다. 그리고 오늘 정가인 10만 원에 팔아 현금을 챙깁니다. 다음 날 티켓값이 2만 원으로 떨어졌을 때, 시장에서 2만 원에 사서 친구에게 돌려줍니다. 나는 앉아서 8만 원을 법니다. 이것이 시스템이 허용한 '차입 공매도'입니다.
불법 공매도 (무차입 공매도): 이것은 일반투자자는 시스템적으로 실수조차 할 수 없는 불법입니다.빌려올 친구도, 티켓도 없습니다. 그런데 일단 컴퓨터에 접속해 "나한테 티켓 100장 있음"이라고 가짜 숫자를 입력하고 팔아버립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티켓을 팔아 돈을 챙긴 셈이죠. 그리고 다음날 2만원에 티켓을 사서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거래는 일반 투자자에게는 철저히 막고 있어 '가짜 티켓'을 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열쇠를 쥔 증권사나 기관은 마음만 먹으면(혹은 실수하면) 이 유령 티켓을 얼마든지 시장에 뿌릴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증권사는 중간에서 감시자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차입'과 '무차입'이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차입 공매도 (정상):
내가 팔 티켓이 없으니, 티켓을 가진 친구(다른 투자자)에게 "나중에 이자 붙여서 돌려줄게"라고 약속하고 티켓을 빌려와서 파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정상적인 공매도입니다.
무차입 공매도 (불법):
빌려올 티켓도 없는데, 일단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티켓 100장 있음"이라고 입력하고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티켓을 판 셈이죠. 다음날 100장을 티켓을 구해서 보내줘도 불법이고, 못 구하면 사기까지 저지른 것입니다.
일반 투자자는 시스템이 막고 있어 '무차입 공매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열쇠를 쥔 증권사나 기관은 마음만 먹으면(혹은 실수하면) 이 가짜 티켓을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시스템의 불공정함입니다.
이미 2018년에 증권사는 임의로 '무차임 공매도'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설마 대형 증권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겠어?"라는 의구심은 2018년 삼성증권 사태 앞에서 처참히 깨집니다. 이 사건은 우리 금융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전 국민에게 생중계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삼성증권은 직원들에게 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입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의 단순한 입력 실수로 1,000원이 아닌 주당 1,000주의 주식이 입고되었습니다. 클릭 한 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28억 1,000만 주가 창조된 것입니다. 시가로 무려 112조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습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입금된 주식이 '가짜'임을 알면서도 일부 직원은 이를 시장에 팔아치웠고, 약 500만 주가 실제로 거래되며 주가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쳤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주식이 생성되고, 그것이 시장에서 버젓이 팔려나가는 동안 시스템은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습니다. 이는 증권사가 필요하다면(혹은 가격을 떨어뜨려야 한다면) 일반 투자자 몰래 얼마든지 '무차입 공매도(없는 티켓을 먼저 팔아버림)'를 저지를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방증합니다.
2023년의 CFD 사태는 범죄자들이 시스템의 '익명성'과 '레버리지'를 이용해 벌인 개별적 범죄입니다. 반면, 증권사의 무차입 공매도 가능성은 우리가 믿고 있는 시장의 저울 자체가 고장 났다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주가조작단이 벌인 일의 화살을 시스템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주가조작은 엄벌해야 할 범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범죄를 방조하는 감시 체제와, 시스템을 거스르는 권한을 가진 자들이 벌이는 '무차입 공매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증권사가 자신들의 이익이나 실수를 덮기 위해 언제든 가격을 왜곡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살아있는 한, 시장은 결코 공정하다 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거대 시스템의 불법에 대한 처벌은 주가조작단이나 전세 사기꾼이 받는 벌만큼이나 미미한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금융 시장은 모두에게 평등한 운동장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운동장 바닥을 마음대로 파헤칠 수 있는 삽을 쥐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렇기에 투자자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명확합니다. 모든 투자가 공정할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버리는 것입니다. 시스템의 완벽함을 맹신하기보다, 불공정이 벌어질 때 시장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관찰하고 그 안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대응 전략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주가조작단의 책임을 시스템 탓으로 희석하며 본질을 가리지 마십시오. 범죄는 엄단하되, 그 범죄가 파고든 '썩은 시스템'은 끝까지 추적해 도려내야 합니다. 공정한 시장은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날카로운 감시와 끊임없는 지적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