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있지만, 르완다는 없는 것 #8
강남역 근처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택시 기사님의 거친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앞 차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죠. 그날 하루만 해도 수십 번의 경적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르완다에서 운전을 하다보면, 참 기이한 일들을 경험합니다.
꽉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습니다. 그저 그 상황이 해결되길 기다립니다. 처음에는 혹시 경적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르완다 사람들은 단지 경적을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신호등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키갈리 시내에도 신호등은 주요 교차로에만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의 도로는 신호등 없이 운영됩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교통 대란이 일어났을 상황이지만, 르완다에서는 차들이 자연스럽게 서로 양보하며 흐름을 만들어갑니다.
여러 방향에서 오는 차와 오토바이들은 마치 무언의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차례대로 지나갑니다.
"어떻게 사고가 안 나요? 누가 먼저 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우리는 서로를 봐요(We see each other). 눈으로 대화하고, 손짓으로 양보하죠. 급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 말이 르완다 교통문화의 핵심이었습니다.
'서로를 본다'는 것. 한국에서는 익명성 뒤에 숨어 경적을 울리고 화를 내기 쉽지만, 르완다에서는 운전자들이 서로를 사람으로 인식하고 소통합니다. 창문을 내리고 손짓으로 "먼저 가세요"라고 표현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는 모습이 일상적입니다.
물론 르완다의 교통 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도로 인프라가 부족하고, 교통 규칙이 한국만큼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토바이가 많아서 사고도 꽤 많지요. 하지만 그런 제약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질서를 만들어갑니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오는 날, 차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경적 소리로 가득했을 상황이지만, 르완다에서는 모두가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더 많은 양보와 배려가 일어났습니다. 멈춘 차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차를 봐주고, 또 길 옆으로 밀어주기도 합니다.
르완다에서의 4년 동안, 저는 경적 소리 없는 도로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운전할 때마다 여기서 배운 '서로를 보는' 습관을 기억하려 합니다.
조용한 도로가 가르쳐준 것은 단순히 소음 없는 환경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공동체의 힘이었습니다.
경적 대신 미소로, 짜증 대신 양보로 소통하는 법을 말이죠.
르완다의 도로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작은 모델인지도 모릅니다.