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
밥맛도 영 없어서 대충 허기만 면하는 수준으로 식사를 했는데도 소화가 되질 않았다. 보통 이럴 때면, 소화제 한 방에 말끔히 해결되었는데 가루용 소화제에, 액체용 소화제에, 조제용 소화제에, 매실차까지 먹어도 도무지 낫질 않고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제만 해도 뭘 잘 못 먹고 체한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증상을 보니 이건 위경련이다. 이렇게 이틀 연속 위경련이 계속된 건 생전 처음이다.
평소 잘 아픈 스타일이 아니라서 어? 이상하다? 왜 이러지?, 했더니 남편이
"명절이 오고 있잖아."
라고 했다. 에이, 설마...., 그러면서도, 아, 그런가? 그렇구나...라고 인정해버렸다.
결혼한 지 벌써 11년 차. 명절 때마다 차례상 차리는 거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그게 참 어렵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일인데 굳이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필요 있을까? 아니, 노력하면 익숙해질 수나 있을까?
솔직히 명절에 내가 주방에서 하는 일이라곤 전 부치는 게 다다. 어머님이 하시는 일에 반에 반도 안된다. 이런 내가 명절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하면 어머님이 꼴X 하네,라고 하시겠지. 거의 40년을 본인 조상도 아닌 남의 조상 제사상을, 맏며느리라 혼자 차려야 했을 제사상을, 그것도 한 번도 안 빼고 차려오셨으니, 어머님 기준엔 꼴X이 맞긴 하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병이 날 정도로 싫다.
그냥 시댁에 가서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그러는 건 좋은데, 차례상 차리는 건 정말이지 너무 싫다. 누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에 여럿이 붙어서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한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남은 자손들이 하루 종일 지지고 볶느라 진 빠지는 걸 조상님들이 정말 좋아하실까? 음식 하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는 자손들을 보면서 까지 제사상을 받고 싶으실까? 내가 조상이라면 안 그럴 것 같다. 나중에 내 아들 딸이 내 제사상을 위해 괜히 먹지도 않는 음식 하느라 애쓰는 걸 보면, 속상할 것 같다. 관두고 좀 쉬어라,라고 말해주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