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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7. 2022

아스퍼거 남친의 아이컨택트 방법

너는 사람이 말을 하는데 왜 딴 데를 봐

한국에 돌아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하던 중에 네버 기브업 Never give up 라이언이 한국에 들어왔다. 휴가 차 다녀간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호주에서 하던 택배 사업을 모두 접고 고려대 어학당에 등록해 학생비자로 들어왔다.


당시 나는 호주인 임원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모시던 부사장님은 나에게 호랑이처럼 무서운 보스이기도 했지만 일 외적인 면에서는 스승이자 아버지 같았던 분이셨다. 우리 커플의 이야기도 소상히 알고 계셨다.


라이언이 휴가 차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인사도 드렸고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만나는 고향 사람들이니 서로 쉽게 친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드디어 라이언이 장기계획으로 입국한 것에 대해 부사장님이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감사하게도 축하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달링(우리 커플이 서로를 부르는 애칭ㅋㅋ)은 이제 부사장님이 정말 편한 가봐?”

“응? 무슨 말이야?”

“부사장님이랑 아이컨택트를 하던데? 부사장님 뒤에 있는 벽지를 보는 게 아니라, 찐 아이컨택트를 하드라고.”

“응, 그렇지. 부사장님은 자주 뵈어서 그런지 이제 정말 편해.”


3년 넘게 사귀면서 그의 특징들을 간파한 나였다. 라이언이 처음 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걸 보면 겉으로는 별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라이언은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귀를 본다 거나, 상대방 머리 뒤에 있는 장식품이나 벽지 문양 같은 것을 응시하며 이야기한다.


내 친구를 처음 소개해 준 날은 친구 자리 바로 뒤 벽에 붙어있는 소주 광고의 소주병을 3초 정도 응시했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반복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부사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부사장님 뒤 편에 있던 장식장에 놓인 촛대의 꼭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아스퍼거 남친을 3년 사귀었더니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뇌의 신경회로 상에 문제를 갖고 태어나 사회적 상호작용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눈 맞춤을 못하는 것도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 중 하나로 이 때문에 아스퍼거인들은 살면서 다양한 오해를 받는다. 대화 중에 상대방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니 상대방은 '이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 의문을 갖게 되고 무시당하는 느낌까지도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서양문화권에서는 대화 중에 상대의 눈을 바로 보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여겨지기에 라이언은 어렸을 때 어딜 가나 어른들께 야단을 맞았다.


“너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자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듣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수없이 잔소리를 듣고 갈등을 겪고 나서야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마주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눈 맞춤 능력이 결여되어 태어났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눈 맞추는 것을 ‘능력’이라고 까지 칭할 일인가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족만큼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시선을 맞추는 것을 극도로 힘들어한다.


사람을 아예 안 만나고 혼자 살 수는 없었기에 라이언은 생존법을 터득해야 했다. 라이언은 편하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자신이 그 대화 중에 시선을 둘 목표 지점 한 군데를 미리 정한다. 얼굴에 점이나 피어싱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이면 구세주가 따로 없다. 대화 내내 상대방 볼에 있는 점에 시선을 두면 감쪽같이 아이컨택트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얼굴에 특징점이 없는 사람이라면 재빨리 다른 목표물을 찾는다. 얼굴에 점 하나 없는 백옥피부를 가진 테니스 코치님과의 대화는 참 곤란하다. 이런 경우 코치님이 매고 있는 가방의 어깨 스트랩에 붙어있는 상표 라벨을 타깃으로 정한다. 비스듬한 자세로 서있는 코치님과의 대화 중에 그 라벨에 시선을 두면 '너는 사람이 말을 하는데 왜 딴 데 쳐다보고 있냐'라고 야단맞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대인관계를 힘들어하는 것을 뻔히 알기에 라이언과 사귀면서 친구들 모임에 같이 나가거나 더블데이트를 하는 것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되었다. 사회성이 없을수록 더 자주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며 대인관계 상황을 푸시하는 것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문일 수 있다. 


태어나기를 왼손잡이로 태어난 사람에게 오른손 사용을 강요하면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오른손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하라니까 하는 것일 뿐이지 오른손을 쓰는 것이 정말 더 편해서 오른손을 쓰는 것은 아니다. '자꾸 해봐야 늘지.'라는 일방적인 생각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의 남자 친구가 마침 고려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 오빠는 라이언과 동갑인 데다 엄청 넉살 좋은 성격이라 처음부터 라이언을 잘 챙겨주었다. 학교 투어도 시켜주고 주변 맛집에서 소주도 몇 잔 같이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라이언이 그 오빠와 찐 아이컨택트를 하기 시작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졌다고 해서 아예 친구가 없거나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가족만큼 편해지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들과는 자연스럽게 아이컨택트도 할 수 있고 농담도 주고받을 수 있다.


라이언이 워낙 어딜 가서 말을 하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이 라이언은 과묵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웃음에 인색한 나를 빵빵 터지게 하는 유머감각을 가졌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항상 급해서 실수 연발인 나와는 달리 항상 차분하고 성격 좋은데 웃기기까지 한 그의 매력을 이 세상 극소수의 사람들 만이 아는 것이 안타깝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소위 말하는 '인싸 중의 인싸'가 되었을 거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제한적인 삶을 사는 게 아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이 그를 한 꺼풀 가려놓은 덕분에 내 눈에만 그가 발견된 건 감사하게 여겨지도 한다. 


인싸가 아니면 어떠랴. MBTI 극 E 인 내 주변에도 나이가 들수록 오래 남는 사람들의 숫자는 손가락에 꼽는 정도이다. 따지고 보면 라이언이 편하게 아이컨택트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나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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