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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듯 나태한, 있는 듯 없는  재미있는 캐나다

그래도 잘 돌아갑니다.

"How are you doing?"

"I'm good. How are you?"


난 중학교 때 영어 인삿말 배울 때 "How are you?" "Fine thanks, and you?" 이렇게 배웠. 그런데 이렇게 인사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 위의 대화처럼 인사한다.

너 어쩌고 있어? 난 좋아. 넌 어때? 여기 인삿말을 직역하자면 저렇겠지?

난 아직도 저런 패턴의 인사가 적응이 안 된다. 어떻긴 뭐가 어때? 늘 그렇지. 대답도 해줘야 한다. 뭐 내 상태가 어떤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도 아니면서 왜 꼭 대답을 해줘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든다. 저럴 때

"Not bad"나 "Not good" 이렇게 대답하면 왜 그러냐 무슨 일 있냐 꼬치꼬치 캐묻는다. 아니 그냥. 넌 뭐 맨날 기분 좋니? 이러고 싶어진다.

한국 인사법처럼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그냥 일상적인 관계에서 인사는 대답을 들으려는 게 아니니 저렇게 하는 게 좋지 않나? 네, 전 기분이 좋은데 댁은 어떤가요? 저는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이 별로예요. 이러자는 거 아닌가?난 왜 이런 것들이 쉽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학교 다닐 때 제일 힘들었던 것도 야, 모르겠으면 그냥 외워. 이거였다. 어떻게 이런 공식이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데 어떻게 외워지냔 말이다.

참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떤 개그맨이 나와 선배 전유성의 아주 독특한 행동을 이야기하면서

"후배들이 전유성 선배를 만나면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가는데요. 그러면 선배는 안녕하세요? 하고 물어봤으면 내가 안녕한지 안 한지  듣고 가야 할 거 아니야. 그냥 쌩 지나가버려. 이래요." 오우, 영어식 인사법이다.



내가 생각할 때 여기 캐나다는 차별이 거의 없는 나라다. 이렇게 말하면 여기 사는 누군가는 분명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당신 몰라서 하는 소리지. 앞에선 아닌 척 해도 뒷구멍으론 얼마나 지네끼리 짝짜꿍 하는지 알아?"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일 년짜리 워킹홀리데이로 왔든, 등록금을 매 학기 어마어마하게 내면서 캐나다 경제에 정말 크게 이바지하면서도 호구 소리 듣는 국제 학생이든, 방금 캐나다에 도착한 뉴커머가 그토록 부러워 마지않아 는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이든 당사자 앞에서는 절대로 차별적인 언동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외국인 특히 동양인을 거의 못 봤을 것 같은 꼬마들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유심히 쳐다보는 것 외에는 차별성을 은연중에라도 드러내는 일은 없다. 물론 자기네끼리 뒷구멍에서 손가락질하고 시시덕거리고 혹시 적개심을 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가끔 뉴스에서 보이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적 행동이나 괴롭힘 심지어 테러를 보고 혹시나 여기서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공공장소는 물론 내가 일하던(동양인은 오로지 나밖에 없었던) 곳에서도 전혀 그런 조짐도 보지 못했다.


이민을 준비할 때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던 바도 역시 인종차별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배타성이 가장 적은 곳이 어딘가였다. 사랑하는 내 나라에서 정말 아무 연고도 없는 다른 나라로 발걸음을 옮길 때, 게다가 내 눈에는 아직도 한 참 어려 보이는 아들 둘을 데리고 떠날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신변의 안전과 외국인에 대한 그 나라 사람들의 수용적 태도가 고려 일순위였다. 그래서 그들이 뒷구멍에서 무슨 욕을 하든 최소한 면전에서 또는 집단적으로 또는 조직 내에서 불이익으로 또는 국가 정책적으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채 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곳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에서 공교육 안에 들어가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재미있는 게 하나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심지어 생존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원에서까지 하도 반복을 해서 이젠 아주 지겨울 정도가 된 게 있는데 캐나다의 창피스러운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다.(정규 프로그램이라 시험도 본다.)

유럽에서 출발하여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뒤 굶어 죽어가던 이주민들을 위해 음식도 나눠주고 집도 같이 지어주고 나중에는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면서 이웃으로 받아들여 주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대륙개척이라는 이름으로 대량학살 했던 그들의 조상들의 야만스러웠던 역사를 낱낱이 까발린다. 이 역사는 믿을 수 없게도 1990년 대 초까지 원주민의 아이들을 유럽문화에 길들인다고 교회가 나서서 강제로 기숙사에 수용하고 그들의 말을 금지하는 등의 엽기적인 모습으로까지 나타난다.(다행이도 최근 캐나다를 방문한 교황이 교회를 대표해서 사과를 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사들도 자신들의 증조부모가 유럽 어디에서 왔으며(백인인 경우) 그곳이 너무나 살기 어려워서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이주하게 되었다고 부모님한테 들은 얘기들을 자연스럽게 해 준다.

