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빠, 저 그냥 한국 돌아가면 안 돼요?ㅠㅠ"

속이 터진다...!


국을 거쳐서 캐나다로 들어가는 비행노선.

나는 아이들처럼 비행기 타는 걸 그렇게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은 비싼 운임을 감수하더라도 가능한 한 직항노선을 타려고 하는데 난 가능한 한 경유지가 두세 개에 총 시간 사십 시간 넘어가는 완행 비행기면 완전 땡큐다. 경유하는 노선은 대부분 일단 저렴하다. 거기에 일반적으로 경유지 중 한 곳은 대기시간이 길어 공항 밖을 나가 도시를 한 바퀴 구경할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거기에 한 번 탈 때마다 비행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2년전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11시간을 기내에서 있는데 진짜로 지루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지루하지도 않고 간식을 비롯해 먹을 것 주는 횟수도 많아진다.

나와 큰 아이는 이렇게 비행기 여정을 즐기고 있는데 작은 아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도 없어지고 표정도 점점 굳어지는 게 께름칙했으나 워낙 좀 소심하고 우리 집에서 딸로 통하는 아이라 뭐... 먹는 것도 잘 먹고 있으니 문제없겠지.




그 무섭다는 공항 이민국도 무사히 통과하고 약 한 달간 머무를 임시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한국인 교포가 운영하는 곳이라 묵고 있는 손님들이 죄다 한국사람어서 큰 부담없이 지낼 수 있겠다 안심하고 우리가 묵을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캐나다 땅에 엉덩이를 붙였다. 한 오분쯤 지났나 열린 방문으로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전혀 경계도 없이 쓱 들어오더니 내가 앉아있는 침대로 점프한 뒤 바로 다시 창틀로 뛰어올라 앉았다. 그 녀석 몸짓에 그냥 쓰여 있었다. 내가 여기 터줏대감이거든. 넨 얼마나 여기 있을 거냐. 나 신경쓰이게 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 가라. 그때부터 복도에서 길막하고 누워있질 않나, 지하 세탁실에서 마주치면 걸리적거린다는 듯 냥~~ 한마디 쏘아붙이고 불여우처럼 계단을 튀어오르고, 거실에 있을 때 내 앞에서 뒹굴뒹굴 하길래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뻗자 오우, 냥펀치를! 잽싸게 피했다. 터줏대감이 아니라 성질 더러운 주인 노릇을 아주 톡톡히 하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도시탐색에 들어갔다. 앞으로 최소한 사 년은 살아야 할 곳. 오기 전 나름대로 많이 알아는 봤지만 글로 아는 것과 발로 걸어서 아는 것이 같겠나.

이제부터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캐나다 중부에 위치한 매니토바 주 위니펙이란 중소도시이다. 나도 이민을 준비하면서 처음 들어 본 곳인데(맨 밴쿠버 토론토만 들어봤지 다른 데는 뭐. 아! 퀘벡, 몬트리올, 캘거리도 아는군.) 순전히 영주권 받기가 다른 곳보다 수월하다고 해서 온 곳이었다. 숙소가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었는데 덕분에 시내는 웬만하면 걸어다닐 수 있었다. 제일 먼저 핸드폰도 개설해야 했고, 은행계좌도 만들어야 해서 도시탐색 겸 필요한 일들도 해 나가기로 했다.

따뜻한 유월이라 그런가 높은 건물 앞 약간 넓다란 공간들엔 노숙자들로 붐비고 있었다. 옛날 유럽 여행 때 그리고 신혼여행 때 봤던 도심 속 노숙자들 여기에도 어김없이 존재했다. 그때 봤던 노숙자들은 대부분 집시처럼 보이는 백인들이어서 배낭여행객들(거의 거지꼴)이나 노숙자나 잘 구분이 안 됐는데 여기는 거의 원주민들이었다. 몽골리안은 맞는데 얼굴골격이 약간 다른 굉장히 덩치가 큰 사람들이었다.(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했던 영국, 프랑스인들이 후에 대륙 점령에 들어가면서 이곳 원주민과의 혼혈로 태어난 사람들의 자손들이 상당수 이들이다.) 많은 범죄가 이들에게서 일어난다고 하는데 겉으로 보기엔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어제 막 온 뉴커머(new comer)입장으로서는 안심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 서브웨이의 맛은 어떨까. 최초의 점심으로 서브웨이를 먹기로 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누나네가 서브웨이를 운영하고 있어서 우리한테는 친근한 곳이었다. 의외로 한산해서 거의 줄 설 필요도 없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종업원의 쏟아지는 질문. 아... 서브웨이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일일이 골라야 하는 거지. 우리 어제 도착했다. 이민국에서도 필요서류 제출하니 거의 몇 마디 묻지 않고 들어왔는데, 누나네 서브웨이는 누나와 조카가 알아서 만들어 줘서 난 재료가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는데. 뭐라는 거냐? 나도 몰라요. 대충 달라고 해. 형이 말해 봐. 셋이서 손가락질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세 개를 받았는데 어째 엄청나게 많이 넣어 주는 것 같더니 돈이 꽤 나왔다. (얼마 후에 누나에게 물어봤다. 햄이랑 치즈는 하나만 고르고 야채는 에브리띵이라 그래. 야채는 다 넣어줘도 추가로 안 받거든.)


