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의 쓰임을 확인해준 사람
내 생애 자존감이 가장 낮았던 시절은 대학교 4학년 졸업식을 앞둔 무렵이었다.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극도로 우울하고 무기력한 내 정신상태를 고향에서 올라온 부모님께 들키고 싶지 않았다. 졸업가운을 입은 내 모습이 흡사 마대자루에 둘둘 감긴 대형 폐기물처럼 보일 것 같아 두려웠다. 졸업가운을 태가 나게 입을 자격은 취업에 성공해야 생긴다고 믿었다.
습관적으로 구직사이트에 접속해서 서울, 수도권 지역 기업에 온라인 원서를 내고 탈락 이메일 받기를 반복하던 그때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귀하는 이번에 채용되지 않았습니다.'로 시작되는 이메일을 하루에도 몇 통씩 받으니 나 자신이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지옥철과 만원 버스를 꾹꾹 채우며 출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저 많은 사람들보다 못난 인간인 것인가. 절대다수에 끼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거절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그 기업에서 '우리한테는 네가 필요 없어. 너는 이 일을 못할 걸?'이라고 내 쓰임과 능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은 자존감을 추락시킨다. 이 세상에 크든 작든 나라인 인간이 쓰일 곳이 있다면 내 존재 가치가 증명된다. '내일 당장 내가 사라진다면?'라는 상상을 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야 삶을 지탱할 수 있다. 눈에 밟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세상에 나의 쓰임이 많다는 반증이다.
하다못해 매일 아침 내가 먹이는 길고양이라도 떠올라야 '내가 죽으면 그 고양이 배곯을 텐데.' 라며 세상을 향한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라도 내 쓰임을 인정받아야 바닥 친 자존감이 아예 말라 증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연애 초기 호주에 살던 시절, 라이언이 나에게 '네 곁에 있으면 더 자신감이 생겨. I feel more confident around you.'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기석에 앉아있기만 하는데도 그는 카센터에 가거나 관공서에 갈 때 꼭 나를 데려갔다. 심심해서 그런가? 한창 눈에 콩깍지가 씌여있을 때라 항상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가?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게 물어보았더니 '네 곁에 있으면 더 자신감이 생겨. I feel more confident around you.'라고 대답했다.
지나가듯 던진 그 말이 왜 20년 가까이나 내 마음속에 콱 박혀있을까? 그 말은 내가 라이언에게 어떤 쓰임인지 명확히 알려줬기 때문이다. 내 존재 자체가 그에게 자신감이 된다니. 그 곁에 있으면 나는 숨만 쉬어도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셈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영화 '아담'에서 주인공 아담은 타도시에 좋은 일자리를 구한다. 아담은 베스에게 함께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가자고 제안한다. 베스는 사랑하는 마음에 처음에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민에 빠진다. 가족의 반대와 아스퍼거 신드롬을 앓고 있는 아담과의 연애에서 겪는 크고 작은 갈등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정에 대해서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한 탓이다.
아담이 자신에게 확신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베스는 '왜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아담은 'Becasue I need you.' '나는 당신이 필요하니까요.'라고 답하고 베쓰는 절망한다. 'Because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면 모든 고민을 뒤로하고 그를 따라나섰을 베스였다. 아담의 그 대답은 아스퍼거 신드롬을 앓고 있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애정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소통의 벽을 실감하게 했다.
아담이 정말 베스를 '이용' 할 목적으로만 같이 이사 가자고 했을까?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한다. 상호작용 능력이 결여된 채 태어난 아담이 면접을 봐서 취직을 하고, 주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튀지 않는 일상'을 영위하는데 베스가 코치해주었던 수많은 소통법과 상식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걸 떠나 아담은 베스를 정말 사랑한다. 문제는 아담이 넘치는 사랑을 갖고 있어도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점이다. 베스가 '필요하다' 는 것은 팩트이기 때문에 아스퍼거신드롬을 가진 아담도 그 내용을 쉽게 말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다. 반면에 아담이 감정과 관련된 내용을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베스가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베스도 그 순간 아담이 하고자 하는 말은 'I love you.'였지만 'I need you.'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했단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대답은 베스가 아담을 선택했을 때 평생 감수하고 살아야 할 결핍을 상징했고 그녀를 선택의 기로로 몰았다.
누구나, 특히 여자라면, 내 연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확인받고 싶어 한다. 함께한 시간이 길더라도 문득문득 관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면 상대가 나를 굳건히 잡아주기를 원한다. 항상 씩씩한 여자 대장부라서 일상에서 대소사를 독립적으로 챙기는 스타일이라도 가끔은 내 연인에게 기대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 순간 베스는 아담을 선택했을 때 그녀가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아담은 베스의 직장을 찾아가 유치원 교사인 베스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높은 울타리 너머로 한참 동안 지켜본다. 경찰은 어린아이들 쪽을 응시하고 있는 아담을 소아성애자로 오해하고 현장에서 체포해버린다. 당황하면 공황상태에 빠지고 뇌 정지 상태가 오는 아스퍼거신드롬의 특성 때문에 아담은 자기변호를 위한 말 한마디 못한 채 경찰에게 끌려갈 처지에 놓인다.
베쓰가 이 상황을 목격하고 달려와 경찰에게 아담의 신원을 확인해주고 소아성애자가 아니라고 대변해준다. 철장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하고 있는 이 장면은 베스가 사는 '일반적인 세상'과 아담이 사는 '그만의 세상'이 명확히 분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베스는 자신이 사는 세상으로 아담이 넘어올 수 있도록 아담을 가르치고 도와준다. 아담이 과연 높디높은 철장 울타리를 넘어 베스가 사는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사람을 인생의 반려자로 삼는다면 반드시 포기해야 될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쓰임을 더 크게 바라보았다. 세상이 라이언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곡해할 때 내 목소리는 세상의 언어로 그의 말을 재생산할 수 있다. 아스퍼거 신드롬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단절된 그를 이 세상과 다시 연결해주는 역할이 내 존재의 쓸모로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하는 한 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은 자존감을 높여준다. 내가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가 나에게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
겉으로는 센 척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책하기를 반복하는 나에게, 내가 곁에서 숨만 쉬어도 힘이 된다는 반려자의 무한한 사랑과 응원은 내 가치의 증명이 된다. 결핍을 실천과 행동으로 채우려고 부단히 애쓰는 내 삶에 있어 조건 없는 그의 사랑과 응원, 지지는 내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그는 내 자존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