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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점코치 모니카 Oct 17. 2022

아스퍼거 남친도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스퍼거증후군이 유전이라고?


‘환승연애2’ 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헤어진 연인들 몇 쌍이 합숙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쇼이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전 연인이 누구인지 비밀로 해야 한다. 한 때 불타게 사랑했던 헤어진 연인이 다른 이성과 호감을 주고받는 모습을 한 집에서 꼼짝없이 지켜봐야 된다. 참가자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연인 사이였던 나연과 희두 역시 다른 참가자들 앞에서 둘의 사이를 감추려고 애쓴다. 오랜만에 나연의 얼굴을 보니 복잡한 감정이 드는 희두와는 달리 나연은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사랑을 찾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연의 행동이 못마땅한 희두는 불편한 감정을 감추는 것이 쉽지 않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연이 강아지 사진을 희두에게 보여주며 “귀엽지?”라고 묻자 희두는 퉁명스럽게 “하나도 안 귀여운데?”라고 답한다. 다른 남자와 대놓고 노닥거리는 나연의 행동에 감정이 상한 희두가 나연이의 말에 사사건건 툴툴대는 것이다.


이 장면을 지켜본 패널들은 박장대소했다. 남의 강아지를 보고 대놓고 ‘하나도 안 귀엽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잘 없기 때문이다.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거나 속으로 사진 속 강아지가 특별한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예쁘다. 귀엽다.’라고 반응해주는 것이 상식이다. 강아지 주인의 감정을 생각해서 빈 말이라도 해주는 것이 예의다.


누가 봐도 몽실몽실한 하얀 털이 귀여운 강아지를 보고 너무나 무뚝뚝하게 ‘하나도 안 귀여운데?’ 라니. 전 연인에 대한 질투와 화로 인해 상식에서 벗어난 멘트까지 던지고 마는 희두의 모습을 패널들은 재미있게 보았다. 이 장면이 웃긴 이유는 ‘세상에,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지점에 있다.


실제로 저렇게 말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 나는 희두의 대사를 듣고 한참 동안 혼자 웃었다. 마이 달링 라이언이 떠올라서였다.


강아지나 어린아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다는데... 희두는 나름 복잡한 감정적 이유가 있어서 나연의 강아지 사진을 보고 대놓고 귀엽지 않다고 말했지만 라이언은 그냥 아이들을 싫어한다.


연애시절 라이언과 함께 길을 걷다가 아장아장 걸어가는 인형 같은 아기를 보며 ‘완전 귀엽지 않아?’라고 물었더니 ‘아니, 하나도 한 귀여운데.’라고 대답해서 혹시나 아기 부모가 들었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이 많은 주말 쇼핑몰에서 지나가다가 유치원생 나이 정도 아이와 부딪칠 것 같은 상황이 오면 보통은 충돌하지 않도록 어른이 알아서 피해 준다. 라이언은 그냥 계속 걸어가면 아이와 부딪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던 길을 유지한다. 아이와 충돌해서 아이가 넘어지면 그 건 한 눈 파느라 제대로 앞을 보지 않고 걸은 아이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아이와 부딪친 상황이라면 일반적으로 어른이 먼저 ‘어머, 괜찮니?’라고 본능적으로 묻는다. 라이언은 아이가 다쳤는지 여부를 확인하기보다는 ‘잘 보고 다녀.’라고 아이에게 주의를 준다.


청각이 민감한 아스퍼거 신드롬의 특징 때문인지 라이언은 아기 울음소리 나 아이들이 내는 소음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구에게나 거슬릴 만한 괴성이라면 납득이 가지만 2명의 아이가 역할놀이 중에 소곤소곤 내는 대화 소리 나 남들에게는 귀엽게 들릴법한 아이들의 노랫소리도 불편해한다.


이쯤 되니 라이언과 결혼은 해도 아이를 가질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때부터 동체시력을 타고나 걸음마 때부터 주변 시야를 다 확보하여 정확히 직립 보행하고, 울지도 않는 아기를 낳을 방도는 없었다.


자기 아이는 다를 수 있다지만 낳아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며 덜컥 아이를 낳았는데 라이언이 아기 울음소리를 못 견딘다면? 자식을 낳고 남편을 잃을 것 같았다.


미래 일을 자세하게 상상하고 사서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라이언은 자녀계획 문제에 대해서도 태평했다. 자식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가질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며 자기가 어릴 때부터 그려온 자신의 ‘드림 패밀리’ 에는 부부와 자식 2명이 있다고 했다. 라이언의 가족 구성이 부모님과 형, 라이언 네 식구이다. 1년에 단 2번, 서로의 생일에만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는 별로 사이가 좋지도 않은 형이지만 어릴 때 형의 존재가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있냐고 물으면 알코올 중독자 친척을 예로 들며 그들도 자식이 있고 부모가 됐는데 우리가 왜 부모가 될 수 없느냐며 그들보다는 훨씬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있다며 자신만만해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부모가 되는 것에 두려움이 없고 자식을 둘이나 희망하는 것이 모순적으로 들렸기에 자녀계획을 떠올리면 혼란스러웠다.


20대 때는 우리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아기는 서른 넘어 낳자는 것이 자녀 계획을 미루는 표면상 이유였지만 내 속으로는 아이를 싫어하는 라이언의 성향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 라이언의 조카 루비가 태어났다. 우리보다 먼저 결혼을 한 3살 위 형이 첫 딸을 출산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신생아 시절에는 몇 번 보지 못했고 루비가 4살 무렵 뒤뚱뛰뚱 걷고 혀 짧은 소리로 말을 할 수 있을 즈음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다. 회사 때문에 나는 루비를 만나지 못했고 퇴근 후 라이언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루비 이야기를 하는 이 남자. 눈에서 하트가 흘러나온다. 루비가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신발장에 있는 내 하이힐을 꺼내서 공주놀이를 했고 간식은 무얼 먹었고 형이 기저귀를 2번 갈아주었으며 자신을 “엉끌 롸욘”이라고 불렀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세상에 어쩜 그렇게 귀여운 생물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 경이롭다고도 했다. 화소가 좋지도 않은 노키아 폰으로 찍은 루비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도 자꾸 보니 지겨울 지경이었다.


희망이 보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식상한 말이 이렇게 와닿는 순간이 있을까? 조카를 대하는 모습을 보니 라이언이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라이언의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들은 사람들은 유전 가능성에 대한 걱정은 없느냐고 종종 물어온다. 연애 시절부터 우리 커플은 라이언의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활발하게 소통했다. 하지만 자녀계획을 세울 때 아스퍼거 신드롬의 유전 여부가 이슈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아기가 아스퍼거 신드롬을 갖고 태어난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핍을 안고 태어난 아이인 만큼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겠지만 아빠가 같은 질환을 갖고도 잘 살아낸 만큼 우리 아기도 잘 살아낼 것이라 믿는다.


오히려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야 된다면 우리 커플에게 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수 있다. 엄마는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고 아빠는 본인이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당사자로서 우리 커플만큼 이 아이의 ‘특별함’을 잘 헤아릴 수 있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스퍼거 신드롬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고 여전히 연구 중이다. 물론 유전의 영향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내 연인이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졌다고 해서 미리 2세 걱정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어떤 아이를 낳느냐 보다 어떤 아이로 키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자폐 스펙트럼 없이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도 우울증을 앓고 각종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일이 흔한 세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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