위니펙은 유럽의 오래된 도시 같았다. 백 년이 넘은 건물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그래 보였다.(우리가 머문 숙소도 백 년이 넘은 삼층집이었다. 그 당시 2년만 지나면 삼일운동 백주년이었는데  삼일운동이 있기도 전에 지은 집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신식건물도 많았으나 한국같은 그런 신식은 아닌 튀지 않는 밋밋한, 영국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공원도 다니고, 쇼핑몰도 다니고, 도서관도 가보고, 카페도 가보고 일주일을 한가롭게 도시를 느끼며 보냈다.





그날도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둘째가 조용히 나에게 오더니 방문을 닫았다.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한국에서 오는 중간부터 말도 없고 표정도 안 좋더니만 일났네.


"? 왜 그래, 너?"

"... ... 아빠 저 그냥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안 돼요? ㅠㅠ"

"아니, 이게 무슨... 우리 여기 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됐어. 뭘 한 것도 없는데 왜?"

"저 영어도 못 알아듣겠고... 좀 무섭기도 하구요..."

"아직 학교 가려면 두 달도 더 남았어. 그리고 너 같은 어린 아이는 영어 금세 늘어. 아빠가 문제지. 그리고 네가 뭐 영어를 못하니? 너 정도면 조금만 지나면 문제없다니까. 너도 알잖아?"

"..."


첫째는 저러지도 않지만 둘째가 저런 식으로 다가오면 마음이 녹아내려 그 고통이 나에게로 그대로 전이된다.

사실 원래는 나와 첫째만 오려고 했다. 둘째는 엄마와 그냥 한국에 있기로 했는데 마지막에 자기도 같이 갈 거라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다짐을 받고 같이 온 건데... 어떡하지. 방법은 딱 하나 아내가 있다.


"그럼 이따가 엄마랑 얘기해 보자."

 

미리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나와는 달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둘째를 바꿔달라고 했다. 여기 안 있어서 저러는 거지.

한동안 엄마하고 이야기를 한 둘째가 아까보다는 좀 편안해진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뭐가 잘 됐나?

아내의 얘기는 둘째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생각한 거랑 달리 영어도 안 되고, 뭘 하려고 하면 느려 터져서 언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곳이고,(그건 맞다.)집도 이제 3주 안에 구해야 되는데 적당한 집도 잘 안 나오는 것 같고(내가 한두 번 하소연 한 걸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보다.) 그래서 다 같이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하는데 아빠와 형은 여기가 만족스러운 것 같으니 가자는 말은 못 하겠고 혼자 끙끙 앓았다는 것이다. 우와... 미치겠다. 한 가지 빼놓고는 내가 골치 썩을 일인데 지가 왜? 으이그... 원래 그랬지 쟤가.

 

"엄마는 네가 언제든 와도 좋아. 네가 와서 엄마랑 있으면 정말 좋겠어. 근데 간 지 이제 일주일이라 아직 뭔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니까 일주일만 더 있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때 오는 걸로 하자. 걱정하지 마. 그래도 얼마든지 괜찮은 거야."


그 이후로 둘째가 달라졌다. 마음의 부담을 덜었는지 말할 일이 있으면 나나 형 대신 자기가 나서서 하고,(뭐 잘 알아듣고 얘기도 어느 정도 하더만. 괜히 겁을 집어먹고 울기는)시키지도 않은 정보수집도 하고, 아까 우편함에서 할인 쿠폰을 가져왔는데 점심은 거기로 가서 먹자는 둥 한결 밝아졌다.

이제 아이들이 다닐 학교도 알아보느라 교육청도 다니고, 또다시 살기 적당한 집도 수소문해보고(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긴 집 구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이러는 중에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둘째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어떻게, 결심은 선 거니?"

"네. 있으려구요. 뭐 별로 나쁘진 않은 거 같고..."


우쒸~~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 확 뻗친다. 네가 애냐?누가 너한테 그런 걱정하래? 네가 사춘기 여자애야? 일주일 만에 바뀔 결심을 눈물 뚝뚝 떨어뜨려가면서 어? 그때도 이런 말은 안 했다. 속이 썩는다.  

근데 신기하네. 아내는 어떻게 얘를 설득시켰지?



이미지 : https://images.app.goo.gl/9ceURmf3MG4S38vS6

이전 03화 씩씩하게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