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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Nov 16. 2023

실연(失戀)의 고통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실연(失戀)의 고통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서울 드림'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는 서울에서 살아보리라'하는 뜻은 언제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교는 인서울(In Seoul)이지!' 했었고, 대학생 시절에는 '회사 생활은 꼭 서울에서 해봐야지!' 하는 마음을 품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인연이 닿지 않아 서울에서 살아볼 기회가 도통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상경할 때도 고민할 새 없이 기쁜 마음에 짐부터 꾸렸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와 다투게 되었다.

“…… 너는 너무 너다워. 나는 이제 그런 너 못 견디겠어.”라는 그의 단호한 말을 끝으로 우리는 진짜 끝이 나버렸다. 내가 나다워서 싫다는 그의 말은 끝끝내 나를 좌절시켰다. 좋아하던 회사에서 당한 해고도, 건강하다 생각했던 내 몸으로부터의 배신도 견딜만했다. 일이야 그거 아니어도 돈 벌 일은 있을 거고, 몸이야 응급 상태가 아니니 앞으로 회복하면 될 거고. 그런데, 실연은 도대체 참을 수가 없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새벽에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부산 집은 너무 멀다. 올라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이렇게 허무하게 내려갈 수는 없었다. 당장 생각나는 곳은 며칠 전에 서울 오는 길에 묵었던 충주의 한 모텔. 그때도 이 시간 즈음이었고, 당장은 여기만 아니면 돼서 떠오른 곳이 거기였다. 그때도 생전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그나마 그것도 한 번 가 본 곳이라고 왜인지 그곳이 생각났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직접 가본 곳만이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 아닐까 생각하며 어마어마한 짐을 싣고 다시 길에 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집으로 가기엔 아쉬웠다. 그러다가 옛날에 공주시에서 한달살이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 떠올랐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공주시로 향했다.

공주시는 정말 매력이 많은 도시다. 일례로 공주시에서는 평소 같았으면 1.5배속으로 설정하고 봤을 드라마를 원래 속도로 시청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끔 했다. 긴 러닝타임을 견디지 못해 빠르게 넘겨봤을 콘텐츠들인데, 여기서 만큼은 온전히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동네가 고즈넉하여 산책하기 매우 좋고, 제민천을 따라 걷는 풍경도 일품이다.     

나의 대학 시절에 따르던 민 교수님께서 공주에 머무신다 하여 연락을 드렸다.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교수님께 들은 귀한 이야기들 중 교수님 내외분께서는 서로가 이성으로 만나게 된 첫 사람이었고, 결혼까지 하시게 됐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는 경험 우선주의자로서 교수님의 러브 스토리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니, 어떻게 이 사람이 내 평생 유일의 피앙세인 줄 알 수 있을까? 그전에 겪어본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는데?’

나라면 앞길이 창창한 대학생 시절에 만나서 좋았던 사람이 있다 할지 언정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더 혹했을 것 같다.

교수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다 또 다른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는데, 어쩌면 비교할만한 대상이 없어서 선택하기가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단 것이다. 아마도 사모님께서는 본디부터 좋으신 분이었고, 교수님께서도 여러 모로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까지 이루어질 수 있었지 않나 한다. 나는 지금까지 남자친구를 아무리 만나도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서 더욱 감정이입되는 이야기였다.

연애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것이라고는 겨우 나 자신뿐이었다. ‘나는 애인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에 절대 참아낼 수 없는지’, ‘나는 어떤 류의 말을 싫어하는지’ 등 숱한 연애를 통해 알아낸 것이라곤 겨우 ‘나’였다. 여전히 혼자 길을 걷고 있는 나는 일찍이 짝을 찾은 교수님에게 그저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집을 나온 지도 열흘이 넘었다. 원래라면 그와 함께 있어야 했는데 나는 왜 또 혼자 있나?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기억이 안 나서 그때 쓴 일기를 찾아보았다.

나는 그가 다정하지 않은 것을 참을 수 없어했다. 그는 나에게 나의 과거, 현재, 미래, 뭐 하나 물어보는 것이 없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으로 그가 나에게 유일하게 물어본 것은 “치약을 왜 앞에서부터 안 짜고 아무렇게나 짜는 거야?”였다. 질문 내용이 하도 웃겨서 물어본 그때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체 왜 그런 걸 묻는 걸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안 궁금하나?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안 궁금하나? 내가 오늘 점심으로 무얼 먹었는지 안 궁금하나?

또한, 나는 그가 화내는 방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면서 자신의 화(火)를 표하는 걸까? 왜 그렇게 한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완전히 말문 막히게 해야만 하는 걸까. 왜 좀 더 다정하게 안아주며 설명해 주는 방향성이 아닐까? 나는 그의 화내는 방식을, 그의 휘어짐을, 그의 존재를 내 옆자리로 인정할 수 없었다. 한 때, 너는 너라서 나는 나라서 서로서로 좋다고 하며 사귀기로 했던 우리가 결국은 너는 너답고 나는 나다워서 헤어지게 되었음에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쉽게 마음 내주지 않으리.



안녕하세요, 여로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목요일이네요.

많은 성원 감사합니다. 꾸준히 쓸 수 있는 여로가 되어 보겠습니다.

오늘도 다복한 하루 되시길...♥


여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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