이 수업이 물론 그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이 수업은 진행하는 교사도 수업을 듣는 학생도 수업을 프로그래밍한 기획자도 교육부 장관도 심지어 최고 정치권력자 저스틴 트뤼도 총리도 이주민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또는 대놓고 알려준다.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 여기 고유한 원주민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와서 살게 된 사람들(이주민)이니 서로 다른 언어, 종교, 피부색, 나이 등이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게 떠올라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같은 북아메리카인데 미국도 이런 역사교육을 하나요?"

"미국은 안 합니다."


충격적이었다. 안 한다고?캐나다나 미국이나 그들의 침략의 역사는 동일한데 학생들한테 알리지 않는다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자행했던 끔찍한 범죄 때문에 살아남은 원주민의 자손들이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데 모른 체 한다고? 내가 미국에 살고 있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확 믿어지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침략의 역사를 숨기는 일본과 다를 게 없구만.(실제로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인이라고 거들먹거린다고.)





"캐나다 전통음식은 뭐야?"

전통이라고까지 할 게 사실은 없는 나라라(캐나다 비하 아님. 내세울만한 기간의 역사가 아니므로) 뭐가 있을까?질문을 하는 사람이나 질문을 받는 사람이나 둘 다 이민배경을 갖고 있어서 캐나다 전통이라 하면 순간 당황하는 면이 있다.

"글쎄... 뭐가 있을까? 푸틴?"

 푸틴이라...  푸틴( Putine)은 1950년대 퀘벡에서 만들어진 감자요리로 감자튀김에 조각 난 치즈덩어리들을 얹고 그 위에 걸쭉한 고깃국물인 그레이비소스를 끼얹어 먹는 음식이다. 전통이랄 건 아니고 대표음식 정도이다. 이거 뭔 이런 음식이 있나 하고 먹어보면 구수한 그레이비소스가 입혀진 감자튀김, 거기에 모짜렐라 치즈가 곁들여져 꽤 괜찮은 맛이 나서 나름 대표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퀘벡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걸 보면 아마 프랑스 음식의 한 종류가 변형된 것 아닌가 한다.(퀘벡은 주로 프랑스계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고 언어도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곳이다.)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표음식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한국이라면 비빔밥 정도라도 내놓아야 할 것 같은데 떡볶이 한 접시 내놓은 느낌이다.




이 말은 즉, 뭐 없다는 얘기다. 캐나다만의 독특한 색깔, 지역색, 음식, 놀이, 습성, 언어, 정치색 등 수백 년 수천 년 이어온 나라라면 응당 있어야 할 것들이 여긴 없다. 각자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각자의 언어를 내재한 채로, 각자의 필요대로 모여서 '소통을 위한 언어인 영어'로 공부하고 일하고, 쉬고 놀 때는 각자의 민족끼리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렇게 산다. 따로 또 같이.  

이렇게 끈끈한 유대감 없이 또는 거의 반 강제적인 압박 없이 또는 일사불란한 수직구조 없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국적인 의문을 갖지만 돌아간다. 속이 터지도록 느리게, 어이없는 실수도 하면서, 이런 재수 없는 일이 이민자인 나에게만이 아니라 증조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 출신인 나의 교회 영어선생님이었던 크리스 할아버지한테도 공평하게 일어난다. 이런 비효율적인 일처리로 일어날 사회적 비용을 감수하면서 나라가 돌아간다.





인터넷 개설을 신청했는데 설치가 밀렸다고 한 달만에 개통이 되고, 은행계좌 개설을 위해 은행에 예약을 해야 하고 이주 후에 상담시간이 잡히고, 의료보험 카드를 갱신을 했는데 육 개월 만에 받고, 졸업생이 이백 명이나 돼서 졸업장 작성이 오래 걸려 한 달 후에 받을 수 있다고 태연하게 얘기하고, 혹시 정해진 기간인 이주 안에 서류가 도착하지 않으면 다시 여기로 오라고 안내하고, 안 와서 다시 신청하면 이틀 후에 그전 서류가 이제야 오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고 화도 났었지만 이젠 뭐 괜찮다. 신기할 정도다. 이래도 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니. 웃기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 적 있다. 내가 시의원이나 주의원 선거에 나간다면 공약 딱 한 개로 당선될 수 있겠다. "공공서비스 한국모델로 개혁!"


이렇게 얼렁뚱땅 돌아가는 게 좋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나 자신 죽어나가도 반드시 이때까지는, 저분 높은 사람이니까 저분 만은 최고로. 이렇지 않아서 좋다. 외국에서 온 어리바리 이민자들도 이래야 마음 덜 졸이며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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