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퍼거 배우자와 사는 것은 포기와 체념의 연속이다.
아스퍼거신드롬에 대해 깊이 이해한다고 해서 결혼 생활 중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성이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높은 성향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씩씩하게 버텨내려고 노력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묵은 체증이 늘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살아있는 생물체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람의 감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감정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자와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내 감정에 대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일이 거듭 쌓이게 되면 지독한 외로움과 숨 막히는 답답함을 맛보게 된다.
호주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직 후, 호르몬의 롤러코스터와 수면부족의 콜라보로 내 마음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기를 안고 잘 앉아있다가 갑자기 주룩주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내 모습을 봐도 남편은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평소에 잘 울지 않는 씩씩한 아내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해도 '난 지금 참 난처하다.'라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만 볼 뿐이다. 나를 안아주거나, 내 등을 토닥여주거나,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배우자의 위로가 절실한 순간에 나는 항상 철저하게 방치되었다.
'내가 자기 아내인데, 하물며 그냥 한 집에 사는 플랫메이트라도 곁에 있는 사람이 울면 궁금하지 않나? 그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시간들을 견뎠다. 기다리는 것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사람인양 보였다. 남편의 아스퍼거신드롬에 대해 이해한다고 해서 그런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안다고 해서 섭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신은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내가 이렇게 엉엉 울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가만히 있냐? 걱정도 되지 않냐?"
하 답답해서 따져 물으면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호르몬 때문이야. 의사가 그랬잖아. 출산 후 여자는 이유 모를 감정 기복을 느껴서 극심한 우울감을 느낄 수도 있고 갑자기 울기도 한다고. 지금 당신이 의사가 예측한 증상을 겪고 있는 거야. 그게 정상이야. 잇츠 노멀. It is normal."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겪는다고 해서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당연한 섭리는 모두가 아는 노멀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부모상을 당한 사람에게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거야. 잇츠 노멀."
이라고 할 건가? 공감능력 없이 태어난 남편은 따로 교육해주지 않으면 정말로 저렇게 말할 수 있다. 남편에게 공감을 바라는 것은 포기해야 된다는 걸 너무 잘 안다. 다 아는데도 미칠 것 같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아스퍼거 배우자와 사는 것은 끊임없는 포기와 체념의 연속이다.
아스퍼거 남편을 둔 아내들은 공통적으로 '예전의 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꼭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배우자와 살지 않더라도 여자들은 결혼하고 육아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의 변화를 크게 겪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감정을 겪는다.
아스퍼거 남편을 둔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이 있다면 사회성 부분이다. 대학교 때 까지는 처음 만난 사람들도 백이면 백, 내 혈액형이 O형이라고 생각했다. 전형적인 O형 스테레오 타입에 딱 맞는 성격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O형이라고 하면 깜짝 놀란다. B형인 줄 알았다는 거다.
남편과 사귀고부터 새롭게 확장되는 인간관계는 드물었고 기존의 인간관계도 극도로 축소됐다. 대인관계는 정성을 쏟아야 유지할 수 있다. 잊을만하면 통화하고 서로 얼굴 보고 시간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유지가 된다. 아스퍼거 남편과 결혼 생활에서는 이게 정말 어렵다.
각자 3개의 다른 도시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고향에서 모이기로 했다. 고향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밤새도록 운전 걱정 없이 편하게 술 마시고 놀자는 가족모임 자리였다. 아이들도 모두 또래였고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 기대되는 마음이 컸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자 처음에는 그냥 '알았다.'라고 대답했다. 갈등을 극도로 꺼려하는 아스퍼거인들은 상대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거절했을 때 상대가 보일 반응이 두렵고 혹시 그것이 갈등 상황으로 이어질까 봐 일단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한다.
친구들과 약속한 주말이 다가왔다. 남편이 이유 없이 죽상을 하고 짜증을 냈다. 그 주 토요일, 남편은 오전 근무를 해야 했다. 나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고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바로 친구네로 오기로 했다. 남편의 퇴근 시간 즈음 전화를 했더니 남편이 집에 있었다. 왜 내 친구네로 오지 않고 집으로 갔냐고 물으니 집에 가방을 놓고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차는 심지어 카니발이다. 카니발에 백팩 하나 놓을 자리가 없어서 집까지 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말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다고, 화내지 않을 테니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 집에 있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그렇다고 했다. 우리 남편이 버드와이저를 좋아한다고 버드와이저를 8캔이나 사두었던 친구 남편 얼굴을 보기가 너무 미안했다.
이후에는 이런 자리가 생기면 처음부터 확실히 의사를 표시하라고 다그쳐서라도 그의 진짜 대답을 들었다. 90% 확률로 거절이니 이제는 묻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남편 때문에 연애시절부터 더블데이트는 포기했고 모임자리도 포기했다. 꼭 가야 하는 자리에는 혼자 갔고 가족모임도 부부모임도 항상 혼자 나갔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어딜 가나 나와 아이들 뿐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비혼모인 줄 안다고 농담하며 웃지만 속으로는 쓰다.
이제는 나까지 우리 가족 딱 4명만 있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일이 생겨도 남편처럼 그런 자리를 반복적으로 거절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원래 폐쇄적인 성향이 있었던 건지 남편을 만나서 변한 건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이런 혼란스러움이 가끔씩 와락 슬프게 다가오기도 하고 엄청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포기한 것이 또 있다. 아스퍼거 배우자와는 '싸움'을 포기해야 된다. 싸움이란 것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한마디 하면 상대가 되받아치는 소위 '티키타카'가 가능해야 성립되는 것이 싸움이다. 아스퍼거 배우자와의 갈등은 싸움이 아니라 비아스퍼거 배우자가 홀로 외치는 절규 형태에 가깝다.
내가 불같이 화내며 소리를 질러도, 엉엉 대성통곡을 해도, 3일 넘게 말을 안 해도 남편은 무반응이다. 갈등 상황이 생기면 일방적으로 나 혼자 화내고 소리를 지르다 지쳐 냉소 모드로 돌입한다. 그렇게 부부가 말을 안 하길 사흘이 지나 일주일이 지나도 남편은 아무 반응이 없다. 하다 하다 지쳐 내가 먼저 말을 걸면 그렇게 그 건은 종료되는 것이었다. 17년 동안 이런 패턴이 반복되었다.
10년 정도 지나고 나니 빈도 수가 줄기는 했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둘이 마주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도 했고, 어차피 갈등이 생겨도 뚜렷한 결론은 없을 것을 알기에 애초에 시끄러울 일을 만들지 않도록 애썼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남편에게 말하기 시작하니 둘 사이 오해가 생기는 일도 줄었다. 혹여 오해가 생기더라도 내가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발끈하는 순간을 잘 참고 넘기면 의미 없는 며칠 간의 감정 소모를 피할 수 있었다. 달라질 것도 없는데 애쓰는 것이 귀찮아졌다는 말이 더 맞겠다.
결혼 생활 중 포기와 체념이 이어지는 것은 꼭 배우자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커플이 경험하지 않을까?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잃어버린 것이 있어도 다시 채워지는 부분이 있으면 그 결혼을 견딜 수 있다. 잃어버린 친구와의 시간은 아이들과의 시간으로 채우고 공감 못해주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은 열렬히 사랑했던 추억으로 지운다. 때로는 마음이 약해져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을 때 알아서 어깨를 '척'하고 내주지 못하는 남편이지만 항상 '세상에서 네가 제일 똑똑해!'라고 말하는 남편의 응원을 떠올리며 스스로 힘을 낸다.
둘이 함께 있지만 항상 혼자다. 아스퍼거신드롬을 가진 남편에게만 해당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