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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n 04. 2024

루틴, 그저 하는 것

해야 하는 것 아닌 하기로 한 것

  띠리리링.


  아침 5시. 핸드폰을 두 번 이상 울리지 않겠다는 기세로 손을 빠르게 움직여 휴대폰 알람을 끈다. 아직은 곤히 자고 있는 아내와 아들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5초의 망설임은 나에게 있을 수 없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 몸을 좌우로 한 번씩 뒤틀어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디에서 허리에 좋다는 소릴 들어서다. 아직은 어둠이 남아 있는 방을 손의 감각에 의지해 옷과 양말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소파에서 누운 채로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로 향해 가글을 한다. 입속 세균을 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는 아내의 얘기를 잘 듣는 남편이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물 한잔 한다. 대충 씻고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딸아이의 휴대폰을 방에 가져다 친절하게 충전까지 해준다(휴대폰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 같아 내가 잠들 때 가지고 간다). 아침에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딸아이지만 늘 아침 인사를 하곤 다시 잠든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 새벽 기상이 힘든 모양이다.


  휴대폰 앱으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자 다짐하며 밖을 나선다. 회사로 향하는 길에 보이는 많은 불빛들 속에 내가 있다. 밤을 지새운 건지 하루를 시작하는 건지 모를 많은 빛들이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다. 열심히 산다고 우쭐할 뻔 한 나에게 별거 아님을 알려 준다.


 '다들 참 열심히 산다'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원했다. 나를 위한 두 시간을 만들기 위해 유행처럼 번진 <미라클 모닝>을 하게 됐다. 6시 기상은 점차 당겨져 5시가 되었다. 더 당기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듯했다. 이제는 습관처럼 일어나 40분을 달려 6시에 회사에 도착한다. 회사에는 교대를 위해 세워둔 경비 아저씨의 차가 있다. 처음에는 이른 아침에 나타나는 낯선 차량에 경계심을 보였지만 이젠 먼저 인사해 주신다.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비 아저씨와의 첫 대화였다. 추운 겨울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둠 속에서 주차를 한 나에게 경비 아저씨는 말을 걸어왔다. 어색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답한다.


 "아.. 저 여기 회사 직원이에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고서야 경계를 푸는 모양새다.

 "그렇군요. 다른 곳에서 오셨나요?"

 "네에. 다른 사업장에 있다고 왔어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깜깜한 프런트를 지나 어둠 속에 빛나고 있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 사무실로 갈 수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불을 켠다. 자리에 짐을 내려두고 커피를 내린다. 겨울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몸을 녹이지만 여름에는 냉수로 대신한다. 


  일본어 필사를 하고 번역을 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친구가 준 300 문답집을 끄적대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회사 아침 식사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나의 아침 루틴은 여기까지다.


  ...


  '아싸, 비 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원래도 비가 좋아하지만 얼마부터 시작한 줄넘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신남이다. 비가 오면 하지 않는 것도 루틴이다. 회사 업무로 지친 날에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파트에 주차하면 바로 줄넘기를 하기로 했으니까 이유가 필요했다.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주차하면 트렁크에서 줄넘기를 꺼내 바로 줄넘기를 했다. 플라스틱으로 채워진 줄 때문에 아파트엔 늘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났고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게 나의 퇴근을 알아챘다. 


  '몸무게 좀 줄이는 거야.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아내의 걱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줄넘기로 10kg도 넘게 빼본 경험도 있다. 그래서 하루 천 개를 뛰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을 했지만 몸무게는 별로 빠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보다. 여름이라 비가 자주 와서 그랬을지도.


  집이 가까워질수록 빗발이 잠잠해진다. 결국 주차를 하고 나니 비는 완전히 그쳐 있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곤 트렁크에서 줄넘기를 꺼냈다. 그래도 하기로 한 건 해야지.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며 주차해 둔 차 앞에서 줄넘기를 시작한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는 차량 때문에 눈이 부시다. 예전에도 이렇게 줄넘기를 했었지 싶다가도 '그땐 달리기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윗몸 일으키도 했지'라는 생각에 이른다. 나는 천 개를 뛰고 줄넘기를 트렁크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도 잘 해냈구나라는 느낌도 들지 않을 만큼 무심한 루틴이다. 이 작은 성취가 모여 미라클은 아니라도 삶의 작은 동력이 되길 바라본다. 언젠가 조금 더 비상할 힘을 비축하듯 조금씩 자신의 알맹이를 키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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